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설녀의 사랑을 간직하며...비비추
상태바
설녀의 사랑을 간직하며...비비추
  • 김학출(농부.세종교육희망네트워크사무국장)
  • 승인 2012.08.09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학출의 우리산하 야생화이야기

▲ 비비추


후두둑, 장대비가 마당을 긋고 간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무논에 가득하더니,
이내 빗소리에 묻힌다.
빗속에 여인이 서있다.
번개가 하늘을 찢는다.
그리고 천둥소리가 산을 흔든다.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내 빗소리가 그녀의 울음소리를 묻고,
천둥소리가 그녀의 흐느낌을 덮는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눈물을 흘려야 하고,
소리 죽여 흐느껴야 하는 여인의 이름은 설녀이다.
빗물이 설녀의 볼을 타고 내린다.
아니 눈물이다.
뜨거운 그리움이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내린다.
가슴을 적신다. 발끝을 적신다.
설녀의 흐느낌이 장대비로 흩뿌린다.
"콜록콜록, 아가야."
축축한 기침소리와 함께 노인의 말소리가 마루를 넘어간다.
비에 홈빡 젖어가는 설녀를 일으켜세운다…

▲ 비비추

살인 폭염이 한반도를 달구는 요즘 그리운 장대비로 시작되는 비비추의 전설 앞부분을 따와 봤다. 태풍과 폭염이 그리고 긴 장마가, 때로는 국지성 폭우가 괴롭히는 여름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계절임은 분명하다. 요즘과 같은 날씨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삶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농부의 삶이 아닌가! 폭염과 싸우고 가뭄과도 싸워야 하는 요즘 제때에 수확하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치는 작물의 특성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삶이다. 작열하는 태양빛을 등짝에 받으며 가뭄타 메마른 고추밭 고랑을 넘나드는 한낮에 고추따는 농부는 어떤 즐거운 생각도, 어떤 슬픈 생각도 할 겨를이 없다. 흘러내리는 땀줄기를 훔치기도 귀찮다. 부지런히 손을 놀려 무척이나 길어 보이는 고추밭 고랑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뿐…

이런 엄혹한 날씨에도 굳건히 견디며 늘씬한 잎사귀에 연보랏빛 꽃송이를 차례로 매단 비비추를 보노라면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된다. 모진 태풍도, 타들어 가는 가뭄도, 거센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송이 한송이 피워내는 꽃대는 결코 자신의 임무를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비비추는 자신의 삶에 강인한 책임감으로 임하는 굳건함을 교훈으로 전달해줘서 고맙다.

거기에 더하여 비비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너무나 다양하다. 이른 봄 겨우내 언땅이 녹자마자 실한 싹을 솓구치면 그 모습이 너무도 예쁘다. 비비꼬면서 피워내는 잎사귀는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세계적인 야생화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강인한 생장력으로 극한 환경에 어느 야생화보다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꽃이 귀한 한여름에 꽃을 피워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주니 예쁘고, 설녀를 통한 비비추의 전설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전해주며, 식물자원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관심에 반성하는 기회까지 주고 있으니 참으로 기특한 야생화가 아닌가!

한라 비비추가 이미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 원산지가 우리나라임에도 외국의 이름을 갖게 된 안타까운 상황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한반도 깊은 섬의 한 구석까지 우리의 비비추가 외국인들의 손에 흘러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이러한 비비추는 관상용뿐만아니라 약용과 식용으로 두루 이용되고 있는 쓸모있는 야생화다. 씨앗이나 식물체 전체를 한방이나 민간에서 이용하고 있다. 한방에서는 자옥잠이라 하여 잎은 즙을 짜서 젖앓이를 하거나 중이염을 앓을 때 쓰고, 잎에서 추출한 기름은 만성 피부궤양에, 뿌리즙은 임파선과 결핵 등에 쓰인다고 한다. 어린잎은 따서 우려낸 후 나물로 무쳐먹고 날것은 쌈으로 혹은 샐러드로 먹기도 한다. 죽에 넣거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관상용이다. 원예시장에서 가장 앞서 나간다는 유럽에서는 비비추의 열풍이 불 정도다. 잎의 크기와 모양, 변화무쌍한 무늬들로 수백 가지의 품종이 거래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추세를 간파하고 다양한 품종을 들여와 재배하는 전문농가도 등장하고 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 심으면 길과 경계도 되고, 흙이 드러나는 경사면에서는 좋은 지피*용 소재가 된다. 혹은 한두 포기 떼어다가 분에 심어도 그 자태가 어느 야생화에도 뒤지지 않는다.

물만 충분히 주면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아주 잘 자라는 편이다. 토양은 물빠짐이 잘되고 반그늘에 심는 것이 좋지만 햇볕에 노출돼도 잘 자라는 편이다. 번식은 종자 번식도 가능하나 주로는 봄에 포기나누기를 많이 한다.

설녀의 사랑을 간직하며 다양한 비비추를 가까이 두고 감상을 즐기는 삶을 권하면서 같이 하지 못한 꽃범의 꼬리를 보낸다.

공주시 의당면 솔이랑 결이랑 농원에서

*지피작물(地被作物) 거름이 흘러 내려가거나 토양이 침식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심는 작물. 목초나 콩과
식물이 많다.

▲ 꽃범
▲ 꽃범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