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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의 '게으른 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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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의 '게으른 산책자'
  • 서경홍
  • 승인 2016.05.25 13: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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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홍 박사 | 어느 인문학자의 자전거 유럽 여행 (2)






도시 이름은 대부분 그 지역의 특색을 담고 있다. 공주, 진주, 광주, 경주의 ‘주(州)’는 역사적으로 주요 행정도시를 의미하며 큰 강을 끼고 있다. 독일에도 한국의 이런 도시들처럼 도시 이름의 뒷부분이 같은 곳들이 많은데, 우리에겐 소시지로 유명해진 프랑크푸르트의 ‘푸르트(-furt)’가 그렇다. 푸르트란 하천의 얕은 곳을 의미한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여울목’ 정도라 할까.


중세에는 푸르트가 있는 곳에 도시가 발전했다. 상인들이 주로 여울목을 통해 강을 건넜고, 여기에서 통행세를 걷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푸르트 지역에 생긴 도시는 상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크푸르트가 내세우는 문화 콘텐츠 ‘괴테’


그러한 도시가 프랑크푸르트다. 프랑크푸르트는 미국의 그것처럼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으며, 넥타이를 맨 직장인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인천국제공항보다 훨씬 더 많이 가봤다. A, B, C와 D, E 구역으로 구분된 공항청사 어디에 화장실이 있고 만남의 장소가 있으며 무슨 가게는 어디 있는지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뚫고 있다. 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자주 타고 내려서가 아니라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내가 아르바이트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맞이하고 떠나보냈기 때문이었다.


그 공항에서 사람을 떠나보내고 150km가 넘는 지겐의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나는 언제 고향에 돌아가나’ 하는 향수에 젖기도 했다. 뜬금없이 그 옛날의 가수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제 그 공항에 내가 여행자로 돌아왔다.


프랑크푸르트는 여행자에게 큰 매력을 주는 도시는 아니다. 세계적인 박람회-독일말로는 메세라고 한다가 유명해 비즈니스맨들의 활동무대이며 뉴욕에 버금가는 금융도시다.


그러나 도시의 역사에 비해 문화적 자산이 많지 않다. 이 도시가 내세우는 문화 콘텐츠가 괴테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10대 후반까지 살았지만 문학가로서 활동의 대부분을 바이마르에서 했다.


괴테는 시내 중심에 있는 히르쉬그라벤에서 태어났다. 귀족가문은 아니었지만, 법률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랐다. 워낙 영민했던 탓에 일찌감치 법학 공부를 마치자마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바이마르 공국의 초빙을 받아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여행자라면 괴테 생가를 찾아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그곳을 들르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가본 적 있고 이번 여행길에선 이 도시의 다른 면모를 보고 싶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앞에는 커다란 길이 세 갈래 뻗어있다. 그 가운데 카이저슈트라세를 따라 곧장 걸어가면 옛 도심에 이른다. 시내 중심에는 괴테 생가, 옛 시청 뢰머, 1848년 독일통일 문제로 전국의 대표가 모여 격론을 벌였던 파울 교회, 황제를 선출하고 대관식을 거행했던 카이저 돔, 역사박물관, 쉬른미술관이 몰려 있다.



‘게으른 산책자’에게 더 잘 어울리는 도시(?)


카이저 돔, 카이저 거리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도시가 신성로마제국의 카이저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세부터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약 1000년 동안 유지했던 신성로마제국은 황제를 바르톨로메우스 성당에서 선출했다. 이 때문에 이 성당을 후세 사람들은 카이저 돔이라 불렀다. 괴테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황제의 대관식을 그의 자서전 ‘시와 진실’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그의 기록을 보면 대관식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카이저 돔 앞에서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맥주를 한잔 시켜 놓고 노천카페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니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새삼스럽다.


카이저 돔 뒤쪽으로 돌아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쉬른미술관이 나온다. 1986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은 규모는 작지만 퐁피두센터, 테이트갤러리, 구겐하임박물관 등과 공동 작업으로 주목할 만한 전시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쉬른미술관에는 ‘예술가와 예언자’들이란 주제로 에곤 쉴레의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쉴레는 클림트와 빈 분리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인간의 관능적 욕망, 고통스러운 실존, 의심과 불안에 싸인 인간의 육체를 민망할 만큼 거칠게 표현했다. 그러나 후기작품보다 습작 같은 초기의 풍경화가 나 같은 초보자에겐 훨씬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프랑크푸르트는 일정이 바쁜 여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도시며, 나 같은 ‘게으른 산책자’나 둘러볼 만한 곳이다. 쉬른미술관에서 한 마장 걸어가면 마인강이 나온다. 초여름의 맑은 날,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서 산책을 하거나 일광욕을 즐긴다.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강변에서 열리는 벼룩시장도 한 번 구경할만하다. 벼룩시장이 예전 같지 않고 전문상인들이 너무 많아 고유한 의미가 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운 좋으면 귀한 물건을 싸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물건을 사지 않아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요즘말로 ‘힐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시장기를 느끼면 구운 소시지를 끼워 넣은 브레첸(작은 빵)이나 아인토프(감자와 콩 등으로 만든 스프)를 싼 값에 사서 독일적인 음식맛을 볼 수 있다.


마인강 위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아이저너 슈텍은 보행자만을 위한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 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또 다른 미술관이 있다. 바로 슈테델이다. 슈테델은 원래 예술학교며 한 은행가의 유언에따라 1815년 설립됐다.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슈테델이라 부른다.


슈테델은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1000여 점이 넘는 컬렉션을 소장한 박물관이다.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막스 베크만(1844-1950)의 작품이 이곳에 가장 많이 소장돼 있다. 모네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들이 ‘모네와 인상주의의 탄생’이란 주제로 전시 중이었다. 전시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탓인지 관객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비싼 입장료였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아 표를 끊었다. 성장(盛裝)을 한 남녀들 가운데 내 모습만 꾀죄죄하다.




괴테 떠난 도시 온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의 세계’ 실천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시된 사진을 스마트폰에라도 담을 욕심이었는데, 촬영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아무리 ‘게으른 산책’을 하는 여행자라지만 수많은 관객에 떠밀려가며 그림을 감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
다. 미술관의 군중으로부터 빠져 나와 강변의 잔디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곳 프랑크푸르트에서 삶의 흔적을 추적해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을 수면에 그려보았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워낙 괴테로 알려진 도시라 쇼펜하우어가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살다가 생을 마쳤단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한 마리의 푸들과 함께 고독을 달랬던 사람. 단치히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여러 도시를 전전했다. 어머니는 바이마르에 정착했으나 사교계의 교류에만 몰두한 어머니와 연을 끊고 그곳을 떠난다. 괴팅엔과 예나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한때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강의를 맡지만 독일 관념론의 원조격인 헤겔의 강의시간에 맞춰 자신의 강의를 개설하는 바람에 한 사람의 수강신청도 받지 못해 여러 학기 폐강을 해야만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베를린에 떠돌던 콜레라를 피해 쇼펜하우어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한다.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괴테가 바이마르를 휩쓸던 시대에 쇼펜하우어는 괴테가 없는 프랑크푸르트로 온 것이다.


그는 세상과 단절하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혼자서 실천했다. 지나치게 고독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모든 욕망과 의욕을 고통의 근원으로 본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고독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시대에 다시 고독으로의 저항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강 저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고침=본보 지령 203호(4월4일자)에 처음 소개된 서경홍 박사의 ‘자유여’ 글은 서 박사가 과거 독일 유학 시절에 겪은 여행기가 아닌, 지난해 여름 자전거로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그 소회를 적은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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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안 2016-05-15 15:57:43
자전거 여행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관련 인문철학의 내용을 담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음 호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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