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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흥행기록 갈아치운 '명량' 어떻게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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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흥행기록 갈아치운 '명량' 어떻게 읽을까
  • 황혜진 교수(목원대 TV·영화학부)
  • 승인 2016.05.25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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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사회 | 현실의 결핍 넘어서려는 대중의 욕망

영화 <명량>이 개봉 18일만에 <아바타>를 제치고 역대 흥행순위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명량>이 16일 오전 1362만 7153명을 동원해 <아바타>가 세운 1362만명을 앞섰다고 밝혔다. <명량>이 보여준 ‘이순신 신드롬’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전문가의 분석을 들어봤다.<편집자>


손쉬운 위로보단 현실과 관계 맺는 자신의 방식 성찰할 기회

올여름 성수기를 맞은 영화가에는 사극영화의 격전이 예고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개봉한 <군도>는 민란이라는 무거운 소재와 할리우드 서부영화를 유희적으로 수용한 형식의 조합으로 신선했지만 그만큼 어색하기도 했다. 대다수 관객들은 지금의 우리 현실과 유사하게 보이는 영화의 내용과 형식적 유희로 읽히는 시청각적 자극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 <군도>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명량>(감독 김한민)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명량>은 개봉 전 예매실적을 포함해 역대 최단기간 천만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영화가 흥행과 관련된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속도는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인터넷의 댓글들을 읽다보면, 한국인만의 DNA가 과연 진실로 존재하는 것만 같다. 도대체 <명량>의 무엇이 대중을 이토록 환호하게 하는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이다. 사실 장군의 이야기는 예전부터 광범위하게 소비되어왔다. 유신체제기에는 지배의 슬로건이었던 ‘국민총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국책영화로 제작되어 단체관람이 이루어졌다. 정권의 통치 전략에 의해 애국담론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대중이 장군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 것은 <난중일기>가 한글로 완역되고 <칼의 노래>와 같은 소설이 널리 읽히게 되면서부터인 듯하다. 장군의 절망이 애민정신과 함께 깊은 고뇌의 리더십으로 승화되는 대목은 영웅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잇달아 제작된 드라마가 장군의 또 다른 전형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대중이 이미 장군과 관련된 콘텐츠를 소비한 경험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까닭인지 <명량>은 구구한 설명을 거두고 정유재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해전의 한가운데를 향한다. 전투 직전에 장군의 철학을 두려움의 극복이라는 과제로 집약한 뒤,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전략이다. 정교한 국산 그래픽에 힘입어 활자가 이미지로 변신하는 위력을 과시하는 순간, 대장선 한 척으로 왜군과 싸우는 장군의 모습에서 엄청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승기를 잡아가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위인전이 흔히 간과해왔던 격군들의 헌신, 승병들의 활약상이 펼쳐지면, <명량>이 역사에서 잊힌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재현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군의 동태를 염탐하는 임 서방과 그의 아내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걸고 필사적으로 공동체를 지키려는 절실함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장면을 창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미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감동은 영화 자체에서 온다기보다 영화 밖의 현실에서 오는 것 같다. 배급사 CJ의 위력을 증명하듯 전국 스크린의 40%에 육박하는 1596개관에서 동시 개봉되는 특혜(?)가 결국 한국사회의 모순인 자본의 전횡을 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이 사실을 비판하기보다 영웅의 존재에 열광하고 있다. 영화 밖의 현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연일 터지는 군부대 소식이 영화 밖의 현실이라면, 영화가 재현한 장군의 리더십은 현실 너머를 상상하게 해주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답을 알 수는 없지만 40대의 관람 비중이 높은 것은 <명량>이 지금, 이곳에서의 결핍을 위로 받으려는 기성세대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짐작하게 한다. 40대 후반을 포함한 자유주의적 성향의 기성세대는 87년도의 투쟁을 통해 일정한 수준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징후들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헌신해왔던 시간이 어쩌면 악한 구조 속에 매몰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쩌면 거의 불가사의해 보이는 승리를 쟁취한 장군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은 현재의 기성세대에게 또 다른 형태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대함의 소비가 자칫 섣부른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지금의 기성세대는 장군의 휘하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격군들처럼 다음 세대가 알아줄 역사를 쓰고 있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승리를 보장하는 영웅의 휘하는 없다. 장군이 보여준 절대적 리더십이란 현재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전투는 일상적 삶을 성찰하는 각자의 역량 아래 치러진다. <명량>을 통해 너무 쉽게 위로받기보다 현실과 관계 맺는 자신의 방식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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