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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합격명단, 교문에 내걸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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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합격명단, 교문에 내걸지 않았으면…”
  • 김재중
  • 승인 2014.08.1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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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입시교육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
갑작스런 변화는 혼란자초, 순리대로 풀어가야
공문 보내는 일방행정 아니라 공감행정 펼칠 것

학교서열화 당면과제…고교평준화 단계적 추진
혁신학교 해마다 3∼4곳 지정, 공교육모델 구축
학생들에게 선생님 돌려줄 것, 교무행정사 배치

최교진(60) 세종시 교육감. 자타가 인정하는 전교조 출신 진보교육감이다. 취임 후 갓 한 달을 넘긴 지난 8일, 그에게 세종교육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두 시간에 가까운 인터뷰가 이어졌다. 할 말도, 들을 말도 많았다. 혁신학교, 캠퍼스형 고등학교, 스마트 교육, 신설학교 설립….
최 교육감은 세종교육이 당면한 과제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어렵고 복잡한 대목도 있었다.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다 전해 듣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가 어디로 향해 걸어갈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췄다. <편집자>

“내년 졸업시즌엔 세종시에 있는 고등학교 교문에 서울대 합격자 명단을 큼지막하게 걸어 두는 그런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교육계 수장이 뭐 이런 소소한 일까지 신경을 쓰나.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그의 지론은 확고했다.

“서울대에 몇 명의 학생을 진학시켰느냐가 아니라 몇 명을 무사히 졸업시켰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나? 학교와 선생님들이 한 명의 제자도 낙오시키지 않고 졸업시켰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올바른 교육이다.”

최 교육감은 “현수막 내걸지 않아도 충분히 격려 받고 행복한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다수 아이들의 행복과 안전을 생각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굳이 ‘세월호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는 국가, 교육, 어른들. 그가 어떤 부채의식을 짊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최 교육감의 의지대로 내년 2월 ‘모두다 무사히 졸업해줘서 고맙다. 00고등학교 선생님 일동’ 이런 내용의 현수막이 걸리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 그게 교육감의 의지라면, 현수막 걸지 말라고 지시를 하면 그만 아닌가.

“물론 그렇다. 공문을 내려 보내면 쉽게 해결할 수 도 있을 거다. 그런데 학교차원에서 현수막을 내걸지 말라고 하면 동문회 이름으로 내걸 것 아닌가. 그걸 교육청이 어떻게 막나. 결국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 교육감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공감을 해야 진심이 통한다. 그래서 교장선생님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또 설득하려고 한다.”

다른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최 교육감은 “공문을 보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그런 행정을 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 ‘안정적 변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말이지만,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큰 사람들에게는 답답하게 들릴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진보교육감을 선택한 민심이라고 보나. 

“최교진이 많은 것을 빠르게 변화시킬 것이라 기대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성급한 변화는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더디더라도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순리대로 풀어가야 강력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공문을 보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일방행정이 아니라 더디더라도 만나서 설득하는 공감행정을 펼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 때문일까. 최 교육감 취임이후 교장회의 분위기부터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과거와 달리 교육감이 먼저 나가 교장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겸손한 자세를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 그렇게 해서 행정이 일사분란하게 추진되겠느냐는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리더십 약화 등 부작용은 없을까.

“흔히 말하는 권위주의는 리더십과 다르다. 형식화된 의전에 의한 권위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 교육감직은 시민들로부터 4년간 그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자리다. 때문에 교육감의 권위는 그 권한과 책임을 함께 나눌 때 생긴다고 본다.

그는 “교육감의 권위와 리더십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일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에게 부여받은 각종 권한을 열정적인 교사, 교장들과 머리를 맞대 나누고 최적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가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이냐에 대한 궁금증은 상당부분 풀렸다. 이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를 물을 차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 세종교육의 가장 큰 문제를 뭐라고 보나.  

“학교 서열화다. 고등학교가 몇 개 안 되는데 벌써 서열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다. 성적 좋은 아이가 특정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거기에 입학하지 못한 아이가 선택의 여지없이 다른 학교에 들어가야만 하는 현실, 이것은 옳지 않다. 입학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을 ‘차별’이라는 벽에 가두는 것이다. 잘 하는 아이들을 골라 뽑아 일류대학 보내는 건 아이를 관리하는 거지 교육하는 게 아니다.”

고교평준화로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들린다. 물론 ‘당장의 변화’는 없을 듯하다. 그는 “단계를 밟아 천천히 추진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 그렇다면 고교평준화를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인가.

“일단 성적우수자 우선선발 전형부터 폐지하려고 한다. 고교입시가 11월에 있는데 이에 앞서 성적이 우수한 아이를 스카우트 개념으로 먼저 데려가는 우선선발 전형이 치러지고 있다. 입학할 때부터 특별반 편성을 약속한다든지 그런 보이지 않는 특혜가 있어선 곤란하다. 다행히 교장선생님들이 제 뜻에 동의해 줘서 우선선발 전형을 없애기로 했다. 완전한 고교평준화는 단계를 밟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평준화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도 경청해야 하고, 적용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서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조만간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려고 한다.”

인터뷰는 한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갈 길이 멀었다. 스마트교육, 캠퍼스형 고교설립, 혁신학교 등 현안문제가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 대학캠퍼스와 같은 ‘캠퍼스형 하이스쿨’ 설립을 공약했다. 이상적 공약이란 지적도 존재하는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4개 정도의 고등학교를 한 곳에 배치한 뒤 배우고 싶은 교과를 학교와 상관없이 선택해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교육시스템이 고착화된 지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다. 세종은 새롭게 학교를 많이 설립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학교부지 부족에 따른 학교대란을 현실적으로 해결할 방안이기도 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세종교육혁신기획단을 구성하고 미래교육 분과에서 실무를 담당케 했다. 교육과정과 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도 시작했다.”

- 스마트교육이 어떤 방향을 잡을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교육 일선에서 반대의견도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교육감의 복안이 있다면.

“취임 후 스마트교육 문제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스마트교육이 새로운 교육, 세계적 흐름을 선도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검토할 부분도 많다. 실무진이 콘텐츠 활용, 예산대비 효율성 등을 충분히 검토하고 있다.

스마트교육을 도입하면서 선생님들이 힘들어 한 것으로 안다. 아이들의 인터넷 중독도 큰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인터넷 중독 문제는 걱정한 것처럼 심각하지 않고,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선생님들이 더 잘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분위기다.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지속적인 정책연구와 의견수렴을 통해 안정적 발전방향을 모색하려고 한다.”

- 어떤 전문가들은 혁신학교와 세종시가 선도하고 있는 스마트교육을 접목시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제안하고 있다. 이런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당연하다. 스마트교육을 잘하고 있는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해 잘 접목시키면 ‘세종형 혁신학교’란 브랜드가 탄생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최 교육감은 “굳이 ‘혁신학교’라는 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쌍류초등학교나 감성초등학교가 좋은 사례”라고 했다. 폐교 위기에 섰던 쌍류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17명에서 72명으로 크게 늘었다. 감성초등학교도 학교를 자연친화적으로 리모델링하면서 학교 이름처럼 감성교육을 펼치고 있다. 최 교육감은 이들 학교에 대해 “‘혁신학교’라는 타이틀을 내세우지 않았을 뿐, 충분히 혁신적으로 학교를 운영해 이미 성공한 케이스”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갈팡질팡하는 학교. 이런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해 성공사례로 키워내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업적 쌓기’보다 ‘정책 목표’를 더 중시하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의 아이콘이다. 인터뷰 말미, 대화의 주제를 혁신학교 문제로 압축시켰다.

- 혁신학교에 대한 기대가 높다. 언제쯤 성과가 나오나.

“혁신학교는 올해 안으로 운영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9월쯤에 혁신학교 운영계획을 알리고 연구팀도 공모할 예정이다. 연말에는 혁신학교를 선정하려고 한다. 초등학교 2∼3곳, 중학교 2곳 정도가 될 것이다. 2018년까지 해마다 혁신학교를 3∼4개 정도 지정해 전체 학교의 10% 정도가 1단계 혁신학교로 운영되도록 하겠다. 이들 학교가 공교육 혁신모델로 정착되면 일정한 확산효과도 누리게 될 것이다. 2년 정도 지나면 의미 있는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최 교육감이 취임 후 첫 번째로 서명한 문서는 ‘세종형 혁신학교 추진을 위한 교육연수 운영 계획서’였다. 지난 1개월 동안 가장 주력한 업무도 ‘혁신학교’ 관련 업무였다. 세종시 전역을 돌며 혁신학교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모아왔다. 일선 교육현장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전문 연수도 실시했다. 교육청 관계자가 “교육감의 열성 덕에 직원들이 혁신학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만큼 사실”이라고 귀띔할 정도다. 

최 교육감은 “혁신학교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를 혁신하는 게 중요하지 혁신학교를 몇 개 설립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핵심은 교수학습중심”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교육청에서 지원하면 된다”는 게 최 교육감의 생각이다. 세종교육청이 내년부터 교무행정사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도 선생님들의 행정업무를 경감시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최 교육감은 이를 두고 “선생님들을 학생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결재판 들고 다니지 말고 동화책이나 시집을 들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보교육감 최교진, 그 다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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