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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걷어내자 싹튼 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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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걷어내자 싹튼 연대감
  • 김지용(영화감독, 중부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 승인 2016.05.26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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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쉐이크 | ‘비밀과 거짓말’

인종·사회계층 간 소외현상 다뤄

가족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질문도

김지용 감독
김지용 감독

비밀을 감추고자하는 말은 거짓말일까? 혹은 진실을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거짓이라는 방패를 쓰는 것일까? 때로는 어쩔 수없이 숨겨야 하는 비밀들과 절대 말 못할 사연들로 우리 삶이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여러 화술로 나 자신을, 혹은 주위를 합리화시키며 약간은 불만족스럽지만 그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힘겨운 20대 중반을 달릴 무렵 영국 출신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Secrets & lies)>이라는 영화를 봤다. 1997년 한국사회는 IMF라는 거대한 괴물과 직면해 있었다.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거대한 자아가 단숨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세계는 다이애나 비의 충격적인 죽음에 경악하고 그녀에 대한 과거 가족사와 스캔들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었다.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은 아시아 경제 공항과 더불어 많은 추악한, 속칭 ‘찌라시’를 쏟아 내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산하는 회사들과 자살하는 가장들, 또한 급증하는 이혼율 등은 가족의 가치를 무너뜨렸다. 그 시대를 지내면서 겪은 많은 사건들은 불안한 미래를 개척해야하는 20대 후반의 나와 또래의 젊은 세대에겐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이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영국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다루던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접하게 된 건 우연보다는 필연에 가까웠다.

런던에서 검안사로 일하는 젊고 지적인 흑인여성 호텐스는 양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자신의 생모를 찾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친어머니가 흑인이 아닌 백인이었던 것. 그녀는 혼란에 빠졌지만 곧 용기를 내어 친모에게 연락을 한다.

공장노동자로 수 년 동안 가슴 속에 한과 미련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신시아는 딸 록산느와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삶은 그저 막막한 현실일 뿐이었다.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떠났으며 자신의 희생을 통해 어렵게 키운 남동생 모리스와도 소원하기만하다.

그 때, 신시아는 호텐스와의 기가 막힌 만남을 가지 게 된다. 흑인 딸의 존재에 대한 경악은 이내 그녀 자신의 삶을 토로하는 만남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시아는 호텐스를 16살 어린 나이에 임신했고 아기를 보지도 않은 채 입양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에게 흑인 아이가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다가 결국엔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호텐스는 그녀의 이야기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시간이 갈수록 호텐스 때문에 신시아는 딸 록산느, 남동생 모리스와의 관계가 불편해진다. 하지만 버리다시피 입양을 보냈지만 잘 성장해준 호텐스에게 죄책감과 더 많은 애정을 느끼고, 만남이 잦아질수록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어느 날, 괜찮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남동생 모리스가 조카 록산느의 생일 축하 파티를 제안하고 그들 모두는 모리스의 집에서 조우하게 된다.

신시아는 록산느의 생일 파티에 호텐스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한다. 망설이던 호텐스도 친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신시아는 호텐스를 직장 동료로 속이고 가족에게 소개한다. 파티 분위기는 남동생 모리스의 배려로 위태롭지만 여느 가정과 같은 화목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술기운에 감정이 격해진 신시아가 갑작스럽게 감추고 싶었던 비밀들을 털어놓으며 모두가 충격에 빠진다. 바로 흑인 딸 호텐스의 이야기다. 그러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가족들 사이의 불편함과 불만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서로에게 감춰왔던 오랜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영국사회에 존재하는 흑백간의 갈등이나 사회계층간의 소외현상을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서 가족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가족 구성원 간의 진정성 있는 소통과 배려를 말하고,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세 모녀가 한가로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다. 비록 인종이 다르고 살아가는 수준이 다른 세 인물이지만, 일종의 연대감을 보여주는 듯하다. 진정한 사람 간의 관계는 끊임없는 비밀과 거짓이 아니라 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이라고 마이크 리 감독은 말하고 싶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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