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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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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가
  • 박권일(시사칼럼니스트)
  • 승인 2014.07.22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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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 세월호 참사와 하인리히의 법칙

안전과 직결된 승무원 7할이 비정규직
부실과 협잡이 쌓여 터진 인재이자 관재
매뉴얼 있었지만 지키지 않아 참사 초래

박권일
박권일

아무리 악재가 겹쳤다 할지라도 세월호 선장이 그저 평균적인 판단력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인명피해가 최소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선장은 무능했을 뿐 아니라 너무나 무책임했다. 하필 재난상황에 처한 배의 선장이 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러나,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선장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시스템의 부실과 결함의 증거 중 하나다.

비극의 개연성은 차곡차곡 축적된다. 1931년 훗날 산업안전 분야의 고전이 될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산업재해예방: 과학적 접근>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 저자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사고가 느닷없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이상 징후를 보인 뒤에 비로소 나타난다는 사실을 1:29:300이라는 비례의 형태로 제시했다. 산업재해로 중상자 한 명이 나오면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하인리히의 법칙’이다.

세월호 비극 역시 그랬다. 언론 취재 결과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안전과 직결된 갑판부와 기관부 승무원 7할이 6개월~1년 이하 계약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심지어 선장도 1년 계약직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으로 명령체계가 이원화되어 있는, 일종의 ‘이중권력’ 상황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승무원이 책임과 권한을 백 퍼센트 발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배였던 셈이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은 승객의 생명을 내팽개친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어떤 이유와 핑계를 대더라도 승무원 개인의 사법적·윤리적·직업적 과오는 면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는 단지 몇몇 개인의 과실이나 불운으로 환원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지난달 28일부터 세종시 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가 설치돼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세종시 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가 설치돼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과 상당수 매체들은 모든 원인과 책임을 선장과 선원 몇몇에게 덮어씌우고 있지만 어불성설이다. 이 사태는 수많은 부실과 협잡이 쌓여오다 일시에 터진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다. 무리하게 3개층을 증축하는 구조변경을 허가해준 정부, 화물의 결속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고 출항허가를 내줘 결과적으로 편심으로 인한 전복 위험을 방치한 항만청, 시민 생명이 직결된 업무를 외주화·비정규직화하는 노동환경을 조장하고 심지어 강요해온 국가 역시 사고의 가해자다.

혹자는 선장 말에 따르지 말아야 했는데 순진하게 따라서 사람들이 죽었다고 안타까워한다. 그 심정이야 백번 이해하지만 ‘사람들이 착해서 죽었다’는 식의 서사에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재난시 개인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책임 있는 전문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생존확률을 높이는 행동은 자력구제가 아니라 책임과 권한을 지닌 이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다. 전문가는 매뉴얼을 체화한 사람이며 매뉴얼이란 단지 지식의 집적이라기보다 현장의 경험까지 반영된 표준화된 지혜이다. 매뉴얼은 비상상황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고 신속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매뉴얼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곳에서 매뉴얼은 ‘존재하기만 하지 제대로 준수되지 않는 무엇’이었다. 매뉴얼대로 하는 사람을 "고지식하다" "유도리가 없다"며 답답해하거나 비웃는다. 그래서 얼치기 전문가가 넘쳐나고, 멀쩡한 전문가도 결국 얼치기 전문가가 되어 버린다. 효율성과 이윤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런 풍조는 고속성장 시기에도 만연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서해 훼리 사고 등 대형 참사 때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계속 터무니없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매뉴얼을 제대로 지킨 사람은 경쟁에서 밀려나는 반면,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이 호출되곤 했지만 그 이론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회의적이다.

우리가 반복해 목격하고 있는 이 재난들은 근대화를 아무리 잘 수행해도 피할 수 없는 종류의 위험성이라기보다 근대화의 부실함과 조야함에서 야기된 위험성이다. TV에서 뉴스속보가 흘러나왔다. "해양수산부 위기관리 매뉴얼 보니… ‘대형사고 때는 충격 상쇄 아이템 발굴하라’" 문득 매뉴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이 공허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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