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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여 슬프거나 노여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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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여 슬프거나 노여울 때
  • 황혜진(목원대 TV영화학부 교수)
  • 승인 2016.05.26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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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의 영화와 사회 | 우아한 거짓말

10대 소녀 자살, 담백한 진정성으로 풀어
‘고발’이란 틀에 가두지 않은 점 돋보여

신병이나 생활고 비관, 입시경쟁이나 학교에서의 따돌림을 견디다 못한 막다른 길에서의 선택! 자살은 낭만주의가 유럽을 휘감았을 때 상상되었던 베르테르의 지극한 사랑으로 인한 선택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자살은 프랑스의 고전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이 성찰했듯이 사회가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개인이 어디에서도 연대감을 느끼지 못한 데서 오는 집단의 문제이다.

그러나 언론 보도이든 사회학적 연구 결과이든 그것은 객관적인 텍스트일 뿐이다. 그 누구도 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는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을 버렸다는 사실이 어떤 무게의 고통일지 가늠할 수 없다. 자살의 원인과 예방을 사회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담론으로 구성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긴급히 필요한 시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담론이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기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형용 불가능한 고통의 흔적인 만큼,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10대 소녀의 자살이라는 소재를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담백한 진정성으로 풀어낸 영화이다. 마트에서 판매직으로 일하지만 언제나 쾌활하고 당당한 현숙에게는 만지와 천지, 두 딸이 있다. 똑 부러진 자기표현이 차갑게 보이기도 하는 언니 만지와 달리 갓 중학생이 된 천지는 엄마 마음을 헤아릴 정도로 속 깊은 성격이다. 아침식탁 머리에서 MP3를 사달라는 천지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지 못한 것이 현숙의 마음에 걸리던 날, 천지는 혼자 있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어린 소녀의 죽음에 따라오는 이야기는 의외로 담담하다.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절규나 자책도 유보된다.

이제 영화는 천천히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들어주지 못했던 천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우연히 동생의 학교생활이 평범하지 못했음을 알아차린 만지를 따라, 그리고 가슴에조차 묻지 못할 자식의 죽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현숙의 깊은 한숨을 따라 간다. 그러다보면 인간의 고통에 동반하는 원한과 분노, 그리고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초등학교 때 전학 온 천지에게는 화연이라는 절친이 있다. 화연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은 성향이 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조금 더 큰 아이다. 생각이 깊다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고, 자존심이 강하다보니 섣불리 남의 탓을 못하는 천지는 화연에게 만만한 상대가 된다. 화연은 대단한 의도를 감춘 것도 아니면서 천지를 이용해 다른 친구들에게 환심을 사고, 그것은 어느새 천지를 주변의 ‘은따’(은근한 따돌림)로 만든다.

이쯤 되면 어른들은 말할 것이다. 왜 그토록 화연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느냐고, 왜 가족이나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고…. 이 영화는 10대에게 친구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친구들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것으로 어른들의 질문에 답한다. 지나고 보면 참으로 별 것 아닌 것들이지만 막상 그 시기를 통과하던 때에는 그 사소한 것들이 세상 전부였지 않았던가? 그런데 천지 역시 누구나 그렇듯 막다른 곳에 이르기 전 도움의 메시지를 보냈었던 것이 현숙과 만지의 기억 속에 되살아난다. 언제나 살갑고 착하게만 굴었던 아이가 혼자 외롭게 숨죽여 울음을 참고 있었다니!

가장 소중한 존재의 상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과 타인, 나아가 세계의 부정으로 치닫게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감정이 혹시 상실을 불러온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외면하는 데서 오는 게으름의 소산은 아닐까? 이 영화는 만지가 동생이 경험했을 괴로움의 시간을 복기하면서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 대신 상실된 대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 것으로 천지를 애도하게 한다.

분노나 원망이 고통을 망각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고통 자체를 치유하지는 못한다. 천지의 죽음 이후 새로운 왕따가 되어버린 화연이 동생과 같은 선택을 할까 염려하는 만지의 마음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자 천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듯이, 고통은 그에 뒤따르는 고통이 아니라 삶의 빛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아한 거짓말>은 소녀의 죽음을 ‘고발’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는다. 천지가 붉은 빛의 탐스러운 털실뭉치 속에 감추어둔 4개의 쪽지는 분명 남은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이 담겨 있다. 누군가를 처벌하는 것으로 현실로부터 도피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따뜻하게 속삭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소중한 이들을 위해 긴급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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