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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정상’ 무엇부터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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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정상’ 무엇부터 할 텐가
  • 김유혁(단국대 종신명예교수)
  • 승인 2014.08.06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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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이야기 | 조명거인(操名去人)

남의 명예 탈취해 가짜가 진짜 행세

남의 마음·표현 훔치는 표절 ‘흉악범’

개인은 양심, 사회는 정의 회복해야

"조명거인 하는 자는 반드시 약패한다(操名去人者 必弱敗)." <관중전서(管仲全書)> ‘수신편(修身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조명거인(操名去人)’이란 남의 이름과 명성과 명예를 탈취해 몰아낸다는 뜻이다. 즉 남의 이름 가지고 진짜처럼 행세하기 위해 그 이름의 주인공을 매장하거나 다른 이름으로 개명시켜서 가짜가 진짜 노릇을 하고 진짜는 사회로부터 도태시킨다는 의미다.

우리 세대는 일찍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진짜 김일성이 누구냐’하는 문제는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독립운동가로서 뛰어난 지략을 겸비한 진짜 김일성은 북한의 김일성이 아니라고 한다. 북한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成柱)로 알려져 있다.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변신한 것은 유명한 지도자로 급부상하기 위해 이른바 조명(操名), 즉 차명(借名)한 것이라고 김성주의 동향인들은 말하곤 한다. 이 이야기는 북한 땅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조명거인’의 사례다.

우리는 ‘조명거인’의 사례를 선거전에서 쉽게 접할 때가 많다. 학력 및 경력을 허위과장하거나 미미한 공적도 침소봉대하여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거짓말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다.

남의 글을 훔쳐다 제 글처럼 속여 쓰는 것을 표절이라 한다. 표절 논란의 경우를 일례로 본다면 ‘조명거인’의 참 뜻이 무엇인지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의 참선비들은 표절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엄하게 따졌다. 예컨대 남의 시상(詩想)을 자기 생각처럼 인용하거나, 남의 시구(詩句)를 자기 시구처럼 꾸며 쓰는 것은 모두 절도행위로 간주했다. 시상을 훔친다는 것은 남의 마음을 도적질한다는 뜻이며 시구를 훔쳐서 쓴다는 것은 남의 표현을 절취했다는 뜻이 된다. 마음을 훔치고 말을 훔쳐서 쓰는 사람들이야말로 흉악범 중의 흉악범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남의 착한 마음과 좋은 생각을 자기 것 인양 속여 쓰면서 자신의 악한 마음과 나쁜 생각은 남의 것으로 속여 넘기기 때문이다.

일부 현역의원 중에는 국회에서 열리는 청문회나 국정감사장에서 남을 꾸짖고 잘못을 들추어내는데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가 있다. 그런데 뒤에 알려지기를, 그는 박사학위논문도 아닌 석사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처구니(御妻丘尼)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닐 수 없다. 도적놈이 집 주인 노릇 하면서 도리어 주인을 협박한다면 그런 세상을 누가 살맛나는 세상이라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안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바로 돌려놓기 위한 제1순위의 가치는 개인적으로는 인간양심의 회복이요, 사회적으로는 사회정의의 회복이다. 양심과 정의는 영원한 동반자로서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에 배신이란 용납하지 않는다. 신의는 속임수를 최대의 공적(公敵)으로 여기기 때문에 남의 마음을 침범하거나, 남의 이름을 훔쳐 쓰거나, 남의 공적을 가로채는 따위의 언동은 용서하지 않는다.

악심(惡心)과 기망과 비리와 부정과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사회풍토의 성숙화는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조명거인’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정도가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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