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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산층의 ‘외적가치’에 대한 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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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산층의 ‘외적가치’에 대한 냉소
  • 김지용(영화감독, 중부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 승인 2016.05.26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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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쉐이크 | ‘아메리칸 뷰티’

미국이 이라크 공격에 한창일 때,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미국의 전쟁 개입에 태클을 걸고 나섰다. 그러자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은 이들을 ‘늙은 나라’로 지칭했고 즉각적인 반발을 샀다. 유럽의 간섭에 대한 대응이었지만 ‘유럽은 늙은 나라’라는 미국의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일화이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미국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주하여 세운 나라이다. 처녀림과 신천지에서 초기의 미국인들은 정치·문화·종교의 자유를 통해 경제적 부를 쌓았다. 영국의 소설과 D.H 로렌스는 저서에서 미국을 ‘갈수록 점점 더 젊어지는 나라’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2000, 샘 멘데스)는 흔히 미국 가정의 붕괴, 동성애, 마약, 섹스 그리고 혼외정사에 대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이 영화의 코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기저에는 보다 복합적인 주제가 숨어있다. <아메리칸 뷰티>는 갈수록 더 젊어지고 싶어 하는 미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영화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미국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무력해지고 늙어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주인공 레스터(케빈 스페이시)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 가장이다. 부동산을 하는 그의 아내(아네트 베닝)는 출세 지향적인 강인한 여인이다. 그런 아내 앞에서 레스터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게만 보인다.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하지만 레스터 역시 성적(性的) 무능으로 표현된다. 레스터는 사춘기 딸 제인에게도, 그리고 직장상사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다. 모두로부터 소외된 레스터는 어느 날, 딸의 친구 앤젤라를 보고 강하게 이끌려 다시 젊어지고 싶어 한다. 그는 회춘을 시도하고, 젊어지는 데 성공하고, 드디어 앤젤라를 유혹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앤젤라의 미(美)와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기 본연의 위치와 정체성을 깨닫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가 가장 행복했던 바로 그 순간, 레스터는 자신을 동성애자로 오해한 이웃집 남자가 쏜 총에 맞아 절명한다. 마치 헤밍웨이의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에서처럼 다시 한 번 용기를 회복하고 젊음을 회복하는 바로 그 행복의 절정에서 레스터는 날아온 흉탄에 쓰러져 목숨을 잃는다. 영화는 그 감동적이고도 충격적인 장면을 수많은 장미꽃잎과 흩어지는 피로 묘사한다.

<아메리칸 뷰티>는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 99년 전미 영화학회 최우수작품상, LA 비평가협회 감독상, 2000년 골든글로브 최다수상(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72회 아카데미 영화제 5개 부문 수상(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등 그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또한 알란볼이라는 TV 극작가가 쓴 최초의 장편 시나리오이며 저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샘 맨더슨이라는 영국의 연극 연출가를 감독으로 최초 데뷔시킨 작품이기도하다.

주인공 레스터의 아이러니컬한 죽음은 ‘갈수록 더 젊어지는 나라’라는 미국의 신화가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메리칸 뷰티’, 즉 ‘미국적 아름다움’이란 다름 아닌 ‘외적 가치’라는 생각에도 이르게 된다. 돈, 성공, 섹스, 쾌락 등 물질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신앙화 되다시피 한, 미국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외적 가치를 다소 냉소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아메리칸 뷰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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