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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보루', 종교 존중해야 일등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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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보루', 종교 존중해야 일등국가
  • 정병조(철학박사, 금강대 총장)
  • 승인 2014.08.0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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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조의 풍경소리 | 출가(出家)

야스퍼스, "출가는 홈리스 아닌 위대한 포기"
생로병사 극복 위한 개인적 의지 과소평가 안 돼
‘중생안락’ 위한 적극적 의지의 표현 이해해야

정병조(철학박사, 금강대 총장)
정병조(철학박사, 금강대 총장)

3월 8일(음력 2월 8일)은 부처님의 출가일이다. 또 일주일 후인 3월 15일(음력 2월 15일)은 열반재일이다. 사실 불교의 명절 가운데 유독 탄신일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은 문제이다.

인격적으로 보면 태어남은 가장 근원적인 일이었겠지만, 사실 부처님을 성인으로 만든 과정은 출가와 득도, 그리고 가슴 뭉클한 열반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싯다르타 태자의 출현은 세속적 등장이지만 출가와 대각은 전혀 다른 종교적 완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찰들은 이 출가와 열반재일에 이르는 일주일 동안 그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한 정진 법회가 열린다.

석가모니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극적인 장면을 그린 ‘팔상도(八相圖)’ 중 네 번째 그림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29세 되던 해, 사랑하는 처자와 왕위를 계승할 태자의 자리를 버리고 성을 떠나 출가하는 모습을 담았다.

부처님 이전부터 인도 사람들은 종교적 관심이 높았다. 인도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인더스문명을 잉태한 곳이다. 물질적인 면으로만 보면 인더스문명은 다른 세 곳의 문화 시원지와 비교해 볼 때 결정적으로 훌륭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다만 정신적인 면으로 본다면 놀랄만한 사유의 흔적들이 발견되곤 한다. 신화시대로 꼽히는 베다(Veda) 시대에는 유일신적인 신화로 가득 했지만, 시대가 내려 갈수록 다신, 무신(無神,) 범신(汎神) 등 다양한 신화들이 혼재(混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인도사회는 종교적 성자들을 존경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 청·장년기 까지는 세속적인 사회생활을 하지만 만년에는 수행의 길을 걷는 것을 이상처럼 여겼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불교이전부터 출가, 해탈, 열반 등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만년의 수행 생활자들은 슈라마나(Sramana)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음 나는 대로 사문(沙門)이라고 하지만, 그 원래의 뜻은 ‘집 없는 삶’이라는 의미이다. 집을 떠나고 가족을 벗어나서 고독 속에서 무애의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모든 인도인들은 힌두(Hindu)로 태어나서 힌두로 삶을 마감한다. 그 힌두의 성지가 바라나시(Varanasi)이다. 갠지스 강이 굽이쳐 삼각주를 이루는 지형인데, 모든 인도인들은 이곳에 뼈를 묻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효도는 부모님을 호의호식시켜드리고, 마음 편하게 모시는 일이지만, 인도의 효자들은 늙은 부모를 이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에 태워 드리는 일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바라나시의 부둣가에는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널브러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머리맡에 있는 깡통은 동냥 통이 아니라 장례비용을 바라는 공양통 이었다. 인도정부에서는 그 모습들이 외국인들의 혐오를 사고 인도를 그로테스크한 나라로 볼 수 있다고 해서 강제로 해산시켰다. 지금도 갠지스 강 주변에는 열네 군데의 대형 가트(Ghat, 화장터)가 있어서 쉼 없이 불을 내뿜고 있다.

그러나 출가의 삶은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는 불교를 비방하는 빌미가 되었다. 충효적인 정서가 강한 나라들에서는 불교의 도리가 출세간적(出世間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출가라는 어휘가 썩 내키지는 않는다. 가출이라는 말과 앞뒤가 바뀌었을 뿐이고, 가출하면 자꾸 비행 청소년이나 바람난 아줌마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서양의 위대한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부처님의 출가를 집 없음(Homeless)이라는 말 대신에 ‘위대한 포기(Great Renunciation)’라고 쓴다. 집이라는 소시민적 자아대신에 보다 넓고 고귀한 희생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세속의 영화, 티끌 같은 욕망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더 많은 중생들의 안락을 도모해야 한다. 부처님의 출가는 결코 생로병사를 극복하려는 개인적 의지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보다 많은 생명들의 가치 있는 삶을 위한다는 적극적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출가의 의미가 보다 보편화되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이제 우리 사회도 출가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 이 좋고 좋은 세상에 왜 고행의 길을 걷는가하는 세속적인 잣대를 거두어야 할 때이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돈 벌고, 높은 자리 오르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지만, 남을 위한 헌신, 자기희생이 더 큰 행복일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가 앓고 있는 병은 이 위대한 정신을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하는데서 비롯된다. 승단이 출가정신을 회복할 때 불교가 건강해진다. 불교가 건강해야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다.

요즘 불교나 가톨릭의 공통적 고민은 출가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각 종단에서 그 구체적 내역을 밝히기 거북해 하지만, 이점은 그 종단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그들이 속해있는 국가사회의 ‘양심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일등국가의 요건은 결코 경제적·군사적 조건만이 아니다. 문화를 사랑할 줄 알고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종교를 존중할 줄 아는 나라가 바로 일등국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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