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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하게! 단, 누드는 NO!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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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 ‘마드모아젤C’

‘보그’ 이끈 패션계 전설 카린 로이펠트의 도전

나는 요즘 영화포스터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마디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거리 벽면에 나란히 붙는 옛날식 포스터들을 보는 일은 이제 찾을 수 없다. 그저 극장 로비 한쪽구석에 맨질맨질한 광고전단지 같은 질감으로 영화제목을 큼지막하게 써놓거나 주연배우 얼굴 하나로 도배를 한 배너광고판들 정도뿐이다. 포스터가 더 이상 포스터 노릇을 하지 못하는 영화세상. A4크기로 획일화된 영화홍보지들이 아무렇게나 관객 손에 들렸다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왜들 영화포스터에 신경을 안 쓸까? 그 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것 자체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파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돈 가진 관객들을 동원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거 보고 극장 오는 사람 없다. 요즘 세상에 거의 있으나마나한 종이홍보지에다가 누가 강렬한 인상을 흩뿌리며 미적인 도전을 심어놓을 생각을 하겠는가?

영화포스터에 스며있는 경제논리는 아마도 그보다 차원이 훨씬 높은 패션잡지에서라면 사정이 다를 것 같다. 같은 종이매체로서 한쪽은 한 장으로 승부를 거는 것인데 반해 다른 한쪽은 그런 것을 수백 장 모아 정기적으로 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도 시각적 부담이 대단히 큰 패션아이템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온갖 황홀경을 다 집어넣어도 모자랄 것만 같다. 패션계에 몸담고 있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한순간 스쳐가는 그 휘황찬란한 이미지들의 향연에 너무 쉽게 넋을 놓게 된다. 그래서 패션잡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안 봤어도 이름은 들었을 것이다. 패션의 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랑스 본토에서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록의 패션잡지로 통하는 ‘보그(VOGUE)’. 이 잡지를 장장 10년간 이끌며 ‘패션계의 전설’로 이름을 떨친 카린 로이펠트가 권위와 안락이 보장된 편집장직을 기탄없이 내던진 이유를 처음에는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마드모아젤C>는 패션세계의 최전선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이 가지는 미적 긴장감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한 ‘패션북 에디터’의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는 과감한 도전과정을 찬찬히 그리고 활기차게 따라간다.

언뜻 이 영화 초반에서는 그녀가 왜 앞날이 보장된 편집장을 그만두게 됐는지 그 이유가 절절히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저 많은 고민 속에 이뤄진 결정이라는 대사 하나로 간단히 넘겨버린다. 영화 속에 노출되는 그녀의 다양한 면면들은 일반적인 패션잡지에서 벗어난, 그것이 자신의 손에 있던 ‘보그’였어도 기꺼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인쇄매체 ‘패션북’을 만들어가는 데에 온힘을 쏟는 모습들에 집중돼있다. 변화의 결심을 내린 이후에는 그 이전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제 영화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녀의 패션북에 담긴 몇몇 흥미로운 콘셉트들을 떠올려본다. 주목할 것은 그녀가 기상천외한 연출방향을 가지고 사진작업을 이끈다 하더라도 결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벗어난 것을 도입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패션지로서는 이례적으로 갓난아이를 대상으로 한 사진을 타이틀로 내세우고 거기에 일급 사진작가를 섭외하는데 그런 콘셉트를 추진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자신의 딸이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데 있다는 식이다.

그녀의 패션북에 삽입되는 많은 모델들의 모습에서 대단히 눈부시게 나타나는 것은 이른바 ‘섹시 콘셉트’다. 카메라 앞에서 요염하게 포즈를 취하는 관능미 넘치는 모델들에게서조차 그들이 더 이상 끌어내지 못한 지독히 유혹적인 ‘섹시 요소’를 추출하는 그녀의 솜씨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한다. 심지어 시체로 분장한 모델들의 정지된 자세에서조차 탁월한 ‘탐욕’을 포착한다. 하지만 공동묘지를 무대로 할 때에는 비록 뇌쇄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 벌거벗은 미녀가 연출 콘셉트로 제시되더라도 그녀에게서는 단박에 금지된다. 홑겹의 천 조각으로라도 나신을 가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에게 패션의 의미이기 때문에!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온다. 카린 로이펠트는 왜 과감하게 ‘보그’를 떠났을까? 아무리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경제논리에 갇혀지게 된다면 한 장의 영화포스터나 두꺼운 패션잡지나 시큰둥해지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거기서 맹렬하게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아름다움의 세계로 가는 첫 관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멀리 가자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이런 뜻이다. 섹시하게! 단, 누드는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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