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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잔상 곱씹어 보면 의미 새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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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잔상 곱씹어 보면 의미 새로워
  • 김지용 교수(중부대 연극연화학과)
  • 승인 2016.05.26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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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쉐이크 | 영화 감상하기와 생각하기

‘영화를 감상하다’와 ‘영화를 생각하다’는 말은 참 많이 다르다. 예전 유학시절, 한 백발의 교수님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했다. 잠시 망설이다 ‘사실 어찌어찌 만들 줄은 알겠는데 진짜 영화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난 학기 한 학생이 졸업 영화를 편집하다가 ‘교수님, 영화를 어떻게 해야 잘 만들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학생의 질문이었다.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져보고 고민해봐’라고 답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스무 살, 첫 단편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영화를 감상하기보다는 생각하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말하면 분석하고 비판하며, 조금 더 나아가면 완전히 비뚤어진 시선으로 극장에 앉아서 감독의 연출과 영화에 불만을 쏟아내고, 내친김에 사회 불만까지 표출했던 시기다. 초등학생시절부터 줄 곳 대학가에 살며 최루탄 냄새를 반찬삼아 살아가던 청년에겐 당연했던 심리상태가 아니었나 하는 위안을 가져본다.

1992년 청년기에 갓 들어간 나에게 영화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던 한 편의 영화가 있었다. 당시 영화 속 존재 자체가 ‘클리쉐(Clicher)’였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용서 받지 못한 자(Unforgiven)>라는 영화였다.

지적인 외모의 소유자이며 명감독이었던 로버트 레드포드나 웨렌비티 같은 사람만 알고 있던 나에겐 웨스턴 영화나 <더타하리>같은 영화의 주연을 하며 소영웅주의 놀음에 빠져있던 사람이 무슨 영화감독이냐며 의구심을 가지고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미국의 정치 경제적 패권주의가 극에 다다른 1차 걸프전 전쟁 당시 <용서받지 못한 자>는 나에게 오히려 많은 질문을 던져댔다. 과연 우리가 생각한 정의라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그 정당성이 인정이 되는 것인가 하는 어쩌면 원론적인 고민을 다시 하게 만든 영화였다.

'변호인'
'변호인'


작은 시골 마을에 한 무리의 악당이 쳐들어와 말썽을 부린다. 부패한 공권력 대신 과거 도살자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현재에는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옛 악당(클린트 이스트 분)을 불러들여 현재의 악당들을 소탕하며 선을 이룬다는 이상한 문법의 권선징악 영화였다. 스무 살 청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아주 이상한 논리의 평화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그 시절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 세계관을 정면으로 비판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영화가 아닌가 싶어, 열렬한 응원과 함께 이 서부영화의 영웅을 조금은 좋아하기 시작했다.

요즘 30년 전의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가 연일 화제다. 바로 <변호인>이다. 균형 잡힌 연기들이 영화의 격을 많이 올렸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부림 사건을 다룬 이 영화의 핵심은, 결국 모든 권력의 핵심에는 국민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전직 대통령들의 많은 잔상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30년 전 보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였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차분하고 큰 동요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비판이나 성토 없이도 영화의 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영화가 주고자 했던 진정성을 받아들이는데 조금은 익숙해져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며 기억하는 것처럼, 영화도 지나간 잔상에 대해 한 번 더 곱씹어 보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영화들이 참 많이 있다고 말 하고 싶다. 어쩌면 영화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그저 지나쳤던, 더 많은 숨은 이야기를 해주기를 조용히 영사기 렌즈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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