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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사랑이 더 많았던 지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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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사랑이 더 많았던 지난날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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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 사랑해 진영아

동네 아담한 극장에서 소소한 이야기가 상큼발랄하게 전개되는 영화를 볼 수는 없을까? 으리으리한 초호화 최첨단 빌딩에 고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고 왁스칠에 번들거리는 상영관 복도를 밟고 지나가 인체공학적으로 만든 좌석에 앉는 순간 그런 소박한 관람태도는 싹 사라지고 만다. 멀티플렉스영화관에 돈 내고 들어서는 관객들은 으레 그런 건물 분위기에 걸 맞는 돈 값하는 영화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블록버스터영화들은 사람들의 체취가 살아있는 일상의 드라마를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한다. 도시 전체를 미사일로 사정없이 때려 부수고 있는데 언제 공부 안하고 바깥으로 싸돌아다닌다고 된통 야단맞는 여자아이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여유가 생기겠는가. 우주 바깥에서 지구를 공격하는 괴상한 에일리언들이 판치는 스크린에서 별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어느 소녀의 짝사랑 남친을 위한 종이거북이 선물상자에 행여 눈길이나 가겠는가.


지난 11월 잠시 개봉관에 걸렸다가 내린 나름 소소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기로 한다. ‘소개하면 뭘 하냐, 볼 수도 없는 영화를!’ 이런 독자님들을 위해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인터넷에서 ‘인디플러그’ 홈페이지(www.indieplug.net)에 접속하시라. 회원가입하시고 <사랑해 진영아>라는 영화제목을 검색해 다운로드하시면 된다. 인디플러그는 독립영화를 합법적이고도 안전하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독립영화전문 다운로드사이트다. 극장표 절반 값에 볼 수 있으니 이참에 독립영화도 응원하고 ‘굿 다운로더’도 돼보시면 어떨까 한다.

영화 <사랑해 진영아>에는 이로 보나 저로 보나 귀여운 티가 마구 묻어나오는 여배우 김규리가 출연한다.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스크린 점유율을 자랑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갖 일상적 표정들을 남김없이 그리고 주저함 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금방 자다 일어나 부스스한 눈길로 산발한 머리를 긁적거리는 모습에서 잘 차려입고 들어선 면접장에서 푼수 끼를 발산하다 낭패를 보는 모습까지 취업전선의 20~30대 젊은 세대라면 1%의 특권적 존재들을 빼고는 99%가 모두 겪었을 다채로운 삶의 면면들이 다 나온다.

영화 속에서 김규리가 연기하는 진영이라는 여성은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이다. 영화제작사에 원고를 내밀지만 자신이 주력으로 삼는 ‘좀비’ 주인공의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제작자로부터 쓸데없는 고집만 부린다고 타박을 들을 뿐이다. 진영이는 돈도 못 벌지만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전문직으로 잘 나가는 이복 여동생의 집에 얹혀살며 열등의식 속에 사로잡혀 지내왔다. 진영이는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콩쥐팥쥐의 콩쥐처럼 계모 슬하에서 팥쥐 같은 여동생에게 모든 걸 빼앗겨왔다고 생각하는 터다.


이 영화의 말미에는 회심의 반전이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고 찾아보실 독자님들을 위해 말을 아끼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짚어볼 중요한 것은 과거를 재인식하는 방식이다. 자기 딸이 엄연히 같이 성장하고 있는 계모 밑에서 자라는 여성은 자신의 성장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신이 의도치 않은 불행에 대한 피해의식이 아마도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사랑해 진영아>는 그런 생각 속에 가려진 소소한 일상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되새겨 보게 한다. 불행보다 크기는 작았으나 그 수에 있어서는 훨씬 더 많았던 행복들. 그렇게 사랑이 더 많았던 지난날을 소소한 감동으로 느끼는 영화라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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