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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댕강 날아가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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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댕강 날아가는 순간들
  • 송길룡
  • 승인 2016.05.26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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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다고 못 보겠다면 뭐 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 장면들을 만나는 일은 흔하지만 스크린에 그런 장면들이 버젓이 노출된다고 해서 굳이 두 눈 똑바로 뜨고 그것을 또렷하게 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대체로 여성관객들은 아무리 멋진 남자배우, 여자배우들이 즐비하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특히 본인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비인간적 행동들을 연기로 옮겨놓은 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일은 피하려고 한다. 남성관객들의 관람패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험악한 장면들을 회피한다고 해서 그런 관객을 영화에 대해 불충실하다고 여길 수는 없다. 인간적으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은 고개를 안 돌리더라도 눈꺼풀만은 내려감는 게 보통의 심리다. 차라리 정상적이라고 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장면을 똑바로 쳐다보고 때로는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주로 남성관객들은 참혹한 장면들을 잘 견디며 본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장면보다 더욱 잔인한 방법을 제시하며 시시하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사실 이 정도면 취향의 문제를 떠난다.


눈앞의 영화를 통해 비인간적 살해 장면을 세세하게 경험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수한 다른 감정과 경험을 가진 관객들이 있으니 관객 입장을 두루 헤아리며 수용방식을 논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가장 기준적인 접근방법은 간접체험을 통한 경계심 형성이라는 측면에 있는 듯하다. 나쁜 짓 하다가는 끝장나는 줄 알라, 뭐 그런 협박 비슷한 경고의 교훈을 밑바탕에 깔아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최근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카운슬러>는 스릴러의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확실히 범죄에 잘못 걸려든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징벌의 수위를 놓고 보면 앞에서 말한 경고의 서사적 전략을 쓰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관객들이여, 세상이 이렇게 험악하니 행여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이 영화에서처럼 지옥에 떨어지지 마시라, 그런 류의 공포체험장이란 것이다.

어차피 <카운슬러> 역시 오락영화의 범주에 든다. 물론 세세하게 깃든 명대사들이 과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어떤 경지를 느끼게 한다. 감독인 리들리 스콧도 이름값을 하는 영화거장이지만 각본을 맡은 코맥 맥카시도 관록을 자랑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어찌 영화를 보고 남성미 넘치는 둔중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수 있을까. 오락영화라고 딱지를 붙임으로써 평가절하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 수준의 오락영화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말하는 것이다.


<카운슬러>를 보며 오락영화를 즐기는 재미를 뽑아낸다면 나는 뭐니 뭐니 해도 머리를 댕강 날려버리는 살해 장면을 꼽고 싶다. 머리가 잘리는 (또는 잘린) 주요 장면이 세 개가 나온다. 과속으로 오토바이를 달리던 마약배달꾼이 때마침 킬러가 설치해 놓은 도로 위 철끈에 목이 날아가는 장면. 주인공의 약혼녀가 목이 잘린 채 쓰레기더미에 버려지는 장면. 마약중개인이 기계올가미에 목이 졸려 핏줄을 터뜨리며 버둥거리는 장면.

내가 그런 장면에서 재미를 느꼈다고 하니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사실인즉슨 이렇다. 그 장면들 자체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이다. 나 역시 얼굴을 비스듬히 돌리고 힐끗거리며 봤다. 그런데 어떤 재미를 느낀 것이냐 하면, 목을 잘라 머리를 날려버리는 그 액션을 통해 바로 말 그대로, 형상인 바 그대로 ‘끝장’이라는 의미를 간취하는 통렬한 해석적 발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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