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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에 떠밀려가는 영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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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에 떠밀려가는 영화문화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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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언제나 새로운 영화만을 봐야 하는가?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기간은 대개 1주일 정도다. 별달리 관객을 동원하지 못하는 경우는 아침이나 낮 시간대에서 겨우 상영 횟수만 채우다 며칠 만에 상영종료하게 된다. 다른 개봉영화들에 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착하게도 극장수입을 실하게 올려주는 영화는 특히 멀티플렉스영화관에서는 당연히 쾌적한 상영관을 배정받고 다른 영화들이 새로 나오건 말건 상영일정표를 독차지한다. 그나마도 자리가 부족한 개봉영화들이 더욱 울상이 된다. 이 모두가 새로운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가 넘는 상영관을 보유한 멀티플렉스영화관에서는 늘 개봉한 지 얼마 안 되는 따끈따끈한 찐빵 같은 영화들이 바글바글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영화를 골라봐야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즐비한 포스터들을 이것저것 몇 장씩 움켜쥐고 새 입맛을 다시는 관객들은 매번 새로운 진열대에서 신기하게 생긴 알록달록한 사탕을 골라먹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영화관에서 ‘새로움’이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됐다.

멀티플렉스영화관은 사실 그대로를 말하자면 ‘영화 신제품 판매장’이다. 거기서 오래오래 묵혀두고 감상하고 싶은 손때 묻은 명작영화를 다시 감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간혹 예전에 인기 있었던 영화가 재개봉되는 경우가 있다.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가 조곤조곤 사랑의 느낌을 먼발치서 주고받는 따사로운 로맨스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가 최근 극장 상영표에 등장했다. 이런 일은 차라리 극히 드문 예외다. 그런데 얼마나 ‘개봉’이란 말에 얽매여 있는지 어쨌든 ‘재개봉’이란다.

한국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세종시지회(세종민예총)에서 작은 영화모임을 가지고 고전명작영화들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11월5일에는 대만의 영화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연연풍진>(1986)을 봤는데, 나는 내심 이야기가 느릿느릿 전개되는 이런 옛날영화들을 지루하게 보게 될까봐 걱정했지만 예상 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멀티플렉스영화관에서 보던 영화들과는 다르게 크게 재미를 느꼈다는 평도 나왔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영화들의 ‘새로움’ 속에서 어느새 관심바깥으로 잃어버린 고정불변의 옛것으로부터 또 다른 ‘새로움’을 느껴볼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나온 1990년대 후반기는 이른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며 영화제작의 신구세대 교체가 일어나고 영화산업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오던 때였다. 바로 그때 처음으로 서울에 대형 멀티플렉스영화관이 생겼다. 반응은 엇갈렸다. 얼마 못 가 경영난에 허덕일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부터 매표수입의 체계화로 극장문화를 선도할 것이라는 긍정적 견해까지 다양한 관심들이 나타났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 것은 관객이었다. 물밀듯이 몰려든 관객의 싹쓸이 현상으로 인근 재래극장들이 문을 닫는 사태가 속출했다.

그 시대 영화를 보는 느낌은 그런 것이다. 영화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싸고 영화문화, 극장문화가 선진화의 미명 아래 상업화 일변도로 치달아버린 안타까움을 되돌아보는 일이 돼버린 것이다. 어쨌든 대세는 ‘새로움’에 떠밀려가는 영화세상이다. 잠시라도 눈을 되돌릴 각성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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