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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트립] 별 빛 가득한 백두산 지구, 지린성 바이산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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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트립] 별 빛 가득한 백두산 지구, 지린성 바이산의 밤
  • 정은진 기자
  • 승인 2022.10.2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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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진의 포토트립 3편] 가을에 만난 백두산 너머의 은하수...백두산 여행기 2편
백두산이 있는 중국 지린성의 바이산 지구. 가을 단풍이 든 이 곳에 광공해 하나없이 별이 아름답게 떠 있다. 정은진 기자

[세종포스트 정은진 기자] 백두산 등정을 마치고 온천지대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마치 외계의 어느 행성에 발을 디딘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외계의 풍경을 스크린에 묘사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의 춥고 메마른 지형에서 촬영을 감행했던 영화 '인터스텔라'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 백두산 지대를 여행했더라면 분명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등장했을법한 그런 낯선 풍경을 가진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여름에도 폭포 아래 지난 겨울의 눈이 만년설처럼 남아있는, 200미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높이 68m의 장대한 폭포, 비룡폭포다. 

한여름에도 폭포 아래 지난 겨울의 눈이 만년설처럼 남아있는, 200미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높이 68m의 장대한 폭포, 비룡폭포. 정은진 기자

사실 내 여행 인생에서 이렇게 큰 폭포를 만난건 처음이다. 

캐나다에 오래 살았던 남편은 매번 나이아가라의 위용을 내게 자랑하곤 했었는데 큰 폭포를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 자랑이 꼴사납게 보일때도 있었는데 돌아가 나도 자랑스럽게 약올려줄 것이 드디어 생겼다. 

잘 보이진 않지만 폭포 옆으로 나 있는 길은 백두산 천지로 가는 등산로다. 겨울철에는 눈으로 덮여 있어 접근이 쉽지않고 눈이 걷히더라도 암석적인 특성으로 등산로 주변이 쉽게 무너지거나 미끄러져 통행이 가능한 날이 많지 않다고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운 좋게 이 루트로 등반한 적이 있다. 

백두산 화산 지구에서 쏟아지는 온천수. 정은진 기자
백두산 화산 지구에서 바라본 온천지대. 뜨거운 김과 함께 유황과 이끼가 섞여 독특한 색을 만들어낸다. 정은진 기자

여행지에선 특정한 목적지가 있을땐 앞만 보고 걷기보단  걷는 중간중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곤 하는데  그 과정이 사뭇 새로울 때가 많다. 

처음 출발했을 때의 긴장감, 설레임. 중간 즈음의 힘듦, 체력고갈, 짜증, 포기에 대한 유혹까지......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을때의 환희,기쁨. 그 여러가지 감정들이 고스란히 저 길 위에 묻어있으니까. 

물론 나 혼자만이 아는 흔적이지만 그럴지라도 그 과정들이 무척 사랑스럽다.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는 길을 다시 걸어 내려간다.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유황냄새가 끓어오르는, 그 위에 깍아지른듯한 폭포가 자리잡은, 한반도에선 지리적으로 유일한 이 곳, 이 특별한 이 곳을. 

백두산 화산 지구까지 마친 후, 지린성 바이산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하니 장시간 버스여행과 백두산 등정으로 지친 몸이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아직 이렇게 아름답게 볕이 들지만 곧 어둑어둑해질 시간. 하루만 묵을 예정이라 이 풍경을 지금밖에 보지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치만 아쉽다는 감정은 육체의 피곤함에 이기지 못한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얼마쯤 잤을까. 눈이 번쩍 떠진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깊게 잠든 잠을 깨운 것이다. 공기감이 무척 상쾌하다. 

가을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낙엽냄새가 찬 공기에 섞여있어 마치 에어테라피를 받는 것만 같다. 이불 안에 얼굴만 내어놓고 꼼지락대다가 핸드폰을 본다. 밤 9시.

고된 여독에 지친 몸은 늦은 오후부터 잠이 든 탓에 9시를 넘기지못하고 세포 하나하나 일어나버려 더 자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날씨는 흐리다. 이 곳에 온지 며칠, 제대로된 밤하늘을 보지못해 아쉬웠는데 오늘도 흐린 날씨라니.

잠도 오지 않는 대체 여기서 뭘 해야할까 고민하며 로비에서 대동강 맥주 하나를 사 들고 로비 밖 마당으로 나갔다. 세상에. 어플의 날씨만 믿고 구름이 잔뜩 끼어있을거라 기대치도 않았던 이 곳의 밤 하늘이 활짝, 정말 만개된 꽃처럼 활짝 열려있다. 



희고 앙상한 나무들과 붉게 물든 단풍과 숙소의 붉은 조명이 별이 무수히 빛나는 밤 아래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다. 한번도 보지못한 동양적이면서도 화려한 이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은하수 사이로 별똥별까지 가로지른다. 

운좋게도 이 곳은 광공해가 숙소의 불 빛 밖에 없었다. 그 불빛은 밤 늦은 시간, 이 광활한 침엽수림대 안에 별을 보기위해 홀로 ​​​나와있는 내 시야를 어지럽히기보단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주위가 전부 깜깜했다면 별을 보기엔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겠지만 아마 혼자 밖에 나와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 낯선 중국 땅의, 있는 거라곤 커다란 나무 밖에 없는 곳에선 더더욱.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큰 건물 하나도 없이 하늘이 넓게 열려있다. 어두운 곳으로 가면 숙소 조명도 간섭하지 않는다. 별을 보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곧게 뻗은 침엽수 위로 아름다운 단풍, 그 위로 은하수도 보인다. 

백두산 지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삼아 여름에 보기 좋은 은하수를 가을의 절정에서 만나다니 나는 무척 운이 좋다. 

깊어가는 밤의 어둠과 함께 은하수도 점점 짙어지고. 카메라 셔터를 열어놓고 서거나 앉거나 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가을의 대표적 별자리인 안드로메다 자리가 은하수 옆으로 보인다. 

은하수의 가장자리, 어마어마한 별들이 흩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우리 은하를 닮은 나선 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가 보인다. 안드로메다자리의 옆에 있는데 맨눈으로 보면 희뿌연 구름같아 보이지만 3천억 개가 넘는 별이 모인 거대한 은하다.

남반구의 마젤란 은하를 빼고는 북반구에서 망원경 없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바깥은하. 우리와 220만 광년 즈음 떨어져있는데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이다. 

이 아름다운 빛 무리는 200만년이 넘는 긴 시간을 거쳐 지금 내 눈에 맞닿아 있다. 200만년,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 나는 저 아름다운 빛 무리를 통해 불가능이라 믿었던 시간 여행을 미약하게나마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가을 낙엽 향기가 풍겨오는 곳을 바라본다. 그 곳에 붉게 물든 풀밭과 자작나무 숲 위로 송전탑이 솟아나 있다. 그 위로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빛나는 것이 보인다. 지평선 위로 겨울철 별자리인 황소자리가 뜨고 있는 것이다. 

별을 보기 시작한지 시간이 꽤 지났음을 별자리가 알려준다. 시계가 없던 오래된 과거, 인류는 시간과 방향을 알기위해 별자리를 이용했다. 나도 마치 그때의 인류중 한 사람이 되어 과거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나는 여행지를 고를때 자연을 마주하고 밤하늘을 보기위해 선정할정도로 별 가득한 밤하늘을 사랑한다. 

이 곳도 백두산 지구의 별을 보기위해 선택한 여행지였지만 백두산 정상에서 보지못한건 무척 아쉬웠었다.이렇게까지 맑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이 중국 오지 땅에서 만나게 될줄은 몰랐다. 

위도높은 이곳의 가을, 영상 3도까지 내려가는 이 곳의 이른 추위도 잊을만큼 무척 황홀했다. 

여행을 갈때마다 챙겨가는 헤드랜턴으로 숲을 비춰본다. 별이 가득한 이 곳 아래, 밤을 모험하는 내 지금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적절한 장소가 어딜까 찾아본다.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 별 밤아래 낯선 여행지와 하늘을 탐닉하는 내 작은 뒷모습.

이 밤하늘 아래서 앞으로도 지구 구석구석 다니며 '내 모습을 함께 남겨놓고 싶다'고 다짐한다. '앞으로의 여행에선 혼자 별을 보는 밤이 무섭게 느껴져도 좀 더 용기를 내보자'고도 마음먹는다. 

어마어마한 시간동안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온 지구. 이 곳에 살고있는 너무나 짧은 시간, 너무나 작은 곳만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내일의 내 삶도 알 수 없는 아주 작고 연약한 생명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한다. 그런 나약한 존재지만 미약하게 죽고싶진 않다. 

낯선 곳의 가을밤 공기를 용기와 함께 들이마신 뒤, 발 아래 놓여질 광활한 지구의 어느 곳, 다음 행선지로의 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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