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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울려퍼진 '손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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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울려퍼진 '손에 손잡고'
  • 이계홍
  • 승인 2021.10.30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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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북방 외교 통해 반쪽 뿐인 세계를 온 세계로 떨쳐나간 진정한 보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올림픽담화발표모습2(1988)&nbsp;ⓒ대통령 기록관<br>
노태우 대통령 올림픽담화발표모습2(1988)&nbsp;ⓒ대통령 기록관<br>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30일 서울올림픽 평화공원에서 울려퍼진 88서울 올림픽의 주제가 ‘손에 손잡고’. 테너 김응균과 가수 인순이가 함께 열창한 이 노래는 필자에게 88서울 올림픽의 감격을 호출했다. 그때의 감동이 소환돼 가슴 뭉클했다. 그 기간은 가족과 함께 매일매일이 행복했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들 가슴 고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 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 잡고...

암울한 군사독재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 당시 잠실의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개막식 행사에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는 실로 인류 평화제전의 신호탄이었다. 

적대와 국경과 종교와 이념을 넘어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 손잡고...”라는 이 메아리는 돌이킬수록 감격스럽다. 

이 노래는 1989년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 때 널리 불려진 주제가였다고 한다.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이 공산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 시위를 벌일 때, 투쟁가로 불렀다는 것이다. 이 작은 노래가 나비효과가 되어 끝내는 동독이 무너졌다. 

따지고 보면 민주화의 진원지가 한국이고, 동유럽 민주시민에게 용기를 준 것이 ‘손에 손잡고’였다고 해도 무리한 해석은 아니라고 본다.

최근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 시위대가 5.18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거리 투쟁에 나선다고 했지만, 그에 앞서 ‘손에 손잡고’는 동유럽 민주화를 촉진한 노래였던 셈이다. 우리의 자존감을 한없이 드높여주는 노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Ktv 라이브 방송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지켜본 필자는 고인의 업적이 의외로 역사에 묻혔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는 분단 구조 하에서 북방 외교를 펼치고, 남북 화해를 위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91년 12월 13일)이라는 남북기본 합의서를 만들어냈다. 보통 뚝심이 아니면 밀어붙이기가 힘들다. 냉전 반북으로 기득권을 형성한 세력이 지배세력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야 애초부터 남북 평화공존을 정치철학으로 내건 인물이니 당연한 업적이지만, 당시 반공·반북·냉전·대결주의로 40년 체제를 유지해온 집권 보수 정당에서 이같은 북방 외교와 남북 화해 정책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의제였다. 만약 이때 김대중이 이를 들고 나왔다면 그는 또다시 체포되었을 것이다. 

당시 보수 집권당은 북한과의 대결로,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로 권력 유지의 틀로 삼았는데, 노대통령이 이를 묵살하고 과감히 북방외교를 밀어붙인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그의 업적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지금부터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에게는 12,12 쿠데타의 원죄가 있다. 군부 실세였던 만큼 5,18 학살의 책임도 없지 않다. 그러나 반성하고 회개했다.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은 그 어떤 용기보다 큰 용기다. 우리가 역사가 청산되지 않은 것은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고 더 떵떵거리고 오만과 군림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반성했다. 역사적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면 그를 감싸안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88 서울올림픽은 냉전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의 첨예한 대립을 마무리짓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손에 손 잡고>가 그 상징이다. 그런 면에서 88서울 올림픽은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 평화 제전을 노태우가 성공시켰다. 

필자는 지난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한 그를 통해 보수의 참 모습을 본다. 따라서 그는 보수에 가장 충실했던 정치 지도자였다고 평가한다.  

우리가 흔히 우리의 기득권 보수에 대해 서구의 개념과 달리 ▲잔인성과 폭압성 ▲특권 ▲반칙 ▲탐욕 ▲오만과 군림으로 정의해왔다. 지난 70여년 체제를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인식해왔다. 물론 노태우 대통령에게서도 주변 인물들 때문에 그런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신의 캐릭터만으로 보자면 진정한 보수의 가치인 ▲품격 ▲배려 ▲헌신 ▲포용의 덕목이 담겨있다고 본다. 

‘물태우’라는 오명까지 쓰면서도 그는 포용과 품격을 지키려 했다.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도 지적했지만, 12.12와 5.18의 과오를 통절하게 반성한 그가 용기있는 보수 대통령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한 단계 성숙된 마음으로 88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우리의 국격을 높이고, 북방 외교를 통해 반쪽 뿐인 세계를 온 세계로 떨쳐나간 출발선에 섰으며, 그 외교력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7대 경제대국이자 수출 시장을 크게 확장시킨 공로로 그를 재평가하자고 말하고자 한다. 그는 보수·진보를 망라해 어느 대통령보다 공이 많은 지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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