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성추행·성차별', 우리 내면의 가부장적 유교관부터 바로 잡자
상태바
'성추행·성차별', 우리 내면의 가부장적 유교관부터 바로 잡자
  • 이계홍
  • 승인 2021.02.01 10:5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필의 시선] 지도층의 성 인지 능력 저하, 뿌리깊은 유교적 ‘마초근성’ 때문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계속되는 성추문... 사회 지도층의 자성 절실, 양성 평등 문화 고취해야
(왼쪽부터) 최병조 세종지속가능발전협의회장, 박정희 세종여성유권자연맹대표와 아들 한현규 군, 서연·재희·지후 아빠 박정규 씨, 민서 아빠 최민호 씨, 시민 김혜영·하헌성 씨, 김소형 씨 가족.
2019년 세종시에서 릴레이로 진행된 '성평등 히포시 캠페인'. (왼쪽부터) 최병조 세종지속가능발전협의회장, 박정희 세종여성유권자연맹대표와 아들 한현규 군, 서연·재희·지후 아빠 박정규 씨, 민서 아빠 최민호 씨, 시민 김혜영·하헌성 씨, 김소형 씨 가족.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필자는 임진왜란·정유재란·이괄의 난·정묘호란 등을 평정한 팔도도원수 장만 장군(1566-1629) 이야기를 ‘오피니언 타임즈’에 연재하고 있다.

역사소설 ‘불타는 나라-선조·광해군·인조대의 중립외교 설계자 장만 장군’이란 제목의 글이다.

장만 장군은 개혁의 아이콘 최명길의 장인이며, 중립외교 노선을 주장해 당시 친명사대(親明事大)의 주류 사회에서 평생 비주류로 살아온 인물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조선조의 천민 세계를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조선조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 체제이고, 유교적 윤리관이 뼛속까지 스며든 구조다. 사대부를 비롯한 양반층이 이런 이념으로 세상을 지배했다. 

양반층 이외의 사람들은 사실상 그들을 받쳐주는 도구였다.

상민과 중인 계급이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이들 역시 양반층의 ‘호구’였다. 그렇다면 천민, 노비들은 어떻겠는가. 두말할 것없이 ‘벌레’ 취급을 받았다.   

승려, 무당, 백정,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工匠:대장장이, 또는 도자기 굽는 이) 등... 

이들 뿐이겠는가. 숯굽는 이, 초부(樵夫), 보부상, 염부, 직제공 등 모든 생산직의 상민이나 하층민은 양반층의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 동원된 노동력이었을 뿐이다.

기록에는 중인 계급에서 노비까지가 조선조 인구의 50%를 차지해 양반층의 하인으로 살아왔다. 이러니 나라의 역동성이나 발전상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조 사회는 문자 그대로 5% 안팎의 양반층을 위해 90% 이상의 상민과 천민이 받쳐주는 구조였다. 노동의 대가를 받기는커녕 심부름 한번 잘못했다고 두둘겨 맞고, 심한 경우 맞아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반발하면 나머지 가솔마저 살았다 할 것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남부여대 짐을 챙겨 유민(流民)으로 떠돌다 변경을 넘어 만주로, 혹은 깊은 산이나 섬으로 들어가 살았다. 

양반층이라도 역적으로 몰리면 삼족이 멸해지고, 어떤 경우는 구족까지 멸했다. 반대파의 음해와 모함에 걸려 억울하게 사라진 경우도 많았다. 이런 때 그 사람은 효수되어 관아의 앞마당 장대에 매달려 하늘높이 대롱거렸다. 그 처자식은 노예로 팔려갔다.

이러니 모순에 대한 혁명을 꿈꿀 수 없었고, 결국은 수구 기득권의 세상이 500년간 유지되었으며, 끝내는 비참하게 망국의 비극을 겪었다. 

그런데 이때 더큰 희생자는 바로 여성들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깊이 박혀서 조선조 500년 내내 여자들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사회로부터, 혹은 집안에서조차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옛날 양반집 마나님이라고 해도 당장 그 남편으로부터 차별을 받는다. 동등한 자격이 될 수가 없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고, 부부유별이며, 지아비는 하늘이요 지어미는 땅이라는 세계관은 여성이 아무리 학문이 높고 똑똑한 여자라고 해도 남자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 낳고 가사노동이든 뭐든 무한 희생을 강요당했다. 

여성에게는 거의 교육도 시키지 않았으니 여성의 의식이 깨칠 수도 없었다. 동등한 인격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신분낮은 여성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남자가 아무리 바람 피고 첩을 서넛 거느리는 따위 형편없는 짓을 해도, 여인네들은 끽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살았다.

양반층의 아내가 그 모양인데 평민과 천민의 아내는 어떻겠는가. 뭇 사람들로부터 천대받는 그들도 자기 아내를 하대하는 것이다. 

여성 노비가 오늘날의 신데렐라처럼 혹 양반집에 시집을 가더라도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들은 노비가 된다. 제도적으로 신분 세탁이 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성웅으로 알려진 세종 때 만들어진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이다.

우리가 추앙하는 세종도 여성에 관한 한 이렇게 인권유린적 여성 천시 사상이 뼛속까지 스며있었다. 

이런 전통은 우리들의 혈관 속에 깊숙이 침윤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서구 문화와 현대화된 멘탈리티로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 내면에는 알게 모르게 여성 차별 의식이 깊숙이 내재해 있다. 제도와 윤리 규범에서도 그렇게 우리 가슴 저 밑바닥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요즘에는 성 인지 능력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데, 상황이 어떻든지간에 조선조 이후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오늘까지 이어져온 것이고 사회 지도층일수록 그런 현상이 심하다. 

몇 년전만 해도 골프장에 나가면 여성 캐디가 옆에 있건말건 걸쭉한 육두문자와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주인공 역할을 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런 음담패설을 잘하는 사람이 주인공처럼 행세했다.

그것이 회사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회식 자리에서 질퍽한 성적 농담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남성의 아우라를 이런 식으로 잡는 것이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군림하듯 뻐기며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일수록 더한다.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등 사회 지도층이 더많은 엄격한 기준이 필요한데, 그런 그들일수록 뻐기듯이 성을 소재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정도의 차이일 뿐, 그런 여성비하성 성 농담은 여전히 은밀하게 유통된다. 

사회적 책무의식이 강한 위치일수록 도덕적 잣대가 엄격해야 한다. 국민을 선도하는 역할과 책임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더 군림하며 이른바 ‘마초 근성’을 보이며 성희롱 농담을 걸죽하게 늘어놓고, 또 성추문을 일으킨다. 

어린 시절부터 평등 교육이 필요하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며, 의도적으로라도 여성 존중의 문화를 키워야 한다. 생명의 모체인만큼 우주의 모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전통적으로 뿌리깊이 박힌 성차별의 뇌관을 뽑아내야 한다. 제도와 윤리 규범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동안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혈맥 속에 관류하는 여성 차별 ‘유교관’만은 과감히 추방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21-02-02 04:51:51
성추행은 미국이나 일본의 포르노물(특히 Economic Animal이자 Sex Animal인 불교 일본은 야동.야설을 통하여 근친상간의 횡행)때문에 비롯되는것.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