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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울었던(?) 나무가 세종시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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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울었던(?) 나무가 세종시에 있다고?
  • 이주은 기자
  • 승인 2020.12.19 0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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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세종 한바퀴 연기면 3편] 연기면 세종리 600년 은행나무의 전설
고려말 충신 '임난수 장군'의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역사 쉼터
고목의 위용 드러내는 또 다른 명소, '임난수로 느티나무'... 세종시의 든든한 역사 지킴이
세종시 세종로 임난수 사당 앞에 위치한 600년 암수 은행나무 전경. 긴 세월이 묻어나 실제로 마주하면 그 위용이 대단하다.  (사진=정은진 기자) 

[세종포스트 이주은 기자] 사람이 살다 지칠 때 가끔은 말이 없는 것들이 위로를 주곤 한다. 늘 곁에 있는 작은 동산과 맑은 하늘, 그리고 한자리를 우직하게 지킨 나무들이 그런 존재다.

말없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듯한 자연은 언제나 든든하게 큰 위로를 건네준다. 연기면에서 신도심의 화려함과 대조적으로 낮은 땅에 깊게 뿌리 내린 큰 나무를 만났다. 그리고 왠지 모를 든든함으로 세종시가 다시 보였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 

지금은 은행잎이 다 떨어졌지만, 가을에는 노란 은행잎이 풍성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사진=정은진 기자) 

√ 나라를 위해 눈물 흘렸던 600년 고목, 세종시 은행나무

낙엽이 멋진 어느 날 누군가 그랬다. “저기, 세종리 은행나무 기가 막히게 멋지대!”란 감탄사에 “은행나무가 은행나무겠지”하고 듣고 넘긴 적이 있다.

한참이 지나 세종리에 웅장하게 그 위용을 드러낸 그 나무와 마주하자, 지인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한마디로 ‘아우라가 있는 은행나무’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말 제주도 정벌에 공을 세우고 공조전서를 지난 임난수(1342~1407년) 장군이 멸망한 고려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심었다고 한다. 

은행나무의 역사를 설명하는 현판.  (사진=정은진 기자) 

임난수 장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공주 금강변 삼기촌(현 세종리) 은거를 택했다. 이후 태조가 임난수 장군에게 여러 번 벼슬을 내렸으나 끝까지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는 사연은 잘 알려진 스토리다. 

이때 심은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가 600여 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무성하게 자라며 충절의 상징이자 세종시의 품격을 높여주는 역사 유산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일이 생길 때 마다 울었다고 하는데, 1910년 국권침탈과 6·25전쟁 때도 눈물을 흘렸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이 나무를 베려고 했으나 나무에서 소리가 나 베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세종리 은행나무는 지난 2012년 12월 31일 세종시 기념물 제8호로 임난수 사당 앞을 지키고 있다.

임난수 사당 앞에서 바라본 은행나무 풍경. 좌측이 숫은행나무, 우측이 암은행나무다. 나무아래로 떨어진 노란 열매는 모두 은행으로 무수하게 떨어져 있다. (사진=정은진 기자) 

현재는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지 맞은편 유보지 안쪽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멀리서는 볼 수 없는 기념물이나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전 정보가 없으면 이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국책연구단지 출발 기준, 햇무리교를 건너 우회전한 뒤 직진 도중 첫번째 길목에서 유턴해야 한다. 이어 세종교차로에 못 미친 우측편 전월산 통행금지 진입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약 5분간 이동하면 된다.  

은행나무와 직접 마주해보면, 그 신비스러운 느낌을 절로 느낄 수 있었다. 눈은 없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음과 귀는 없어도 모두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세종리 은행나무를 나오는 길 머리 위를 뱅뱅 돌던 매들. 이 자리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한자리를 빙빙 돌며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문득 세종시 중심에 이 나무에 있다는 것이 큰 후원자가 생긴 것 같은 든든함으로 다가왔다. 시민 누구라도 가끔 말 없는 위로가 필요할 때, 이제 연기면으로 향해보자.

600년의 비바람과 태풍을 견딘 은행나무의 노하우를 조금 알려줄 수도 있을 테니까.

신비스런 느낌마저 갖게하는 느티나무의 모습. 옛 연기군 주민들의 쉼터로 큰 역할을 해온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진=정은진 기자) 

√ 두 나무가 한 나무로 엮인 연리지를 떠올리게 한 '느티나무'의 위용

전월산 무궁화공원으로 향하는 길, 좌측편 국무총리실 공관을 지나 펜스로 가로막힌 우측 풍경을 바라보면 고색창연한 느티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아름드리 아름다운 나무의 향연, 그 나무들이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까이에서 만나보니 가슴이 설렜다.

‘네가 모르는 것을 나는 다 알고 있다’는 느낌으로 연기면 유보지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 처음 봤을 때는 암수 한 그루씩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한 그루는 두 그루가 한 나무가 된 듯 연리지를 떠올리게 한다.

두 나무가 한 나무처럼 이어진 모습. 세종의 역사와 스토리를 담아 시민들에게 소개하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사진=정은진 기자) 

이곳 연기면 양화리 느티나무 역사공원 자리는 원래 월룡동산이라 부르며 마을 사람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넓은 평상이 함께 해 울창한 여름날에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옥수수를 나눠 먹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는 옛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장소다.​

나무 뒤로는 부안 임씨 집성촌답게 독특한 필체로 새긴 삼 형제 우애추모비를 비롯해, 다양한 비석들이 즐비해 있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역사 이야기가 숨겨진 느낌이다.

세종시의 옛이야기들이 세상 위로 드러나 많은 이야기가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실어본다.

이 유보지에 무엇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이곳의 나무와 함께 도시의 스토리가 담긴 관광자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리지를 닮은 나무 아래에서 사랑의 약속을 하는 커플의 소중한 장소로, 가족의 사랑과 우애를 담은 가족 화합의 장소로, 뜻깊은 날을 잊지 않으려는 다짐의 장소 등을 상상해봤다. 

이곳은 말 그대로 신도시의 보물함이라 여겨진다. 겉은 낡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온갖 아름다운 보물이 그득한 보물함처럼, 쉽게 닿을 수 없는 땅에서 화려한 미래 자원을 만난 느낌.

이제 그 뚜껑을 열어 보물의 진가를 확인할 시간이 왔다. 세종시 안에 가득히 화려한 이 자산을.

임난수로에서 무궁화공원으로 향하는 오른쪽에 위치한 느티나무 풍경. 지금은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없지만, 곧 세종시의 쉼터와 자랑으로 자리하길 바라본다. (사진=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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