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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코로나 19 대처법’에 대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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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코로나 19 대처법’에 대한 반성
  • 이계홍
  • 승인 2020.12.1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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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지난 14일자 칼럼에 대한 지인들의 쓴소리 경청
코로나19가 강요한 언택트와 뉴노멀 시대... 비대면과 비접촉의 시대 대처법은
가정에서 책을 함께 읽고 가족간 친화와 유대감, 결속을 다지는 시기로 삼아야 .
코로나19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피한 지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발 더 다가가는 노력을 다시 해보면 어떨까. (발췌=여성가족부 '가족 상호 돌봄 캠페인')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지난 14일자 ‘주필의 시선’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언제 종식되는가’를 내보냈다.

이 칼럼을 읽은 지인들이 “빤히 아는 상투적인 얘기를 나열해 식상하다”고 비판했다. 

“가장 좋은 처방전은 내년 봄까지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한 주장이 누구나 하는 얘기”라면서 “좀더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처법을 제시할 수 없느냐”고 항변했다.

사실 어떤 위대한 의학자나 사회과학자도 확실한 대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코로나 19 감염병의 특징이다.

모든 해결책은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답답한 특징까지 안고 있다. 

이제 겨울의 한 복판으로 들어섰다. 독감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바이러스 19도 그들 입장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인류를 초토화시키기 위해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서 전열을 재정비해 ‘병균 폭탄’을 무차별적으로 퍼부을 태세다.

이는 우리 한반도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공멸로 몰아갈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이에따라 대비하자는 것이 비대면, 비접촉의 긴 ‘동면’이다. 말하자면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꼼짝하지 말고 집안에 이불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이른바 언택트(비대면)의 일상화로 가자는 계절이 되었다. 

Contact(접촉)에 부정의 의미인 Un의 합성어가 붙어 ‘비접촉’ ‘비대면’을 의미하는 언택트.

코로나 19 감염을 우려하여 상호 배려하는 차원에서 비접촉, 비대면이 불가피하고, 이것이 사회 문화의 새 트렌드가 되었다.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일대 전기를 우리는 1998년 IMF 관리체제 때 겪었다. 산업이 죽고, 위기의 경제질서가 형성되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즉 새 기준을 뜻한다는 뉴노멀(New normal)은 IMF 때까지도 우리에게는 낯선 언어였다.

그런데 코로나 19 이후 뉴노멀이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즉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세상을 살게 된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IMF 관리체제는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었다. 그래서 금모으기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면 해결되리라 믿었고,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극복해 우리는 거뜬히 재기했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파생된 뉴노멀은 우리 경제와 세계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적 정서에 크게 미치고 있다. 

뉴노멀은 사람과 사람의 접촉으로 코로나 19로 감염될 확률이 높은 것을 막자는 데 있다. 이로인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는 '언택트 문화‘가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비대면 서비스 상업이 성장하는 바탕이 되었다.   

비대면 서비스가 소비패턴의 전반을 차지하게 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디지털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세상의 변화 축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세계의 움직임은 초국가적 형태를 띠었다.

한반도를 제외하고 전지구는 대체로 EU 연합처럼 국가 간 경계를 넘어 통일된 하나의 정부 형태를 추구했다. 여권 없이도 형식적인 출입증 하나로 상대국을 방문할 수 있고, 관세 없이 수출입되는 물류, 서비스 구매 등 재화, 물질, 사람 간 교류에 사실상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이후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폐쇄가 강화되면서, 각 나라 간 교류에 제한을 두고 있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유학 중이던 사람, 타국에 이주해 살던 교민이 자국으로 되돌아오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국가 간의 국경선이 강화되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력이 미치면서 각 나라마다 쇄국정책, 즉 중세시대의 폐쇄국가로 회귀하고 있다.

본의아니게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각 나라들이 수입하는 형세다. 이는 맨먼저 세계 경제의 방향도 바꿀 것이다. 특히 수출주도국인 우리의 경우는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는 IT 강국이다.

세계가 감염병에 시달리고 있는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IT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새로이 하고 있다. 모두가 집안에 갇혀 지내야 하니 여행산업, 항공산업이 크게 위축된 반면에 텔레비전과 휴대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문화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뉴노멀의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방식 즉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이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만남의 방식이 오프라인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온라인과 SNS를 활용한 접촉이 진행되면서 이 분야 산업이 세계를 선도하게 된 것이다.  

세계 무대가 국가 단위로 좁혀지고, 국가 단위는 지역공동체로, 공동체는 가정으로 인간활동의 범위가 좁아졌다. 이를 대신하는 산업이 ​온라인 업무, 온라인 미팅, 온라인 회의, SNS를 활용한 비대면 모임 등 시·공간을 초월한 접촉의 방식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렇게 거리두기의 사회화는 만남의 방식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글을 통한 의사 전달이 강화되었다.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이 코로나 이전과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제안하고자 한다. 

책 읽기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오프라인으로의 회귀다. 인터넷 구매, 화상회의, 인터넷 강의. 인터넷 회의, 연설문, 자기소개서, 인물전기 쓰기. 이런 것은 독서가 글쓰기를 풍부하게 한다. 인생관을 풍요롭게 하고, 인문학적 고양을 넓혀준다.   

다음으로 가족간의 친화와 유대다. 60대 이후 세대는 사실 젊은 시절, 가족 관계를 잘 몰랐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보고, 부부간은 물론 자식들간에도 대화는 없고 명령과 지시 등 군림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대화가 단절되었다. 

직장에서와 같이 수직적, 혹은 상하 관계로 가족관계를 보고 가족을 윽박지르며 닦달했고, 그로인한 가정의 피폐상이 있었다.

필자는 언젠가 성장한 아이로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것은 ‘하지 마!’ ‘안돼!’라는 말만 듣고 자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깊은 회한의 감정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막급인데 그때 왜 그랬을까.

그런데 당시는 그런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고,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다. 그것이 가장의 권위인 줄 알았고, 가정교육인 줄 알았다. 80년대 강고한 군사문화의 한 체질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당시의 가장들은 공통적으로 대화는 없고, 가족을 쪄누르고 위압적이었던 시기였다고 자위하지만, 그런 중에도 부드럽고 따뜻한 가정적인 가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나마 한때나마 아이들과 좁은 셋방에서 마주 앉아 공부하고, 책읽고 했던 시기가 행복한 시기였다.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함께 책읽던 시절이 소중한 추억의 편린이 되었다.

지금은 가정이 연성화되고, 평화로워졌다. 가장의 멘탈리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70년대의 전투적인 직장생활처럼 집안에서도 웃음기 없는 싸늘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되던 것으로부터 상당 부분 자유로워진 것을 볼 수 있다. 

비대면과 비접촉의 시대, 우리가 당장 해야할 움직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가족이다. (발췌=여성가족부 영상)

코로나 19가 강요한 언택트와 뉴노멀에 맞춘 비대면과 비접촉의 시대, 가정에서 책을 읽으며 대화하며 한 시절 견디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중에는 가장 큰 추억의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음으로 한국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끼리 잘 다툰다. 사소한 작은 차이로 으르렁거린다. 부부가 그렇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다. 이는 대화의 미숙에서 온 현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대상이 아마도 배우자일 것이다. 두말할 것없이 대화의 미숙에서 온 것이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한 이혼율이 높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이는 대화의 기술이 부족해서 나온 것이라고 단언한다.

부부간에, 자식간에 경제적인 이유로 부딪치지만, 근본은 소통의 부재에서 갈등을 부추긴다. 해결점은 상투적인 것이지만 일단 참아야 한다. 한번 말을 뱉어내면 주워담을 수 없다. 나중에 현란한 수사로 사과하고 반성한대고 해도 그 말은 하나의 흉터로 남아있다. 

대화의 기법이란 그렇게 고상한 것이 아니다. 한번만 호흡을 중단해 참고 넘어가면 반은 해결된다.

언택트 문화가 가족 구성원간의 대화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왜 가족이 친화와 유대감, 결속력을 강화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가 나의 가장 큰 응원자이자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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