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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든 트럼프든 '우리 국익'을 위한 지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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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든 트럼프든 '우리 국익'을 위한 지도자는 없다
  • 이계홍
  • 승인 2020.11.0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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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방미에 붙여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지고 외교역량을 높일 때가 된 지금
미국 대통령 후보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바이든(좌)과 트럼프(우). (발췌=CNN 홈페이지)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지금 미국은 분열·대결·증오·저주의 정치가 거리에 넘치고 있다.

대통령 선거 개표 과정에서 민주 선거 제도의 모든 추악상을 드러내고 있다. 국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과정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미국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런 나라를 민주주의 모범국가로 추앙했나. 

국가의 도덕적 권위는 존경할만한 규범적 행동에서 찾아진다. 그런데 정작 배울 것이 없다. 불리하다고 해서 투표가 중단되고, 제소하겠다고 하고, 대법원까지 끌고 가겠다고 한다. 민주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겠다는 태도다. 여기서 투표 중단을 요구한 후보가 어떻고, 반대 후보가 어떻다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보인다.  

사전투표가 미국에서 법제화돼 있고, 지난 선거에서도 널리 활용되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사전투표에 참가한 유권자가 1억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를 선거문화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민주주의 절차를 지킨다고 볼 수 없다. 

물론 부정행위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어떤 선거제도도 부정의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우려되어서 민주주의 최상의 제도라는 선거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를 철저히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태도일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나설 때 프리미엄이 엄청 많다.

그래서 낙선하기보다 재선되는 비율이 높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재선에 낙선한 대통령은 5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왜 낙선의 위기에 직면했나를 성찰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계산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익을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트럼프가 됐든 바이든이 됐든 그들은 우리의 국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CNN방송이 바이든과 트럼프 대통령 후보간 실시간 경합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발췌=CNN방송)

누가 되면 유리하고, 누가 되면 불리하다는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중심을 잡아 우리의 방향대로 끌고 나가면 된다. 

그러므로 줏대있고 내실있는 외교력이 요구된다. 우리 국익을 위한 외교 문법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그들의 동아시아 전략의 하나로 움직였을 뿐, 진정 우리 자신을 위해 움직인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의 우산 밑에 들어가 그들의 신용을 담보로 이율 낮은 돈을 빌려와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만들고, 그것들을 미국에 내다 팔아 이문을 남기면서 경제발전을 이룬 토대를 마련한 나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도한 무기 수입과 냉전의 지속, 그로인한 세계적 화약고의 하나가 한반도가 되었다.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의 전초기지가 한반도가 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미국은 정의롭고 선한 나라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그러나 지금 살펴보니 과대 포장되었다. 내면을 들여다보니 존경할만한 것이라곤 별로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이 하는 행동은 모두 옳고, 우리를 지켜주는 정의의 파수꾼이라고 믿었다. 모순 투성이의 나리인데 말이다. 

우리의 조선조 역사를 돌아볼 때, 사대 외교가 국가 운영의 중심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주체적 역량을 제한시키고, 끝내는 망국의 길로 몰아갔다. 

역사는 광해군을 폭군으로 평가하지만, 외교 면에서는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다투던 명나라와 후금(후에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 혹은 균형외교로써 국익을 취했다.

광해를 제거하고 왕이 된 인조는 명나라를 하늘같이 신봉하다 끝내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었다. 이른바 북쪽 오랑캐에게 도륙이 된 뒤 200여년 동안 골골하다가 끝내 나라를 말아먹고 말았던 것이다. 

구한말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 등 나라를 변화시키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기득권 체제가 외세를 빌어와 이들을 제거한 뒤 비참하게 외세에 먹혀버렸다. 내부적으로 힘을 키울 생각이 없이 어느때는 청나라에 의존했다가, 어느 때는 일본에, 그리고 어느때는 러시아에 기울며 갈팡질팡하다 망국을 자초했다. 

해방 공간은 또 어떤가. 지도자들이 높이 올라 멀리 보지 못하고 좁은 골목안에서 작은 차이로 피투성이 싸움을 벌이다 외세의 간섭과 분단의 영속화, 그리고 내전까지 치렀다. 

물론 역사 사이사이마다 지도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해시대, 구한말, 해방 공간에서 정의로운 인물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외세를 등에 업은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다. 지금은 분단의 영속화와 사대주의의 문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좁은 세계관에 갇혀 살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민주주의 모범국가다.

늦게 수입한 제도지만 병든 선진국보다 훨씬 우위에 서있는 도덕적 우위의 민주 국가가 되었다.

내부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나 미국과 같이 타락한 내전 상태는 아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충실하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 

한반도 주인으로서 우리가 한반도 운전의 주역으로 나설 때가 되었다. 미국 대통령의 권위는 상당 부분 손상되었다.

미국 대통령에게만 의존하기에는 리스크가 많다.

반면에 미국 내에는 상식이 통하고, 열린 세계관을 가진 양심적인 지도자도 있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인재풀을 가동해 이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의회, 언론, 학계 등 오피니언 리더들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 다원화한 접촉면을 넓혀 우리의 외교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핵을 연결고리로 제동을 걸고 있을 뿐, 대한반도 정책에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남북 문제에 관한 한 미국 눈치를 살피다가 끌려온 70년 체제였다. 이제는 능동적으로 개척하고 설득해나가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층적인 미국 여론시장을 움직여야 한다고 본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구상대로 미국의 네오콘은 물론 온건파, 언론 및 학계 등 여론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대처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제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질 때도 되었다. 강경화 장관이 금명간 도미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다고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의 국익을 위해 다각적으로 활동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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