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춘의 詩골마실' 15편] 몸뚱이 내주고 발목만 남은 논바닥
겨울 철새를 위한 길
몸뚱이 내주고 발목만 남았다
주름살 깊이 팬 논바닥,
피 뽑던 농부의 장화 자국인지도 몰라
겨울철새를 위한
또 하나의 길이 만들어졌다.
[작품 노트]
추수를 마친 늦가을 논에는 썰렁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볍씨라도 눈에 띄면 그래도 반갑다. 겨울철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지나고 이젠 겨울채비를 해야 한다.
벼를 싹 쓸어간 논바닥, 콤바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바퀴자국만 커다랗게 남아 있다. 이런 모습이 나에게는 깊은 주름살처럼 여겨진다. 논에는 겨울철새들이 먹이를 찾아올 것이다.
이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지자체, 환경단체 등이 나서서 행사도 갖는다.
벼 이삭을 두른 몸뚱이가 모조리 잘려나간 곳에는 길이 생겼다. 마치 가로수가 빽빽하게 들어선 길처럼. 겨울철새가 서로를 위로해주면서 이 길을 다닐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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