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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과 빌리 브란트' 오버랩, 무엇을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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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과 빌리 브란트' 오버랩, 무엇을 봐야 하나
  • 이계홍
  • 승인 2020.08.20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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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빌리 브란트 정신’, 내부 통합·남북 화해로 승화해야
김종인 위원장, 19일 광주 민주항쟁 추모탑 찾아 무릎꿇고 사죄
남북 화해와 평화, 민주화 세력의 전유물 아니다... 가해자의 사과, 곧 통합의 단초
지난 19일 광주 5.18 민주항쟁 추모탑을 찾아 무릎 꿇고 과거사에 사죄하고 있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좌, 제공=미래통합당), 지난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유태인 희생 위령탑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우, 발췌=네이버 지식백과).
지난 19일 광주 5.18 민주항쟁 추모탑을 찾아 무릎 꿇고 과거사에 사죄하고 있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좌, 제공=미래통합당), 지난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유태인 희생 위령탑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우, 발췌=네이버 지식백과).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 일백 번 사과하고 반성해야 마땅한데 이제 그 첫걸음을 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일 광주 5·18 민주항쟁 추모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광주 시민을 향해 사과했다. 

김 위원장이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사과 메시지를 발표할 때는 울먹이기조차 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렇게도 말했다. 

아직도 낡은 이념 대립이 계속되며, 사회적 통합과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역사의 화해는 가해자의 통렬한 반성과 고백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권력자의 진심 어린 성찰을 마냥 기대할 수 없는 형편에서 그 시대를 대표해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

 

여기 잠들어 있는 원혼의 명복을 빌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는 유족들께 깊이 죄송하다. 제 미약한 발걸음이 역사의 매듭을 풀고 과거 아닌 미래를 향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래통합당 전신의 지도부가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삼촌 묘 벌초하듯 진정성이 결여되고, 했더라도 다른 한켠에선 야유하고 총질하는 행동을 벌였다.

지난해 2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통합당 의원들이 5·18 유가족을 폄훼한 발언을 쏟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위원장은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 발언에 우리 당이 회초리를 들지 못했다. 그에 편승하는 태도를 보였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할 순 없다”며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1980년 5월 17일 대학 연구실(서강대)에 있었다. 시위 중단할 거란 방송을 듣고 강연에 열중했다. 광주에서 발포가 있었고 희생자가 발생했단 소식은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알고도 침묵하거나 눈 감은 행위, 적극 항변하지 않는 소극성 역시 작지 않은 잘못이다.

 

역사의 법정에선 이것도 유죄다. 나는 신군부 집권을 위해 만든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으로 참여했다. 여러 번 용서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심에 빠진 광주시민과 군사정권에 반대한 국민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이에 사죄한다.

솔직하고도 진정어린 사과라고 평가한다.

김 위원장의 이런 모습은 빌리 브란트 독일 수상이 폴란드를 찾아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에 대해 무릎을 꿇고 통절하게 사죄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브란트 수상은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지구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사과했다.

단순한 사과 같지만, 결국 이것이 바탕이 되어서 1990년 분단된 독일 통일을 이룬 초석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외교무대에서 아무런 발언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냉전이 강화되던 때, 미국과 소련은 양국 모두 자기들 유리한 입장에서 통일되지 못하면 분단의 영속성이 가장 유효한 정책이라며, 독일 통일을 사실상 방해했다.   

여기에 독일 인접국인 프랑스, 폴란드, 영국이 독일 통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경기를 일으킬 판이었다. 독일이 통일되고 부강하게 되면 필연코 또 전쟁을 일으키고, 그러면 자국 국민이 희생되고 영토를 빼앗길 것이라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때 브란트 수상이 나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폴란드 땅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피해국을 지원했다.

그런 다음 서방국가 어느 국가도 따라올 수 없는 민주국가와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인권과 평화, 호혜와 평등의 가치를 구현했다. 이를 보고 인접국이 조금씩 독일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절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민주적 가치에 충실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그래서 독일 통일을 찬성까지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통일하면 묵인하겠다는 데까지 갔다.

독일이라고 해서 내부 문제가 없었겠는가.

나치를 추종하는 극우분자가 있고, 브란트 정책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동독은 소련 사회주의를 신봉한 정치 체제였고, 서독은 서방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로서 좌파, 우파에 극우파, 극좌파까지 등장해 갈등이 심했다.  

이 과정에서 동·서독은 기득권 체제의 성벽을 쌓은 사람들이 새 정치권력으로 등장해 통일을 반대했다. 통일이 이뤄지면 그동안 누린 분단 기득권이 허물어질까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대의보다 개인적 이익을 우선시한 경우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범국 독일은 패전 후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4개국에 의해 신탁통치를 받는데, 서독은 자유진영인 영국 프랑스 미국의 통치를, 동독은 공산진영인 소련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이후 미소 냉전이 심화되면서 동서독의 분단도 고착되고, 베를린도 동서 40km에 이르는 장벽까지 설치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쥔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정치 기득권을 내놓지 않겠다고 대립했다. 우리의 기득권 세력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반공 대결주의, 친미 반북의 분단 기득권을 쌓은 세력이 70년 체제를 유지해왔고, 그것이 지금까지 남북화해를 저지한 주 세력으로 등장했다.

남북화해가 이루어지면 자신들의 이익이 무너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동안 행해온 오류와 모순들이 드러날까봐 남북 화해를 방해하고 저지한 것이다. 겉으로야 통일을 말하지만, 내면으로는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이런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고, 외부 세계를 설득했다. 대의에 충실했다. 그 결과 분단 45년 만인 1990년 4개국 및 유럽의 승인을 받아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통일되었다. 그리고 지금 최고의 민주국가, 복지국가로 우뚝 섰다. 

독일과 한국은 분단과 냉전 과정을 거치고, 신탁통치를 받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45년만에 통일을 이루고, 다른 한쪽은 더 분단 고착화의 길로 가고 있다. 

그 분단의 원인은 외세에 있고 분단 고착화는 북한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분열과 대립과 증오의 정치를 하는 우리 내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런데 김종인 위원장이 내부 모순의 하나인 광주에 가서 진정어린 사과를 했다. 비약을 하자면, 이런 수순이라면 통합당에 의한 남북 화해의 손길도 미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우리가 현재까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차이점이 있길래 주변국이 경계하는 독일은 통일이 된 반면에 우리는 이루지 못할까. 

나는 김종인 위원장의 행동에서 답을 찾는다. 가해자가 진정으로 용서를 빌고 사과하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면 통합의 손길이 미친다는 것이다.

진정성이 모순을 극복하는 단초가 마련되는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제대로 사과를 하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면 우리가 용서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리 없다.  

김종인 위원장은 독일 유학파다. 합리적, 이성적 공간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런 그가 내부 통합을 이루고,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가 ‘한국판 브란트’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남북 화해와 평화가 민주화 세력의 전유물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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