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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의원, 세종시에서 보여준 ‘안정‧신뢰‧무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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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의원, 세종시에서 보여준 ‘안정‧신뢰‧무게감’
  • 이계홍
  • 승인 2020.08.03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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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소박한 인상 그대로 따뜻한 소통의 지도자가 되길
지난 달 31일 세종호수공원 내 균형발전 상징공원을 찾은 이낙연 의원. 송담만리 커피숍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있다.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이낙연 전 총리이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종로)과는 개인적 인연이 있다는 전제로 글을 쓴다.

이 의원이 지난 달 31일 세종시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초미의 관심이 증폭되어가는 때, 유력 당권 후보이자 여권 대선 후보인 이 의원이 세종시를 방문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성과 상징성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이를 의식한 듯, 이 의원은 세종시를 조망해볼 수 있는 어진동 밀마루전망대를 방문하고, 세종시 호수공원 옆에 조성된 균형발전 상징공원(일명 노무현 공원)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미리 와 대기하고 있던 이춘희 세종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함께 밀마루공원에서 이 의원을 기다렸다. 이 의원은 KTX를 타고 오송역에서 내려서 승용차로 세종시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이윽고 밀마루 공원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고 이 의원이 내렸다. 

몇몇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필자를 발견하고 이 의원이 먼저 “이계홍 선배 아니오? 아니, 이계홍 동생 아니오?”하고 놀라는 얼굴이다. 그만큼 필자가 젊다는 덕담일 것이다. 가발과 피부과에 가서 점을 뺀 효과를 본 셈이다. 어쨌든 그의 내공과 유머 감각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의원은 또 “여기는 무슨 일로?”라고 물었다. “정착해 살고 있으며, 세종시 지역신문인 세종포스트에 나가고 있다”고 하니 같이 동아일보에 근무했던 김종심 선배(전 논설위원) 얘기를 하면서 “그 선배는 지금도 진관내동(서울 은평구 옛 기자촌)에서 살고 있다”며 “참 고지식하고 고집도 있다. 세종시 내려온다니까 문자가 왔다”며 안부를 전했다.

밀마루전망대 9층에 올라온 이낙연 의원. 

그는 “전망대로 올라가자”며 전망대를 오르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마련된 탁자 앞에서 손소독제를 손에 바르고, 방명록에 주소, 휴대폰 번호, 현직함을 빠짐없이 적고 그는 일행과 함께 전망대로 올라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의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모범생다운 행동을 보였다. 전망대는 정원이 25명이어서 필자는 함께 오르지 못하고 다른 일행들과 함께 전망대 마당에서 기다렸다.

다음 방문지는 호수공원 옆 세종시 균형발전 상징 공원. 그곳에서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관련 기자회견이 있다고 했다. 예정시간보다 지체되어 전망대에서 내려온 이 의원 일행은 곧바로 호수공원으로 이동. 

필자도 부지런히 따라갔지만, 호숫가에서 균형발전 상징공원까지는 약 900m쯤 떨어져 있었다. 도보나 자전거로 가야 한다고 해서 호숫가에 비치된 세종시 웹 공공자전거(어울링)를 이용했다. 

보도진 일행과 시청 직원들은 다른 교통수단으로 앞서 가고, 필자는 자전거를 몰고 가는데 그 사이 소나기를 쫄딱 맞았다. 비 때문에 자전거를 탈 수 없어 끌고 가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비에 흠뻑 젖어 흡사 물벼락 맞은 생쥐 꼴이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본 이 의원이 “왜 이렇게 젖었느냐”고 물어서 “여름비는 약비”라고 응수했다. 이 말도 정치인이었다면 낭패를 당할 발언일 것이다. 물 폭탄으로 수해를 입은 지역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여름비는 약비라고?”. 그래서 정치인이 아닌 것을 큰 다행으로 여겼다. 언어란 장소와 때에 따라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의원과 헤어질 때는 주먹으로 악수를 했다. 이 의원이 전동카에 오르면서 함께 탄 이춘희 시장을 보고 “이 시장을 많이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의례적인 발언이지만 말 주변이 없는 필자로서는 적당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것이 이 의원과의 만남의 전말이다.

한국판 균형발전 뉴딜 전략 제시, 행정수도 이전 추진 

이 의원이 이춘희 시장 등의 일행과 호수공원 바람의언덕에 올라 '노무현 정신'을 되새시고 있다. 

이 의원은 이날 낮 12시쯤 균형발전 상징공원에 있는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균형 발전 뉴딜 전략’을 밝히면서 "국회 세종의사당(이전)은 빠를수록 좋다"며 "원내 지도부도 올해 안에 매듭짓자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이 의원은 "국회와 청와대 전부를 이전하는 것이 행정수도 완성"이라며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국회 세종의사당부터 (세종시 이전을)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행정수도 이전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며,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만들어 헌법재판소의 새로운 판단을 얻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그 방안도 시간이 걸릴 것이니 거기에만 집중하기보다 이미 여야 간 사실상 합의가 된 국회 분원 설치를 추진하면서 완전한 이전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헌법재판소 판단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 이후 어떤 나라를 만드느냐가 기본 전제”라면서 “뉴딜 규모를 향후 5년간 160조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시중에 떠도는 3000조의 유동자금이 부동산 투자 등으로 가는 것을 막고 견인해 원금을 보장하면서 연 3%의 수익률을 갖게 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다음 주중 정부가 뉴딜 펀드를 발표할 것”이라면서 한국판 뉴딜은 금융기관과 공기업은 물론 민간의 자본이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며, 민간 자금이 편드에 동참해 안정성을 취하고 수입성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펀드 부분은 세종 행정수도 이전의 이슈에 밀려 부각되지는 못했다. 세종시는 어떤 뉴스보다 행정수도 이전이 하나의 블랙홀이 되어있다. 

어쨌든 그의 펀드 관련 발표는 신뢰감과 무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군더더기가 없었다. 발언을 받아적은 그대로가 완성된 기사가 될 정도였다. 

이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대통령 1순위에 든 인물이다. 그의 인상이 소박한 그대로 품성 또한 질박하다. 한국의 대표적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면서도 전혀 엘리트 같지 않은 캐릭터다. 그가 즐긴다는 막걸리 타입 그대로다.

그래서인지 이 의원은 폭발성을 지닌 인물은 아닌 것같다. 설득하며 다독이며 다져가는 스타일이다. 이제 우리도 격변의 시대, 갈등증폭적이고 대결적이며, 쪼개고 나누는 사회분위기를 벗어나 차분히 돌아보며, 정리하며, 다져가는 시대를 맞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필자와 이 의원과의 개인적 연고를 말하고자 한다.

이 의원과는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까지 함께 동아일보사에 근무했다. 이 의원과는 5살 위인 필자는 1975년 입사했고, 이 의원은 1979년 쯤 입사한 것으로 안다. 필자는 1992년 동아일보를 떠나 문화일보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 의원은 2000년대 초반까지 동아일보사의 핵심 기자로 근무했다.  

이 의원은 주로 언론의 정통 코스라는 정치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이후 도쿄특파원, 국제부장을 지냈다. 대신 필자는 변방이라고도 하고 사이드 부서라고도 하는 여성동아부, 체육부, 문화부에서 근무했다. 

관련 부서가 신분상의 차이로 인식되던 때, 그는 선망의 정치부 기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그를 통해 구성원들 모두 덩달아 사회적 신분 상승을 느낄 정도였다. 한 조직에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구성원도 함께 사회적 스테이터스를 확보하는 것과 같다.  

신문사 재직 시 특별하게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 부서가 다르면 노는 물도 다르고, 접촉면도 다르니 먼 발치로나마 그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크고 작은 모임이나, 사내 행사 때 마주치고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특별히 단 둘이서 밥먹어본 적도 없다.

다만 80년대 초 동아일보에서 보유하고 있던 대천 동아 비치하우스에 기차를 타고 함께 간 적이 있다. 그때 이 의원은 신혼으로 전주 출신의 부인(이대 미대 출신이라고 했던가?)과 동행했고, 필자 역시 가족과 함께 갔다. 그때 이들 신혼부부가 참으로 곱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답지 않게 조용하고 품위있고 지적인 풍모가 풍겨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카리스마를 느꼇다.  

그리고 서로 회사를 나온 뒤 새해가 되면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 댁에 세배를 하러 가는데 그때마다 함께 만났다. 당시 그는 국회의원 신분이었지만 유독 세배를 많이 다니는 듯 바삐 움직였다. 동아일보 퇴직자로 구성된 ‘동우회’ 송년회에서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필자를 보면 “이 선배 오랜만이오”라고 깎듯이 대한다. 나한테만 특별히 그러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호강하는 기분이다.  

수년래에는 동우회 송년회에 참석하지 않아 거기서 그를 만난 일은 없다. 예전의 동아일보 기풍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웬지 낯설고, 불편할 것 같아서 참석하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을 공식적으로 만나는 일은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몇 년동안 중단되었다. 

필자는 이 의원이 어떤 자리에 있건 중후한 몸집과 안정감 있는 행동에 걸맞게, 그리고 높은 경륜을 쌓아올린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나라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재목으로 쓰이길 바란다. 

번영의 대한민국, 통합의 대한민국, 평화의 대한민국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세계를 선도할 위치에 의연히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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