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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 정착하는 '부강면 노호1리', 매력 포인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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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 정착하는 '부강면 노호1리', 매력 포인트는
  • 이계홍
  • 승인 2020.07.18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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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세종한바퀴 부강면 7편] 풍광 좋고 인심 나는 곳
대전과 청주, 세종 접근성도 굿... 버스 길에서 마을 입구 길 사이 확장 필요성 상존
세종시 부강면 노호1리 마을 전경. 지리적 이점과 풍광 덕에 어느덧 외지인들과 현지 주민들간 한데 어우러진 공동체로 자리잡고 있다.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본지는 '다 같이 돌자 세종한바퀴 부강면' 편에서 아주 특별한 정착지를 찾았다. 바로 부강면 노호1리다. 

세종시 부강면 노호1리는 전원주택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수채화처럼 아담한 산이 마을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과 외부인에게 거부감 없는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인정이 외지인들을 부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한 건설회사가 마을 어귀에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외지인들이 진작부터 마을에 들어와 정착하고 있다.  

올해 4월 노호1리로 이사해온 이계창(72·사업) 씨도 그중 하나다. 이 씨는 자녀들이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해 기존 살던 경기도 고양시 화정아파트를 처분하고 세종시 인근으로 이사할 것을 생각해왔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세종시 인근의 주택지를 물색했다. 현지 답사도 여러번 했다. 그러던 중 세종시 부강면 노호1리에 대지 220여 평에 건평 약 60평의 집이 나온 것을 발견했다. 현지에 와서 보니 마을 위쪽 산밑에 그림 같은 양옥이 햇살을 받고 빛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 집이다 판단하고, 부동산을 통해 시세를 알아보았다.

이계창 씨가 큰 맘먹고 정착한 노호1리의 2층 단독주택 전경. 해가 잘 들고 마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와 좋다. 자녀 가족들이 밀어 닥쳐도 1,2층 공간에 나뉘어 들어갈 수 있어 걱정이 없다. 

집 주인은 교육계에 있는 사람으로 이사를 가야할 입장. 이 씨는 교섭 끝에 4억 원에 이 집을 사들였다. 집이 완벽한 시설을 갖춰 몸만 들어갔다. 우선 드넓은 마당이 마음에 들었다. 취미로 잔디와 정원수를 손질하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채소를 가꾸어 먹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면 주변 산의 숲과 눈 앞의 마을의 전경을 보게 되는데 꿈결같이 아름답습니다. 기쁨과 생명력을 느끼지요. 이 집을 애써 구한 것은 세종시를 거점으로 자식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리적으로 전국에서 모이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수도권에서는 한시간 반, 영남 호남에서 오더라도 2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으니 한마디로 시간과 교통의 가성비가 높지요. 서울과 그 인근은 승용차로 다닐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노호1리는 현재 28호가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한때는 50호 넘게 살았지만 여느 농촌이나 마찬가지로 60-70년대 이농현상이 심해 반 이상이 타지로 빠져나갔다. 근래는 대신 외지인이 찾아들어오고 있다. 

이계창 씨는 “마을의 그림같은 풍광과 주민들의 따뜻한 인심 때문에 잘 들어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융희 충남대 미대 조소과 교수와 작업장 겸 생활 근거지.

조융희(42) 충남대 미대 조소과 교수도 작업장 겸 생활근거지를 찾다가 노호1리 경치에 반해 6년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2014년 공터로 있던 대지 200평을 평당 70만원에 사들여 40여평의 작업 공간을 지었다. 여기에 참여작가는 6명이다. 이들은 노호1리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 제작 때에는 상주하다시피 한다. 

작업장 이름은 비욘드 아트 스튜디오(레지던스). 오픈 스튜디오도 갖추었으나 장마철이라 문을 닫아놓고 있다. 

조 교수는 본체 건물 옆에 조각 전시장을 만들기 위해 지금 한창 바닥 공사를 하고 있다.

“집을 짓고부터 지금까지 계속 공사중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마을 앞에는 일제강점기 경부선을 놓으려다 주민들의 반대로 폐선이 된 폐터널이 있다. 부강면 노호1리 입구 버스정류장 옆 동굴이다. 길이가 150m 정도 되고, 폭은 기차가 드나들만한 공간이다.

“이 폐터널에서 2017년 10월 ‘재활공간 발굴 프로젝트-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예술가들’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작품 발표와 첼로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조명효과와 음향 효과가 좋아서 예술가들의 발표장으로는 괜찮은 편입니다. 작가들에게 자연스럽게 발표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마을 어귀를 우두커니 지키고 있는 나무. 정확한 유래 등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부터 주민들과 소통이 잘 되었다. 배타적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호1리는 보성 오씨의 집성촌. 이장 오도영(70) 씨를 비롯해 오희백(73)씨, 오시영 씨등이 대대로 살고 있다. 

오희백 씨는 인근 청주고교와 성균관대를 나와 금융인으로 정년 퇴직한 뒤 지금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다. 그는 “250년 이상 된 고택을 원형대로 유지하면서 서재 겸 찾아온 지우들과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직접 집을 안내하기도 했다.  

오시영 씨도 비슷한 케이스로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다. 오희백, 오시영 두 사람이 취재진을 마을 이곳 저곳을 안내하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노호1리는 보성 오씨의 집성촌이고, 인물이 많이 난 곳입니다. 예로부터 배타적이지 않고, 더불어사는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노호1리는 세종신도시와 17km, 대전과도 17km, 청주시내와도 17km 떨어진 곳입니다. 세 도시 모두 20분 내외에 도착하는 곳이지요. 그러면서도 고향의 향수를 느끼는 향토적 분위기가 풍깁니다. 인심이 좋으니 외지인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마을회관 앞 연결도로 전경.

실제로 노호1리를 찾았을 때 오도영 마을 이장이 마을회관으로 취재진을 이끌었다. 남녀 주민들이 나와 수박과 참외를 썰어 푸짐하게 상에 내놓았다. 마을 주민의 인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신문과 방송에는 외지인과 마을 주민간에 갈등이 있다고 보도되는데, 그것은 마을 주민들의 텃세라기보다 이주해온 사람들이 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품성에서 온 후유증이 아닐까요.

마을의 공동시설을 이용하는 데 따라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느낀다면 일정 부분 기부금을 내는 것도 필요하고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들여서 만들어놓은 것을 그냥 사용하면 그것도 예의에 어긋나고요.

그러나 그것이 갈등의 요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 역지사지를 하면 극복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 마을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주거지까지 차량으로 약 1km를 지나는 동안 편도 1차로 도로다 보니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시에서 확장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옛날의 좁은 고샅길을 포장해 놓았을 뿐, 승용차가 교차할 수 없는 곳이어서 불편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승용차가 마주 오는 차와 교차하느라 후진하여 넓은 공간을 찾아 그 차가 지나가서야 마을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마을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옛 풍치 그대로, 옛 풍습 그대로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다만 승용차가 서로 비켜갈 수 있는 길만 확장해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한편, 노호1리 인근에는 금강 하류부와 함께 과거 부강면이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상징하는 매포역이 차로 3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한때 물류역사로 주목받았던 매포역 전경. 노호1리 마을과 차로 3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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