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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소정면' 문화유산, 우리가 더 걸어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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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소정면' 문화유산, 우리가 더 걸어야할 길
  • 정은진 기자
  • 승인 2020.06.20 11: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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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세종 한 바퀴 '소정면 4편'] 천안과 세종을 잇는 연결고리. 북세종의 첫 관문
외면받고 있으나 세종시 역사와 맥을 함께한 소정면... 고등리와 고려산, 아야목 재조명
고려산에서 바라본 소정면

[세종포스트 정은진 기자]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도 더 걸어야 될 길이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않은 길' 중에 이런 싯귀가 있다.

'세종시=행복도시'로 오해하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소정면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풀이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주목 받지 못하는 지역일지도 모른다. 

소정면은 과거 세종시가 연기군이었을때부터 최북단에 위치한 면이었다.

연기군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았지만 북쪽에 구릉성 산지인 고려산이 있고 정상에 고려시대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또한 유형문화재-문화재자료 3호인 대곡리 삼층석탑을 비롯해 향토유적 제 19호인 김충열정려문, 향토유적 제47호인 대곡리 장승제도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유산들이다. 

또 소정초등학교를 비롯해 소정리역 등 기관과 대승사와 공덕사, 대원사와 소정성결교회, 소정제일교회등 종교기관도 꽤 많이 위치하고 있고, 남북으로 경부선과 KTX선로가 교차되는 이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1번과 43번 국도까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소정면은 현재 운당리와 소정리, 대곡리, 고등리 등 4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소정면의 행정구역은 세종시지만 천안시 생활권에 속했다. 과거 연기군 시절에는 연기군의 다른 지역(041-8)과 달리 전화번호도 천안 아산과 같은 041-5 번을 사용했으며 학군도 천안시에 속했다. 지금도 천안의 특산물인 '호두과자'를 판매하는 곳을 소정면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소정면의 역사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한다. 1414년 청주군 덕평면 운당리 및 소동면 소정리 및 대곡리에 접해 형성되었으며, 고종 32년인 1895년 전의면에 편입됐다.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에는 연기군 전의면에 들어왔고, 1986년 11월 1일에는 전의면 소정출장소를 개설하고 1995년 소정면으로 승격, 1996년 면사무소가 준공됐다. 

소정면 소정리에는 소정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비금속광물과 조립금속 및 유리 제품을 취급하는 업종이 입주해있다. 면적은 16.47㎢, 소득 구조는 양계업과 고추 등의 농업 위주 산업이다.  

소정면의 위치. 세종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지도 발췌 = 네이버 지도)

소정면에 주목할 이유는 분명하다. 오랜 역사와 함께 독특한 지형과 풍경, 북쪽으로부터 들어오는 세종의 첫 관문으로서 세종시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하고 있어서다. 

미래 세종시의 한 축으로써 '우리가 더 걸어야 할 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정면의 역사적 유래가 있는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고려산과 고려산성, 아야목'이 대표적 사례다.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의 자랑인 고등리의 고려산

고등리와 고려산, 그리고 고려산성

고등리는 백제 때부터 큰 골짜기여서 북방을 막는 산성이 있었던 지역이다. 높고 곧은 큰 골짜기가 있는 산성 아래 부락이 생기면서부터 ‘곧은골’ ‘고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양과 통하는 삼남대로가 고등리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고장이기도 하다. 본래 전의군의 북면 지역이었고 1914년에 전의면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소정면이 신설되어 소정면에 편입됐다. 

이곳에는 고려산이라는 해발 305m의 산이 있는데 그 안에는 고려시대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산성 또한 위치하고 있다. 

고려 산성의 정확한 위치는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 산27. 고등리산 113번지로, 성둘레 250m의 토석흔축성이다. 

고려산과 고려산성의 현재 모습 (제공 = 세종시)

고려산성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도성이 무너진 후 백제부흥군이 3년여(서기 660~663년)에 걸쳐 항쟁본거지로 삼은 곳 중 하나다.  

고려 충렬왕 시대 3장군(한희유, 김흔, 인후)이 연기 지역에서 고려를 침입한 원나라 합단의 무리를 크게 물리친 것을 고려 태조의 음덕이라 하여 고려조(태조 왕건)의 사당을 모신 이곳을 고려산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가치와 유래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사실상 방치 상태에 가까웠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가끔 등반을 하러 온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안내판도 없었고 기조성된 쉼터가 훼손되어 있는 등 관리 보존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이곳에선 매년 1월 1일 해맞이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관련 주차 시설 또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차량으로 올라갈 경우 턱에 걸려 하부 손상의 소지도 엿보였다.  

 

고려산의 풍경
고려산의 등산로. 등산로 중간까지 차를 타고 접근 가능하며 생각보다 가팔라 채비가 필요하다. 
훼손된채 방치되고 있는 고려산의 시설들

 

고려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아야목 마을

고려산성과 아야목

아야목은 시거리 북쪽에 위치하며 고등2리 저수지 주변에 위치한 고려산성 아랫마을이다.

고려 홍건적의 난리 때 주민들이 고려산성에 피난해 몸을 숨겼는데 먹을 물이 떨어져 견딜 수 없을 때, 갑자기 비가 내려 급히 물을 먹자 목이 아파서 ‘아야 목아’하고 울면서 산에 내려와 살았다고 하여 ‘아야목’이라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아야목 마을 위에 살던 옛날 백성들이 전쟁 시 이 산성에 피난했으나, 식수가 적어 갈증이 심하여 목이 아픔으로서 성 아래에 ‘아야목’이라는 부락에서 목을 축였다는 비슷하지만 맥락이 다른 설도 갖고 있다. 성 안에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으며 과거 연기군이었을 당시 연기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아야목에서 태어나 이사 후 다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야목의 이우순 주민
아야목의 주택에서 볼 수 있는 과거 목조 주택의 형태였지만 지금까지 주목받고 있는 '서까래'

이 외에도 소정면에는 △예전 삼남대로가 있어 많은 행인이 넘어다닌 고개인 고등이 고개 △고려성에서 발원하여 조천이 되는 천인 고등이내 △고려산성 위쪽에 있는 산인 월조산 △북서쪽 강시골 옆의 들 이름인 ‘야지팽’ △미륵이 있다하여 지어진 ‘미륵땅’ △‘새뜸’ 등 과거의 역사 흔적을 많이 간직한 곳이 셀 수 없이 많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도 더 걸어야 될 길이다'. 앞서 말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귀처럼 소정면을 포함, 낙후된 세종시에 대한 풍경을 조금 더 면밀히 주목하고 곳곳에 난 길을 꼼꼼히 걸으며 '새로운 세종시'의 가능성을 발견할 시점이다. <계속>

아야목의 풍경. '아야목'이란 이름과 어울리는 아름답고 구성진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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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 2020-06-20 23:08:27
사진속 서까래를 보니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자연 훼손없는 보수 빨리 이뤄지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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