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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뚫는 시냇물처럼 맑고 경쾌한 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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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뚫는 시냇물처럼 맑고 경쾌한 시 쓰고 싶다”
  • 이계홍
  • 승인 2020.04.25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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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선옥 씨, ‘미지의 흰 새 알바트로스’ 출간 
고독한 존재 자각하는 시집, 200년 전 보들레르 시인과 조우 
시집 알바트로스와 시인 김선옥 씨.
시집 알바트로스와 시인 김선옥 씨.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KBS 라디오제작센터장과 경인방송(obs) 대표이사를 지낸 방송인이자 시인인 김선옥 씨. 그가 최근 시집 ‘미지의 흰 새 알바트로스’를 펴냈다.(시로 여는 세상 간행, 값 1만원).

‘바보 새’로 알려진 ‘알바트로스’는 폭풍이 몰아치면 바람 끝에 올라타 하늘로 솟구치는 용맹스러운 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집 ‘미지의 흰 새 알바트로스’에 따르면 알바트로스는 ’짙푸른 창공을 날며 아래를 굽어보는 그리움‘의 새다. 꿈과 야망이 창창한 새이며,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덮는 새다. 그러나 ’내릴 육지가 없는 외로운 혼자‘라는 새다. 

긴 날개 때문에 뒤뚱거리며 걷다가
사람들에게 쉬이 잡혀 웃음거리가 된 
바보 새 알바트로스


폭풍이 몰아치면 바람 끝에 올라타
하늘로 솟구치는 너의 날개가 용맹스럽다

 

그렇다 
충전된 열량을 순식간에 쏟아내 
초고속 속도로 더 멀리 더 높게 비상한다

 

짙푸른 창공을 날며 아래를 굽어보는 
너의 상승욕구는 그리움이다

 

이카로스의 날개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촛농이 녹아 추락했지만 알바트로스
하늘을 나는 너의 꿈과 욕망은 창창하다

 

펄럭이는 바람도 굽이치는 파도도 네 앞에 꼼짝 못한다
네가 날면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덮는다

 

그러나 알바트로스
숨차게 달려 건너고 건너도 망망대해 바다일 뿐
더럽혀져 죽어가는 땅 네가 내릴 육지는 없다.

 

넘실대는 파도의 물 빛깔이 파랗다고 느낀 순간
미지의 흰 새 알바트로스
너는 외로운 혼자가 된다

           

-‘미지의 흰 새 알바트로스’ 전문-

‘알바트로스’는 바로 시인 자신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시인이자 KBS에 함께 근무했던 시인 유자효 씨는 시집 해설 ‘시대에 던지는 말에 대한 경고’에서 이렇게 시집을 소개한다.

-알바트로스에 자신을 투영시켜 보는 시선은 보들레르와 김선옥 시인이 닮았다. 그러나 보들레르에 비해 김 시인은 보다 긍정적이다. 그는 알바트로스의 용맹함, 그리움, 창창한 꿈과 욕망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고독한 존재로서의 시인의 모습을 자각함으로써 이 시는 끝을 맺는다. 200년이란 시간, 동양과 서양이라는 거리를 사이에 둔 두 시인의 대화가 사뭇 흥미를 끈다.

김 시인은 그리움에 대한 언어를 유독 많이 쏟아낸다. 인간의 근원은 그리움에서 시작되는 듯이 ‘이별’이나 ‘바다’에도 그리움이 잔뜩 묻어난다.

누가 이별을 슬프다고 했는가

 

사람과 사람의 이별보다 
시간의 이별이 훨씬 두렵고 슬프다

 

오늘도 오늘이 손 흔들며 이별한다

 

떠났던 어제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내일이 총총걸음으로 내 곁에 온다

 

생명을 사루어 먹고 꽃지듯 물흐르듯이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 말 듯 그렇게
소리없이 슬며시 다가오는 것이다
   

-‘이별’ 전문-

우리는 슬픔을 참으러 바다에 간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해바다
파도가 서러운 소리를 내며 울고 있을 때 
갈매기 두어마리
목청 돋우며 함께 흐느낀다
어두워지는 바다에 소금기 절인 섬도 훌쩍이고
드센 바람에 떠밀린 
우리의 슬픔도 물에 젖는다


         -‘우리들의 바다’ 전문-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서해바다에 나가서 만나는 파도가 서러운 소리를 내며 울고, 갈매기도 하늘은 날며 흐느끼고, 어두워가는 바다에 소금기 절어 떠있는 섬도 훌쩍인다. 그리고 ‘드센 바람에 떠밀린 우리의 슬픔도 물에 젖는다’고 시인은 슬픔의 근원을 그리움으로 치환시켜 내놓는다.

김 시인은 “얼음장 뚫고 시냇물 흐르듯 그런 맑고 경쾌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청정한 본심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도 고백한다. 그런 순수 명징한 시 정신에서 맑은 서정성과 그리움의 애상을 뽑아오는 듯하다. 

김 시인은 또 “시는 심장의 고동소리”라고 전제하면서 “시는 출발이며 활력이며 무딘 감성을 일깨우는 치열함”이라고 역설한다. 

시집 ‘미지의 흰 새 알바트로스’에는 1부 ‘꽃잎 진 자리에 꽃들의 말이 숨어있고’ 2부 ‘푸들거리는 그놈의 비린내를 하루 온종일 맡으리’ 3부 ‘도망간 푸르름이 그리워 운다’ 4부 ‘그리움에 목매어 발돋움한다’ 등 80여편 시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김 시인은 한양대 신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중앙일보 동양방송(현 JTBC전신) PD로 입사해 라디오 연속극을 주로 연출했으며, 1980년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KBS로 이직돼 주요 드라마와 굵직한 다큐멘터리를 기획, 연출했다. KBS 라디오제작 총괄센터장, 경인방송(OBS) 대표이사(전무)를 지냈다. 

1987년 황금찬 김남조 박재삼 시인이 심사한 ‘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했으며, 주요 시집으로 ‘오후 4시의 빗방울’ ‘모과나무에 손풍금소리가 걸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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