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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결혼식’, 적은 비용 더 많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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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결혼식’, 적은 비용 더 많은 행복
  • 이계홍 주필
  • 승인 2019.12.12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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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한 겨울을 따뜻하게 덥혀준 ‘가족 웨딩’… 생각을 바꾸니 행복이 더해지다
아들의 결혼식은 진정한 결혼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결혼은 통과의례이자 일생일대에 중요한 과정이다. 자녀 뒷바라지를 해온 부모와 결혼 당사자인 자녀 모두에게 다가오는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혼식 자체에 많은 신경을 쓴다. 시간이 갈수록 결혼식 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오고 있음을 절감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아들의 결혼식에서 신세계(?)를 봤다. ‘생각을 바꾸니 행복이 배가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아들‧며느리에게서 확인했다.  

#. 하객 없이 ‘가족 결혼’하겠다는 아들 

하객 없는 가족 결혼식 모습.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하고 웃음꽃은 활짝 피었다. 

아들이 어느 날 결혼하겠다면서 양가 친족만 초청한 가운데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했다. 며느리 될 아이와도 그렇게 상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일단 고마웠던 것은, 하객들을 요란하게 끌어 모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식장에 거창한 이름들의 축화 화환이 즐비하고, 하객들이 북적거려야 하는데, 내 능력으로는 그럴 자신이 없다. 본래 발이 넓은 편도 아니지만, 직장에서 퇴직한 지 오래고, 이래저래 소식이 끊긴 사람이 더 많다. 70이 넘은 지금은 가까운 동창생 등 제한된 일부만 제외하고는 친교가 거의 중단되었다. 

그런 처지에 새삼스럽게 하나하나 호출해 청첩장을 보내는 게 민망스러웠다. 예식장에 사람을 채우지 못하면 아버지의 초라한 행색이 드러나서 성스러운 결혼식이 쓸쓸하지 않을까. 그런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친구나 친인척 자녀 혼례식에 나름 부지런히 찾아다녔지만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되돌려 받는다는 생각 자체가 속물적이지만, 품앗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청첩장을 보낼 때 진정으로 축하해줄 사람들이 있을까도 생각해보았다. 필자도 세금고지서 받는 느낌을 받는데, 그들이라고 다를 것인가. 

#. 고마움 이면에 자리잡은 아쉬움

그래서 아들에게 마음속으로 은연중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섭섭한 것은, 아이가 신부를 맞아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사돈 하객과 필자 하객들에게 과시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사라졌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본전’ 생각이 났다.    

인간은 속물적 속성도 갖고 있는지라, 필자는 당장 ‘본전’ 생각을 했다. 그동안 친구들, 친인척 결혼식장에 적지 않게 축의금 봉투를 가지고 찾아갔다. 결혼 성수기엔 하루 두 군데를 뛴 적도 있다. 그러한 정성은 내 자식 혼사가 있을 때를 대비해 일종의 보험을 든 성격이었음은 물론이다. 진정한 축하는 밑으로 숨고, 일종의 ‘거래’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것이 단숨에 사라져버리는 셈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것은 빚을 지고 시작하는 행사다. 받으면 갚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염치없는 사람이 된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다. 친구 중 하나가 “나는 그의 아이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그는 내 아이 결혼식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라고 불쾌해했다.

장부에 올려서 일일이 체크한 것은 아니겠지만, 인간에겐 기억력이라는 회로가 있어서 품앗이 대상을 얼마든지 머릿속으로 체크할 수 있다. 그래서 받아먹고도 되갚아 주어야 할 때 되갚지 않으니 괘씸해 보인다. 결국 친구 사이의 우정에도 ‘얌체’라는 것이 머릿속에 남아 알게 모르게 금이 갈 수 있다. 그 친구가 친구의 자녀 결혼 소식을 모를 수도 있고, 불가피한 다른 사정이 있어서 못갈 수도 있다. 또 설사 알았더라도 회피하는 비양심도 있을 수 있다. 필자 역시 거기에 해당될 수 있다. 그것을 계산기 두드리듯 재는 모양이 서글프지만, 엄연한 현실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 결혼 패물도 예단도 생략, 아이 삼촌이 예식 진행

아들과 며느리가 결혼서약문을 낭독하고 있다. 

어쨌든 풍습대로 호화로운 예식장을 빌려서 하객들을 많이 불러 모아 성대하게 예식을 치르는 것을 결혼식이라 생각해왔던 필자로서는 아들의 말을 듣고 새로운 세상의 변화를 읽게 되었다. 

아버지의 구태의연한 사고와 달리 세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도 건강하구나. 허례허식을 접고 결혼문화를 개선해나가겠다는 그 실천력이 놀라웠다. 사실 자녀의 결혼식은 부모의 몫이지, 그가 짊어질 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거부하고 양가 부모와 형제들만 참석한 가운데 낭비없이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한다.

아들은 며느리와 함께 차분히 혼례 준비를 했다. 신부 측에서도 신랑 측 의사를 따르겠다고 해서 양가 부모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둘이서 장소를 찾고, 진행 콘티를 짰다. 식장 꽃 장식에서부터 케익과 예복 대여, 메이크업, 전문 사진사 섭외, 식사 메뉴 등 세세한 것을 아들과 며느리가 상의해가면서 모두 준비했다. 이런 기획과 연출은 그들에게 자신감과 함께 큰 인생 공부가 되리라.

결혼식 장소는 강남 수서역 근방의 한식집 필경재의 20인실을 빌렸다. 80인을 수용하는 룸도 있다고 했으나 양가 10명씩 인원을 제한하고 20인실로 정했다. 식사는 1인당 5만 4000원짜리로 했으며, 3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았다.   

아이는 결혼 패물도, 혼사 예단도 생략하기로 했다. 그러나 며느리에게 섭섭하다고 해서 아이 엄마가 옛날 필자에게서 선물 받은 반지를 목걸이로 만들어 며느리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아이의 누나가 귀걸이를 마련해 주기로 해서 며느리 마음이 조금은 허전하지 않도록 했다. 

#. 신세대의 건강한 결혼식, 어른 세대에 대한 질책 

이윽고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진행은 미리 약속한대로 주례 없이 아이의 작은 아버지가 맡았다. 하객은 신랑 측에서 필자 부부와 딸 부부와 손자, 남동생, 여동생 부부 등 10명이 참석했다. 신부 집에서는 며느리 부모님과 외삼촌 부부, 두 언니 부부와 아이 등 10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필자 쪽에서는 큰 누님의 아들이 참석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아이 외가 쪽 사람들도 참석하겠다고 했으나 극구 만류했다. 참석 범위를 기준 없이 하면 누구는 참석하고, 누구는 빼는 결과를 낳아 참석하지 못한 친지들이 섭섭해할까봐 철저하게 범위를 제한한 것이다.

막상 결혼식을 치르니 이렇게 따뜻하고 뜻깊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없었다. 장바닥 같은 결혼 풍속에만 젖어있던 필자로서는 이런 감동적인 결혼식도 다 있구나 해서 아들과 며느리를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신세대의 건강성은 낡은 어른 세대에 대한 질책처럼 받아들여졌다.  

#. 감동적인 신랑 신부의 결혼 서약

신랑의 작은 아버지 진행 식순에 따라 신랑신부가 실내 한 켠에 서 있다가 나란히 입장하고, 양가 가족 앞에서 결혼 서약과 새로이 출발하는 부부로서의 약속을 다짐했다. 표준화된 문안을 그들에게 맞게 변형시켜 함께 낭독했다.

“저 이동욱은 신부 류수정을 아내로 맞이하여 영원한 반려자로서 양가 부모님을 공경하며,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가꾸어 행복하고 모범적인 부부가 되도록 남편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저 류수정은 신랑 이동욱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서로의 의견과 판단을 존중하고, 사랑을 더욱 크게 키워나가며, 기쁨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도록 아내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듣는 순간 가슴으로 찌르르하게 저며 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렇게 소박한 결혼식의 감동도 있구나. 이어서 작은 아버지가 주례사 겸 축시를 낭독했다. 내용이 좋아서 한 번 더 낭독하기를 요청해 그는 두 번 읽었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난로가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니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아파치 인디안의 결혼 축시-

뒤이어 양측 아버지들이 축하 인사말을 했다. 세 딸 중 막내를 마지막 출가시키는 신부 어머니는 사이사이 눈물을 훔쳤지만, 신부 아버지가 직접 써서 낭독한 힘찬 축하의 말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 듯했다.

#. 신부 아버지, “사랑 가운데 양보하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아라”

신부 아버지가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신부 아버지는 신랑 신부에게 “건강한 신세대 정신을 높이 산다”면서, 딸에게는 “신랑과 함께 하는 새로운 인생은 사랑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평소의 품성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양보하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필자는 훌륭한 따님을 며느리로 보내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리고, 친정 아버지의 훌륭한 말씀으로 축하 인사를 대신한다면서, 다만 한 가지 말을 간곡히 당부했다.  

“인생 최후의 승리자는 장수자다. 적어도 110살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자기가 세운 뜻을 완성할 수 있다.”

#. 진정한 결혼식의 모습이란

아들의 결혼식은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덕담이 끝난 뒤 식사를 하면서 자녀의 성장기, 아이들이 잘 살아갈 지혜로운 말씀들, 양가 집안 이야기들이 오갔다. 양가가 그지없이 친교와 다정다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양가의 마음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실내 난방은 한 겨울의 추위를 녹여내고, 그런 가운데 우애와 단합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진정한 결혼식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날 필자는 혼주면서도 근엄함을 잊고 결혼식 장면을 휴대폰에 담느라 자주 자리를 떴다. 소중한 장면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명색이 혼주의 잦은 이석에도 모두 양해가 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일반 예식장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 생애 최고의 행복한 날, 추위도 녹인다

식사는 코스 요리로 제공되었다. 떡갈비와 입맛을 돋우는 간장게장, 소고기 잡채, 돼지고기 삼합, 여러 색깔의 전, 월과채와 탕평채, 보쌈김치, 상쾌한 샐러드, 디저트와 과일, 밥과 깔끔한 된장국,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품위 있는 식단으로 짜여졌다. 무엇보다 양이 풍부해서 넉넉하게 먹었다. 

필경재는 예쁜 정원이 인상적이다. 전통 한옥과 품격있는 소나무가 들어선 정원이 겨울철이라도 그윽한 정취를 풍겨주었다. 세종대왕의 5대 후손이 건립했다는 이 한옥은 전통 사대부 집으로서 서울시 문화재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안국동 인근에 소재한 대원군의 운현궁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넓은 정원과 노송의 자태가 운현궁과는 다른 운치를 더해준다. 

경치 좋은 곳에서 신랑신부는 미리 와서 사진 촬영을 했다. 날씨가 추운지라 야외 기념촬영에 며느리가 힘들었을 것이다. 앏은 반팔 드레스를 입고 영하 10도가 오르내리는 뜰에서 사진촬영을 했으니 감기 걸릴 것이 몹시 우려되었다. 행복하고 기쁜 날이어선지 며느리는 담요 한 장을 어깨에 걸치고 대수롭지 않게 그때그때 사진 촬영에 임했다. 

역시 생애 최고의 기쁜 날은 추위도 녹여내는 모양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안타까웠다.

이날 결혼식 비용은 식사대와 백세주를 포함해 120만 4000원이 나왔다. 신랑 신부가 미리 준비한 케익과 부케와 꽃장식과 예복 대여비, 메이크업 비용을 포함하면 200만원 정도 들지 않았나 싶다(사진촬영비 제외). 거품을 완전히 뺀 결혼식 비용으로 부담을 덜어준 아들과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 따뜻하고 경제적이었던 아들의 결혼식. 

#. 생각을 바꾸니 행복이 배가 된다

요즘은 개성시대인 만큼 결혼 풍속도도 다양하다. 궁전 같은 호텔 식장에서 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고 온 하객들이 즐비한 가운데 축하해주는 억대의 웨딩이 있는가 하면, 2백만원 안팎의 ‘스몰 웨딩’이 있다. 

구청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공원에서 올리는 결혼식도 있다. 이제는 어떤 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자기 뜻과 취향과 가치에 따라 결혼식을 선택할 수 있다. 체면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어른들이 젊은이에게서 배워야 할 가치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시적인 결혼문화가 여전히 대세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거품을 빼자고 하지만 부모의 스펙과 부의 과시로 하는 결혼식이 주류다. 신랑신부 위주가 아니라 부모님의 ‘위세 전시장’이 돼버렸다. 

신랑신부를 위한 결혼인데, 하객은 신랑신부를 알 생각도 없고, 신랑신부 역시 그런 존재를 기억할 필요도 없다. 신랑신부 이름도 모른 채 축의금과 식권을 상품권처럼 교환해 바글거리는 식당에 가서 독립운동 나가는 사람들같이 후다닥 밥을 먹고 나오는 사람들. 

이런 결혼식이 ‘수금’이라는 절차 이외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결혼식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필자는 때로 그런 생각을 가졌었다.

결혼식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인생을 새롭게 꾸려가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생각을 바꿈, 행복을 가꿈'이란 결혼 슬로건을 본 적이 있다. 

필자는 아들의 결혼식을 통해 가족끼리 치르는 결혼식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 요란한 허례허식에 젖어있는 생각을 바꾸니 진정한 행복이 가꾸어진다는 소박한 생활철학도 배웠다. 

결혼식이 ‘거래’가 아니라 양가의 결속과 우애를 다지는 아름다운 자리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는 신랑신부에게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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