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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허한 막말,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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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허한 막말,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 
  • 이계홍
  • 승인 2019.08.21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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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남북 화해·협력 무드에 찬물… 새 시대 협상 트렌드에 역행 
최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문재인 대통령과 박지원 의원을 향해 던진 막말이 논란을 빚고 있다.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긴다고?"

최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대안정치 소속 박지원 국회의원을 향해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지 말라"고 비난했다. 그에 앞서 박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 발언을 겨냥했다. 

박 의원은 "고 정주영 회장의 고향인 통천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2회 발사한 것은 최소한의 금도를 벗어난 것으로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북한이 북미 실무회담을 앞두고 핵폐기를 준비하며 재래식 무기의 비대칭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 우리를 겨냥해 미사일 등을 발사하고 막말과 조롱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정상국가로의 진입이 아닌 야만국임을 입증하는 것이라 지적한다”고 비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를 즉각 받아 '혓바닥을 함부로 놀려대지 말아야 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6·15 시대에 평양을 방문해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노죽을 부리던 이 연극쟁이가 우리와의 연고 관계를 자랑거리로,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인데 이제 와서 배은망덕한 수작을 늘어놓고 있으니 그 꼴이 더럽기 짝이 없다"며 "도덕적으로도 덜돼먹은 부랑아이고 추물"이라고 ‘규탄’했다. 

그리고 “나살(나잇살)에 어울리지 않게 쭐렁거리는 박지원이라는 국회의원의 눈꼴사나운 추태를 가만 앉아보자니 괴롭기 그지없다”며 “마치 자기가 6ㆍ15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주제넘게 자칭하는 박지원이 이번에도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겼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한 번은 더 참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우리와의 관계를 망탕(마구) 지껄이지 말아야 한다”면서 더 이상 ‘멍청한 짓’을 또 할 경우 가만 있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암시했다. 

가만 있지 않겠다는 것은 박 의원이 북한에서 있었던 일 중에 혹 있었을지도 모를 ‘실수’를 폭로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외교상 얻은 비밀을 편의적으로 공개하고 폭로한다면, 외교의 ABC도 모르는 무례를 범하는 행위다. 외교상 얻은 비밀은 묻어두는 것이 상식인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이니, 이렇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믿고 협상을 진행할 것인가.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두고서도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빈정댔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문대통령을)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라고 비난했다. 

그들의 ‘경애하는 위대한 최고 령도자’와 협상하고 악수한 상대방 지도자를 이렇게 ‘똥막대기’처럼 취급하는 것은 “언제나 지금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두 손을 굳게 잡고 앞장 서서 함께해 나갈 것”(9.19평양정상회담)이라는 ‘최고 령도자’의 굳은 약속을 단숨에 뒤엎어버리는 발언이다. 

‘불충’이 아니라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이 그렇게 단숨에 신의를 뒤집어 엎을만한 발언인가.  

"박지원은 ‘좌빨’ 비난 듣고도 북의 입장 옹호한 사람"

다시 박 의원의 발언으로 돌아가보자.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원산 밑 고향 통천에서 소년시절 소 한 마리를 가지고 무작정 상경해 부자가 되어서 그 천 배인 1001마리를 가지고 금의환향해 고향산천에 인사하러 갔었다. 

소 1001마리는 단순한 소가 아니라 남북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고,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표현이다. 그런 곳에서 미사일 실험을 했으니 박 의원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정 회장의 평화로운 고향 마을을 전쟁놀음터로 만들지 말자고 발언했던 것이다. 그 뜻을 헤아리지 않고, 반사적으로 “설태 낀 혓바닥을 놀리지 말라”라니?

남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해 그래도 가장 우호적인 사람이 박지원 의원이다. 남한의 냉전세력, 수구세력으로부터 집요하게 ‘종북’ ‘좌빨’ ‘외눈박이 북한사랑’이란 신체적 약점까지 들춰서 퍼붓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변함없이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아파하며 지원하자고 말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북한을 이해하고, 남북협력을 통한 북한의 번영을 역설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는 사람”이며 “도덕적으로도 덜돼먹은 부랑아이고 추물"이라니... 북한은 ‘익명’ 뒤에 숨어서 남한에 대한 온갖 험담과 쌍욕을 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그러는 것이려니 하지만, 이건 지나치다. 북한 매체는 국영이기 때문에 이런 비아냥은 공식 논평이 아니라 하더라도 간부들의 입장이나 당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는 ‘목소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남한 역시 한때 북한의 쌍욕을 쌍욕으로 맞받아친 적이 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그랬다. 북한이 더러 옳고 정당한 말을 해도 상투적 생떼, 생어거지, 미치광이 궤변, 궤멸시켜야 할 집단, “쏘아죽이고 찔러죽이고 찢어죽이자”라고 대응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2000년 6.15 이후에는 이런 ‘설태 낀 구역질나는 언어’들이 사라졌다. 북한 정권과 상대적으로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며, 북한을 흡수통일해야 한다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험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최소한의 금도와 예의를 지켰다.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도 점잖게 대응했다. 대결적 언어가 식상하다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알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적대적 의존 관계로 회귀하자?”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미연합 훈련에 맞대항하는 차원에서 취한 조치라고 본다. 그렇다면 “평화로 가자면서 왜 ‘공격훈련’까지 감행하느냐”며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요구할 수 있다.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마당에 방어훈련만이 아니라 공격훈련까지 강행했으니 진지하게 따져보자고 한반도 평화라는 본질적 담론을 제시할 수 있다. 토론의 장을 선제적으로 만들고, 담론시장을 열었다면 그들의 논리가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입에 담지못한 험담으로 적대감을 보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닐까. 결국 대결주의로 가자는 것, 냉전시대 적대적 의존 관계로 회귀하자는 것. 그런 분위기가 풍긴다.   

물론 우리 측이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 남북 경제협력이 뜻대로 진척되지 않고, 남한이 너무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진전없는 북미협상과 제재에 가로막힌 남북 협력에 대해 과연 주권국가냐고 답답해 할 수도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우리의 첨단무기 도입에 대한 불안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사일 발사로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전회귀, 무기경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해서 따져물었어야 한다. 그런데 형식적으로 몇마디 붙이고 막말을 쏟아내고는 미사일을 펑펑 쏘아올린다. 

"'여야는 물론 반대세력, 외세'까지 설득해야 하는 남한 사회"

북은 1인 결정 구조지만, 남한은 여야가 있고 반대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다, 외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숙명적으로 떠안은 구조적인 문제다. 남한 사회는 여야는 물론 반대세력, 외세를 설득해야 하는 이중고, 삼중고가 있다. 

민주주의란 그렇게 사회적 비용이 많이 지불된다. 이걸 모르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상대방을 너무 모르는 처사고, 알고도 그랬다면 더 악의적이다. 

북한의 권력집단은 현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길 바랄지도 모른다. 남북 화해와 협력, 경제공동체 진입은 권력상층부에는 해당사항이 아니라고 볼지도 모른다. 그런 것 신경쓰지 않아도 잘먹고 잘사는데 무슨 소리냐고 화난다면서 미사일을 쏘아올릴 수 있다. 

남북간 화해 협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더욱 공고해질 필요가 있는 때다. 

화해와 협력이 가속화하면 주민 의식이 진화되고, 비판의식이 높아져서 현재 홍콩이나 과거 남한사회와 같은 민주화 요구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상유지를 하되, 인민의 욕구를 충족한다는 이름 아래 남북 대화의 시늉을 하면서 북한 인민에게 끝없는 ‘희망 고문’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것은 남한 사회의 수구 냉전세력과 동일한 관점이다. 적대적 의존 관계. 적으로부터의 위협을 팔아서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고, 비난하는 남한의 냉전세력과 결과적으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북한은 잘못 짚었다. 남한사회의 구세력도 예전처럼 북을 적대적 의존관계를 이용해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사고를 수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낡고 도식적 레토릭은 새 시대 문법에 맞지 않다"

대결과 욕설이 협상력을 제고시키는 전략으로 평가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낡은 수법이다. 

궁극적으로 서로의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적대감을 증폭시킨다. 상대방을 넌덜머리가 나게 한다면 남는 것이 뭔가. 통일, 통일! 하고 주술처럼 외는 거대담론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디테일이 세상을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계홍 본지 주필.
이계홍 본지 주필.

낡고 도식적 스타일은 새 시대의 협상 트렌드에 맞지 않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문법으로 언어 하나에도 세련되게 구사해야 한다.

작은 것부터 신뢰를 쌓아야 한다. 방해세력이 많을 때는 특히 서로 유의하고 배려해야 한다.

상호 존중하며 ‘유리그릇’처럼 남북관계를 다뤄야 하는 것은 한민족 미래를 위해서도 여전히 유효한 최상위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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