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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상가 미분양율’, 전국 최고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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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상가 미분양율’, 전국 최고라는데…
  • 이계홍
  • 승인 2019.08.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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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주필의 시선]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한들, 우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무슨 재미가 있나
이계홍 주필.
이계홍 주필.

필자가 사는 세종시 아파트 단지는 조경이 잘 조성되어 있어 집 밖으로 나오면 마치 큰 공원을 연상케 한다. 단지 옆 길게 뻗어내린 동산까지 포함하면 아파트 단지는 흡사 중세 유럽 왕들이 거처하는 대정원 같다. 

길목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있고 아기자기한 공원엔 온갖 풀꽃들이 향기를 풍기며, 그 사이 소롯길을 걷는 낭만은 걸을 때마다 어떤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아침과 저녁이면 단지를 한바퀴 도는데, 대략 1시간 가량 걸린다. 피고 지는 꽃들과 이슬 머금은 이름 모를 풀들을 보며 걷는 맛은 평화와 행복, 마음의 고요를 주기에 족하다.    

주민 대다수는 젊은층이기에 아이들이 많다. 해거름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놀이터로 나와 재재거리며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을 보면,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런 부모들이 한결같이 착하고 유순해 보인다. 

필자는 산책을 통해 새로운 이웃을 만들고, 동아리에도 참여하고 있다. 

3년 전 직장에서 퇴직한 뒤 필자는 한때 서울로 올라갈까 망설였다. 그러나 새로운 인연들과의 이별이 아쉽고, 세종시의 아름다운 아파트 단지와 헤어지는 것도 공연히 손해인 것 같아서 근자에는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사람들 만나 정들면 이웃 사촌이 아닌가.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생을 이 아파트 단지에서 보낼 생각이다. 물론 이런 애정으로 바라본 세종시에 대한 아쉬움도 적잖다. 

주택 특별공급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받은 공직자들이 여전히 서울로 출퇴근하며 원룸·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문제를 우선 지적하고 싶다. 매 주말 세종시가 북적거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당연히 내려와 살아야 하고 충분한 시간을 줬는데도, 매년 통근버스 예산 집행까지 공적 횡포를 보이고 있다. 

#. ‘상가 공실’, 절름발이 도시 여파 반영  

3생활권의 한 공실 상가 모습.
3생활권의 한 공실 상가 모습.

이는 행정수도가 절름발이가 되어가는 대표적 이유다. 상가는 장사가 안돼 줄도산하고 텅텅 비고 있다. 상가 공실율이 30-40% 대에 이른다고 하니, 이러다 세종시 자체가 ‘도산 도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말이 30-40% 선이지 어떤 곳은 반 이상이 비어 있어 심리적 공실율은 더 심각하다. 

행복도시건설청이나 LH가 여러 수요 예측 끝에 상가를 분양했으나 과도했다면, 이는 일종의 사기행위라 할 수 있다. 

분양받은 업자는 융자를 받아 수익을 꿈꾸고 건물을 지었고, 망했다면 결과적으로 그는 제도의 오류로 손실을 본 셈이다.  

필자가 사는 아름동은 대형 상가 건물이 3열 횡대로 총 9동이 들어서있다. 도대체 인구가 얼마인데, 시급(市級)의 상가지를 조성했을까. 

의원과 학원, 태권도장, 식당, 카페, 주점 등이 들어섰지만, 1층에서 6층까지 전체적으로 빈 상가가 수두룩하다.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상가를 드나드는데 이런 빈 상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리다. 

멀쩡히 장사를 했다가도 한두 달 후 문이 굳게 잠겨있고, 식당의 탁자와 의자들이 엎어져있는 경우를 본다. 몰래 도망갔다는 것이고, 어떤 이는 망해서 주저앉았다고도 했다. 물론 경제적 불황의 여파도 있겠으나 세종시의 경우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  

한때 잘 나간다는 동네 대형 L슈퍼는 상가를 비운 지 1년이 넘도록 입주 업체를 구하지 못했고, 요지에 있는 뚜레즈르 제과점도 나간 지 2년이 넘도록 새 입점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체국과 기존 상가 건물 사이에 있는 7층짜리 상가건물은 1년 이상 공사를 멈추고 있다. 은행 융자를 받아 건물을 지었을텐데, 그 이자 비용만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건축주가 대금 변제를 하지 못해 시공사만 3번째 바뀌었다. 

이로 인해 일부 호실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분양대금을 완납하였음에도 분양자측의 사정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경료받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한다. 

#. 상가 공실, 신도시 전체의 문제 

최근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내걸린 소담동의 한 상가 건축물. 상가 공실 문제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내걸린 소담동의 한 상가 건축물. 상가 공실 문제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비단 아름동만의 사정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더 크다. 

특정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이같은 현상은 일반화되어 있다. 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행정당국에 있다. 수요 예측없이 상가지를 분양하고, 그런 다음에는 나몰라라 하는 책임회피, 이것은 윤리적 차원 뿐만 아니라, 행정 오류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다. 

미국의 경우, 상공 담당 공무원이 직접 현장에 나가 입지 조건을 보고 업종 선정을 해주고, 인구밀도에 따른 수요 예측과 이익 추계 등을 시물레이션을 통해 지도하며 입주 업자를 돕는다고 한다. 

우리는 그 정도까지 가지 않더라도 마구잡이식 분양만은 막았어야 했다. 

#. 지역경제와 괴리된 ‘중앙부처’, 소비 연결 절실

단지 내 과도한 상가 공급 문제의 한 단면인 보람동의 A 주상복합 전경.
단지 내 과도한 상가 공급 문제의 한 단면인 보람동의 A 주상복합 전경.

상권이 돌지 않는다면, 중앙 행정부처 공무원들이 세종 시내에 나와 소비를 해주는 일이 급하다. 

필자가 연구기관에 근무할 적에 본 것이지만, 대부분 직원들은 구내 식당을 이용한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세종 시내에 진출해 소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명색이 행정 수도라고 하지만 세종청사와 세종시는 완전 별개 세계에서 노는 것 같다. 

세종시민에게 중앙 행정부처는 외로운 고도처럼 멀리 떨어져있다. 물론 이들을 위한 제반 편의 시설들이 들어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규제 때문에 필요 시설이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도 행정 부처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 세종청사 공무원들에게 지역화폐를 발행해 세종시 업소를 이용하도록 권장하는 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세종시의 땅을 딛고 장·차관 등 미래의 꿈을 실현하려 한다면, 그 몇십 분의 일은 세종시에 쏟아주어야 예의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세종시에 정주하려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 행정당국의 전향적 대안 마련 절실  

과기부가 입주하는 민간건물 앞에 이삿짐 차량이 서있다.
과기부가 최근 어진동의 한 민간건물로 임시 둥지를 틀고 있다. 과기부는 오는 19일 이곳에서 개청식을 갖는다. 

거듭 말하지만, 행정 당국은 세종시 상가 공실율을 줄이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이는 세종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중앙부처에 부여된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의 해결을 위해 비어있는 대형 상가 건물을 행정부처가 임대할 것을 제안한다. 

청사 건물을 신축할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임대해 사용하면서 시 인구가 늘어나고, 자생력이 생길 때까지 임대해 사용함으로써 중앙 부처 공무원과 주민간의 친밀감과 유대감을 증폭시키고, 이들의 진출입으로 상가 수익도 올려주는 방안 말이다.  

옛 국민안전처부터 올해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까지 민간 건물 임시 이전은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단기 미봉책을 넘어선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상가를 공공건물로 사용하는 데는 당연히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상가건물일수록 발상의 전환을 하면 리모델링해 사용할 수 있다. 망해가는 주민, 거리에 나앉은 시민을 보호하는 일은 그 어떤 대책보다 우선한다. 

필자는 빈 상가 앞에서 절망하는 상인을 볼 때마다 공연히 미안해진다. 행정적 문제로 인해 손해를 강요받는 그를 보고 돕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주변에 우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동네 공원을 산책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 이웃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데, 나 혼자 꽃피고 새우는 공원을 산책한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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