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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이야기] 빨치산 출신의 ‘육철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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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이야기] 빨치산 출신의 ‘육철식 시인’
  • 김수현
  • 승인 2012.08.29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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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서는 저주받고, 북에서는 버림받은 영혼들을 위무하다

▲ 노고봉 중턱에 위치한 육철식 시비
전쟁으로 인한 분단구조는 한반도를 세계 유일의 냉전국가로 추락시키고, 남북한 대결구도와 이념 갈등은 소통의 여지없이 극점으로 치닫고 있다. 이념이란 것이 좋은 세상, 좋은 삶, 좋은 사람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지만, 분단 구도에서 이념은 모든 가치를 우선하는 절대기준으로 미화되며 무소위의 권력을 횡단하고 있다.
본지 38호 16면의 ‘부강 이야기 - 노고봉에 오르면 세상이 보인다’에서 육철식 시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남에서는 저주를 받고 북에서는 버림을 받은 빨치산 출신의 시인으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인물로 소개한 바 있다.
그 기획기사를 싣기 전에 여러 모로 만나고자 노력했지만, 주위에서 육 시인이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언론을 기피한다는 이유로 만류해 마음을 접었었다.
기사가 나간 이후로도 보다 완성된 글을 위해서는 육 시인을 만났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았고, 언젠가는 육 시인이 걸어왔던 현대사의 굴곡진 노정을 꼭 듣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23일(목) 오전, 육 시인을 부강에서 우연히 만났다.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하는 정복용 형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노신사 한 분이 들어오셨고, "김 기자, 저 분이 전에 만나고 싶다던 육철식 시인이야"라고 전하는 것이었다.

▲ 부강리에서 우연히 만난 육철식 시인
바로 인사를 드렸고, 육 시인도 기사 잘 보았다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얼굴은 처음이지만 서로의 글을 통해 이미 친숙한 사이가 된 것처럼 편안했다.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역사적인 대목까지 궁금한 것을 두서없이 여쭤보았고, 이에 대해 시인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조용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열어 놓았다.

짧은 시간에 모든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이 불가능할 뿐더러, 그러기 위해서는 추후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리지 않았으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했고 일부 내용은 육 시인이 집필한 ‘강동정치학원’에서 빌려왔음을 미리 밝힌다.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
10여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외부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다. 신경쇠약으로 신문을 읽거나 집필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육철식 시비에 대한 기사는 보셨는지?
글을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서 신문을 꼼꼼히 보지 못했는데, 아내가 ‘세종포스트’라는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고 해서 보았다. 고맙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조정래 작가나 도종환 의원(시인)도 찾아왔다고 하던데?
조정래 작가는 빨치산 취재를 하면서 두어 번 찾아온 적이 있고, 도종환 시인은 부강중에 근무하기도 했고, 도 시인이 전교조 활동을 비롯한 문화운동을 하면서 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정복용 형이 옆에서) 도종환 의원이 육 시인 회갑연 때 축하하러 왔던 것이 빌미가 되어 얼마 전 여당으로부터 ‘종북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본인에 대해 소개하면?
이곳 부강 출신으로 1948년 월북하여 북한에서 남로당 출신을 유격요원으로 양성했던 ‘강동정치학원’을 최연소로 졸업했고, 당시 오진우가 대장으로 있던 제3군관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제1군관학교인 인민군 제764군부대는 군사전문군관을, 제2군관학교인 제765군부대는 정치군관을, 제3군관학교인 제766부대는 유격전투요원을 양성하던 곳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총참모부 정찰부에 투입되었고, 인민군이
퇴각하자 전남 유격대 총사령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돼 전향했다. 58년 국군에 입대해 만기제대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활동하셨는지?
주로 부강에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다. 부강 번영회장, 부강 산악회장, 부강 노인회장 등의 역할을 했고,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했다. 아들이 학생운동 때문에 고초를 겪은 적이 있어 민가협 활동을 하기도 했다. 6.25 전쟁과 관련하여 언론사의 취재가 많았고,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같은 경우는 고증을 하기도 했다. 집필활동도 꾸준히 했는데, 88년 자전적 수기 ‘빨치산’, 91년 시집 ‘봄을 기다리는 낙엽’, 98년 ‘강동정치학원-빨치산’을 출간하였다.

요즘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
6.25 전쟁에 대해 너무 학술적으로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에서는 일방적으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하고, 남한에서는 북한이 소련의 지시와 중공의 도움을 받아 일으킨 전쟁이라고만 해석한다. 당시 인민군이 서울까지만 내려오면, 남로당 30만 당원이 각 지역에서 봉기하여 남한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봤다. 자기 세력을 유지하려고 한 박헌영과 통일된 공산국가를 수립하려고 한 김일성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것이다. 북에서는 전쟁 후에 박헌영과 이승엽을 비롯한 남로당과 강동학원 출신을 미국의 간첩으로 몰며 처단했다. 북으로 간 강동학원 출신은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하고, 남에서 유격대 활동을 한 강동학원 출신은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소설도 그러하고, 영화 ‘남부군’은 빨치산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 여건이 된다면 유능한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을 만나 당시의 시대상을 객관적으로 조명한 빨치산 영화를 만들었으면 한다.

가깝고도 먼 당신

육철식

다가가 보면 멀리서 계신 님
또 다가가 보면 멀리서 손짓하는 님
손짓 따라 애타디 애탄 그리움만
수북히 뿌려진 꽃잎만 쌓인 길

다가가 보면 멀리서 계신 님
또 다가가 보면 멀리서 미소짓는 님
미소 따라 애타디 애탄 서러움만
수북히 떨어진 낙엽만 쌓인 길

가까이 계시면서 멀리서 계신 님
다 닳아 타고 탄 애타디 애탄
뿌린 꽃잎 쌓인 낙엽 그 자국 따라
매디마디 마디매디 딛고 오소서

▲ 도종환 의원은 육 시인의 회갑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종북주의자'로 공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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