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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가 말하는 ‘교육현실과 희망의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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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가 말하는 ‘교육현실과 희망의 대안’
  • 김소라
  • 승인 2012.07.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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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세종교육희망네트워크 인문학 모임에서 특별강연

지난 7월 4일, 남리 연기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세종교육희망네트워크 인문학 모임에서 주관한 강수돌 교수 초청강연이 있었다. ‘살림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강수돌 교수는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로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신안1리 이장을 지내며 주민들과 함께 한 고층아파트건설반대 운동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자연이 최고의 교과서라는 믿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강수돌 교수는 ‘교육의 현실과 희망대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에서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며 건강한 지역사회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교육의 암울한 현실 - 청소년 자살과 공교육 붕괴

삶의 현실과 희망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우리 교육현실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10대 청소년 자살 소식이다. 통계적으로 10대 청소년이 1 년에 250~300명 씩 자살하고 있다. 고통스런 우리 교육의 단면이다. 둘째는 학교를 벗어나는 탈학교 청소년이 매년 5만~8만명이다. 교육청 인가하지 않은 대안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도 거기 해당한다. 공교육 붕괴현상이다. 문제는 자살하지 않고 학교를 잘 다니는 아이들은 배움의 기쁨을 느끼고 자아를 발견 하고 희망을 느끼는 생활을 하는가이다.

대체로 그렇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풀이 죽어간다. 노골적으로 학교는 다니되 배움의 기쁨이나 살아있는 즐거움, 희망보다는 자살할 용기나 학교 뛰쳐나올 용기가 없어 다니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루 한명의 청소년이 꿈을 키우기보다 목숨을 끊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교육부장관이 매일 사퇴해야 할 일이고 교육감, 교장, 교감, 교사 모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죽은 아이가 남의 얘기 같겠지만 신문이나 언론, 당국의 태도를 보면 일반적 반응은 근본적 원인을 찾고 반성하고 해결점을 찾기 보다는 일을 빨리 수습하려고만 한다. 이미 스스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아픔을 정직하게 드러내 고쳐내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어른들 현실은 어떤가? 돈 벌어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참 힘들게 산다.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는 사회다. 부모들은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아이들 통해 이루고 싶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도 행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 모든 인생을 아이에게 투자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배신감을 느낀다. 짜증이 나기도 하고 실망스럽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서로 ‘원수’처럼 되어 간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 아이는 ‘소중한 사랑의 결실’

우리가 80년을 산다면 80년 인생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가정, 학교, 직장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가정과 학교, 직장 생활을 두고 생각해 보자.

가정에서 아이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아이를 정말 소중한 존재로, 사랑의 결실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제2세대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를 보면 세상의 험난함 속에 더 많이 누리기 위해 더 높은 사다리에 오르도록 강요하게 된다. 이는 아이를 인간 주체의 관점이 아닌 써먹기 좋은 재목으로 보는 것이다. 아이를 남의 돈벌이에 이용당하는 수단이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아이가 소중하고 각자 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살아가는 과정에서 바라보며 도와주는 것이 좋은 교육방식이라고 그래야 아이도 나도 좋은 길이다. 가정은 필요한 것만 그때 그때 채워주는 버스정류장이 아닌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학교생활 되어야

학교는 어떤가? 학교에서는 공부를 하고 또 시험을 친다. 시험을 치면 점수와 등수가 나온다. 공부는 왜 할까? 생각하면 아이들이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자아발견 위해서 하는 것이다.

시민으로 살아갈 소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 대접받으면 좋은 사회다.

때문에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이런 차원에서 하면 재미있고 오전시간만 하면 충분하다. 오후는 뭐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하면 좋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아이들 끼와 꿈을 죽이고 있다. 공부가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데 이건 아니다. 특히 시험은 공포다. 시험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단순한 기억력 테스트가 아니다. 인디언의 후손들은 시험시간에 둥글게 둘러 앉아 이유를 물으니 ‘어려운 문제는 협동해서 풀라고 배웠다’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시험에 대한 가치관,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 것이다. 시험문제가 화두가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것이 시험내용이 된다면 수만개의 시험을 치른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시험제도의 좋은 예는 절대평가 운전면허와 검정고시

점수와 등수도 그렇다. 점수 자체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 시험제도 중 좋은 제도가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운전면허증과 검정고시다. 이 두 가지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하다. 점수의 의미는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의 판단기준이 되고 내 노력의 결과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이를 남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상대평가와 비교가 너무 심하다. 심지어 선생님도 비교시킨다. 엄친아, 엄친딸 개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결국 상대평가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특히 야간자율학습 폐해는 얼마나 심한가? 시인이 되고 싶은 아이를 밤까지 잡아놓고 국영수를 위주의 공부를 12년간 시킨다. 이 과정을 마치면 모두 국영수 박사가 되는가?

대학은 내 꿈을 실현하고 싶고 기여하고 싶어 소신과 철학을 갖고 진짜 공부를 하러 가야 하는 곳인데 남들이 가니까,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간다면 대학의 발전도, 사회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 비용과 시간이 너무 아깝고 부모님도 아이도 불쌍하다. 학교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야간자율학습이 일중독을 부추긴다

지금은 주5일제가 정착했다지만 실제 8시간만 일하는 경우 별로 없다. 저녁 늦게 별보면 나와야 뭔가 한 거 같은 느낌을 받는 직장인이 많다. 모두 야간자율학습 훈련 효과다. 토, 일요일 놀면 불안하고 도서관에 가방 놓아야 안심되던 버릇이 직장에서도 이어진 것이다. 직장과 가정의 균형, 일과 휴식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우리 나라의 과로사 통계가 만만치 않은데 산재, 직업병, 심장마비 등 죽을 때까지 일하는 사회라는 불명예다. 일제고사는 일제히 없애야 한다. 야간자율학습을 없애고 저녁 시간에 친구,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80년 삶 동안, 젊었을 때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고 나면 나중에 환상적인 시간이 펼쳐진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매일매일 행복해야 한다.

예전에는 국가지도자들이 기만한 측면이 있다. 대망의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부추겼지만 결국 재벌 몇 개만 살리고 대(大)망(亡)했다.

우리 가정이 저녁시간만큼은 아이와 어른들이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어가고 일중독, 공부중독으로 안 갔으면 좋겠다.

일과 휴식의 균형을 갖추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직장생활

직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일과 휴식 가운데 일에 쏠려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일중독은 마약중독과 비슷해 일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갈수록 더 성과가 나야 기쁨과 만족을 느끼고 일할 때 자기 존재감과 정체성을 느낀다.

나는 명함을 잘 안 갖고 다니는데 살아가는 삶의 내용으로 자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외적인 것을 통해 드러내는 것보다 더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은 필요하지만 主는 삶이고 일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면 행복에 이르는 수단이 일이다. 현재는 일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일이 급하면 가정의 중요한 일을 포기하고 또 일중독은 수많은 중독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받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일 중독인 사람들인 휴가를 가서도 일을 하거나 휴가 때도 일할 때처럼 혹사한다. 일 중독은 어릴 때 야간자율학습 안하기로 예방해야한다.

직장에서의 생산성, 그 모순된 이름

우리 직장 생활을 보면 올라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윗사람한테 충성하고 비비면서 아랫사람은 갈궈야 한다. 아래로 갈구고 위로 비비는 직장현실을 잘 보여주는 이른바 ‘갈비 이론’이다. 참 괴로운 일이고 인간성 소외가 나타난다.

40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느 직장이든 생산성을 강조한다. 생산적이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인데 직장에서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투입에 비해 얼마나 가치가 나오느냐를 말한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원감축, 하청, 비정규직, 임금동결, 노조억압을 하고 원료비를 낮추기 위해 교섭과 타협보다 무단채취 등 환경파괴를 선택한다. 시설 설비비를 줄이려고 비오는 그맘날 밤 무단으로 폐수를 방류하기도 하고 산재사고 예방 시설을 갖추지 않거나 가동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으로 생산성을 높인다. 동일한 인건비와 원료비에도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노동강도를 강화해 생산성을 높이기도 한다.

기업의 생산성은 인간의 개인이나 여유, 건강, 공동체 자연생태계 차원에서 죽이는 길이다. 나는 기업이 말하는 생산성 가운데 80%는 파괴성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무엇을 생산하건 파괴적 생산성이 아니라 유익한 방식으로 유익한 것을 만들어 내도록 가르쳐야 한다.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돈과 권력에 빌붙어서 혼자 잘살라고 가르치지 말자.

누구든 차별없이 대접해주는 둥글게 사는 사회

80년 사는 동안 뼈빠지게 일하고 노후에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패러다임을 반복하면 미래가 없다. 대안은 둥글게 사는 사회다.

시인, 유기농 농민, 학자, 법률가, 사회일꾼, 예술가든 무엇이 되더라도 이런 아이들이 둥글게, 어느 학교를 나와도 운전면허나 검정고시로 상징되듯이 비슷하게 대접해주는 차별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대접받거나 존중 받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걸 선택해 열심히 배워 사회에 나올 것이다. 먼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 머릿 속부터 모든 아이가 소중하다고 서로 존중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오늘만 꿈꾸면 꿈으로 남겠지만 매일 꿈꾸면 현실이 된다. 노예 사회가 없어진 것도 그렇고 군사독재도 안 없어질 것 같았지만 없어졌다. 숱한 사람이 꿈꾸고 이야기하고 노력하면 바뀐다. 영원할 것 같던 MB정권도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사회가 되려면 교육적으로 중요한 것은 고교평등화가 필요하다.

고교평등화- 대학평등화 - 직업평등화 사회로 나아가야

인문계와 전문계, 특수목적 등으로 나눠진 고등학교를 어느 학교를 나오건 동등하게 존중하게 하는 평등화가 자리잡고 이것이 대학 평등화, 직업 평등화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교육과 경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집에서 아무리 잘해도 사회가 대접을 차별적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부모님 불안감은 계속 남기 때문이다. 이런 그림에 가까운 사회가 있다.

독일의 기술자는 박사급 대접을 받아 자부심을 갖고 산다. 어느 분야 일이 하더라도 좋아서 선택, 실력을 쌓으면 인간적 자존심을 억누를 차별은 없다.

핀란드, 덴마크식 교육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다양성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 실력이 높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중국은 농민이나 기사의 소득이 교수 소득와 비슷하거나 높다. 법률가, 의사, 교수, 장관이 되더라도 엄청난 우대 없어지고 비슷하게 가면 우리사회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 사회도 시민사회단체나 생협, 지역운동, 공동체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권력서열이 아니라 역할분담의 차원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일을 해 나가는 구조가 있다. 이런 구조를 닮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이웃사촌 개념, 나이를 떠나 조건을 떠나 마음으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 내 머릿 속에 위계구조부터 벗어내야 한다. 나부터 극복하고 살아가면서 실천하면서 고쳐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자연스럽게 사회가 바뀔 것이다.

나 혼자 꿈꾸면 꿈이지만 같이 꾸면 현실이 된다.

바닷물을 먹어보면 짜지만 모두 소금은 아니다. 100명 중에 향기로운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향기나는 공동체와 지역사회 만들 수 있다. 올바른 생각 가진 한두 사람으로 마을은 건강해질 수 있다. 나부터 출발하고 노력해서 점점 커지면 제도권도 바꿔나갈 수 있다.

사회변화발전의 원리로 강조하고 싶다. 내 혼자 꿈꾸면 꿈이지만 같이 꾸면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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