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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진짜 방학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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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진짜 방학이 필요해
  • 송길룡
  • 승인 2012.07.09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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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고전영화 ④ 400번의 구타

여름더위처럼 공부에 찌들어가는 지겹고 괴로운 학교생활이 이제 곧 기말시험만 지나면 끝난다.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고 끝나는 기분을 주는 방학이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아이들에게만 잠시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너무나 염려하는 학부모들에게는 방학이야말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보다 더 심하게 짜임새있는 학습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잠깐이라도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좋다는 조언도 무색하다. 마음껏 뛰놀고 싶은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은 살아있는 어린 시체다.

▲ 400번의 구타 한 장면. 소년원에서 탈출해 바닷가에 다다른 소년의 모습.

영화관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아이들 주연의 영화들도 결코 적지 않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어린이들을 주된 관객층으로 설정해 제작된다. 아닌 게 아니라 ‘청소년관람가’라는 영화상영등급을 얻기 위해 대다수의 오락영화들도 폭력성과 선정성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영화 관객의 중요한 연령층은 청소년이거나 청소년쯤의 정신연령을 가진 성인이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들은 즐비하지만 대부분 현실을 떠나 환상속에서 일시적으로 쾌락을 얻게 해주는 것들에 불과하다. 이에 비하면 성인들에게는 현실의 불합리와 사회의 부조리를 일깨워주는 영화들이 간혹 제공된다. 물론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가벼운 영화들이 더 많은 상황이지만.

정색을 하고 질문해보자. 왜 성인들에게만 현실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제작될까? 청소년들에게는 왜 그런 영화가 제공되지 않을까? 청소년들은 그들의 현실을 제대로 볼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영화관객의 중요한 연령층을 형성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덜 자란 미숙아 취급을 당하며 자신들의 현실을 외면하도록 강요당하는 영화들만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뜨거운 여름. 아이들에게보다는 가정에 아이들을 둔 어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아이들의 영화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겠다. 여기서 소개하는 영화들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른들의 말을 빌리자면, ‘못돼먹은 어린 것’들이 하라는 공부 안하고 난리법석을 피운다.

1950년대 후반 점점 구태의연해져가는 당시 영화계에 새로운 물결이 되어 소개되기 시작했던 누벨바그 영화들. 공교롭게도 그 시작을 알리는 서막의 한 자리에는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도망치는 아이가 주연인 영화 <400번의 구타>가 있었다.

도저히 학교공부에 흥미가 없는 우리의 어린 소년 앙트완은 제각각 자신의 일상에만 매몰되는 부모 아래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 무조건 복종만을 강요하는 학교는 소년의 답답증을 해소할 수 없다. 무단결석을 하고 엄마가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집에서 가출하고 도둑질도 한다. 누가 봐도 문제아인 앙트완은 급기야 소년원에 들어간다. 점점 옥죄는 통제 속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던 그는 역시 거기서도 탈출을 한다. 그 긴 탈주의 끝에서 소년은 바다를 만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단합하여 교사들에게 대들고 학교를 쑥밭으로 만드는 광경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 프랑스 초기 걸작 중 한 편인 <품행제로>(장 비고, 1933)는 학습노예로 전락해버린 현재의 청소년들에게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길들여지지 않은 자유롭고 반항적인 품성을 쾌활하게 펼쳐보여준다.

영 국 영 화 < 이프...>(린제이 앤더슨, 1968)는 아이들의 반항을 아예 어른들과의 전쟁으로 승화시켜버린다. 군대식 규율과 권위적 교육에 반기를 들고 기숙사 학생들은 기관총과 중화기를 동원해 학교에서 교사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한다. 지금의 수험생들이 이 영화를 보면 속이 후련해질 것이다.

위에 소개한 영화들에 비하면 한국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 1989)는 점잖은 편이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부분도 있다. 수동적으로 반항하던 학생의 최종 선택은 자살이다. 이 영화를 통해 학교성적으로 우리들의 행복을 만들 수 없다는 공감을 느꼈던 아이들이 지금의 학부모 세대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 외쳤던 아이들이 지금은 공부만이 전부라고 다그치며 자기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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