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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 유학1호 하피스트가 직접 하프 만든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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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 유학1호 하피스트가 직접 하프 만든 사연
  • 이충건 기자
  • 승인 2019.04.30 08: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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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니 하프 ‘줄리’ 만들고 회사 HIM 설립한 써니 안
써니 안은 하프 대중화와 입문용 하프 개발을 위해 40여 년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세종포스트 이충건 기자] 써니 안(Sunny Ahn), 하프연주자다. 본명은 안영숙.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중・고를 졸업한 뒤 197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남가주대학교) 음대를 졸업했다. 하프 전공으로 학위(BM)를 받은 한국인 유학생 1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하피스트인 수잔 맥도날드(Susann McDonald) 교수를 사사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하프 전공자는 대학원생 포함해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흔치 않은 악기인 데다 워낙 고가여서다. 

미국에서 주로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LA 커뮤니티칼리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고(故) 정재동 씨가 상임 지휘자로 있을 때 서울시향에서 하피스트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주저앉았다. 그런 그가 2015년 영구 귀국했다. 그가 정착한 곳은 대한민국 세종시 장군면 청벽전원마을이다.

써니 안이 고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하프의 대중화다. 이를 위해 저렴하고 작은 입문용 하프 ‘줄리(Julie)’를 개발했다. 회사도 세웠다. ㈜힘(HIM)이다. 공주대 산학협력관 2층에 있는 이 회사에서 그를 만났다.

#.하프 직접 만들려 LA에서 샌디에이고 3시간 30분 운전하며 5년간 목공학교 다녀

써니 안은 해외에 유학해 대학을 졸업한 우리나라 1호 하프연주자다.

Q. 입문용 하프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A. “LA 뮤직센터에서 ‘티칭 아티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였다. 하프를 구하기도 어렵고 크니까 많은 사람을 동시에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동생(물리학자 안효은 박사)과 상의를 했는데, 하프를 작게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악기를 어떻게 만드냐고 했더니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내 시작하게 됐다.”

Q. 그때가 언젠가?

A. “2007년, 2008년 때다.”

Q. ‘줄리’가 나오는 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린 건가.

A. “디자인해서 악기 제조를 맡겼는데 생각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동생은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어서 한국에 있었다. 동생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아 직접 만들게 됐다. 그래서 목공학교에 들어갔다.”

Q. 하프 만들려고 목공학교까지 들어갔나.

A. "2008년 샌디에이고에 있는 팔로마 칼리지에 들어갔다. 청강으로 시작해서 결국 졸업까지 했다. 처음에는 몇 학기만 배우면 끝날 줄 알았다. 막상 배워보니 목공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5년을 다녔다.”

Q. LA에서 샌디에이고까지 학교에 다니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처음 한 학기는 근처에 집을 얻어 이틀 자고 다시 LA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3시간 30분씩 자가 운전해서 다녔다. 요리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하고 싶어 요리학원에 가지 않나. 목공학교도 마찬가지다. 웬만큼 목공을 아는 사람이 다니더라. 다들 탁자며 울타리 정도는 만들어 본 사람들이었다. 나는 목공에 대한 기초도 되어 있지 않았다. 몰라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런 것도 모르냐고 핀잔 듣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몰라 질문하기 위해 공부했다. 사실 5년은 목공을 제대로 배웠다고 얘기할 정도가 되지 못한다. 목공을 하다 보면 소리가 워낙 크고 무섭다. 항상 안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손으로 연장을 사용하는 클래스에 들어갔더니 몇 달 동안 칼날만 갈더라. 내가 목공학교에 다녀 남들보다 나무 보는 것은 잘하겠지만 연장을 잘 다루고 잘 만드는 것은 더 훈련해야 한다. 졸업하고도 계속 학교에 다닌 이유다.”

#.창조경제 한다고 한국 왔더니… 지금껏 바뀐 건 없어

써니 안이 제작해 '미국목공대회(Woodworking in America)'에 출품한 미니 하프.

Q. 미국에서 입문용 하프를 기어코 만들었나.

A. “사실 목공학교에 다닌 목적이 하프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학교과정 상 테이블도 2개 만들고 툴박스도 만들었다. 우쿨렐레와 하프도 만들었다. 미국 목공대회(Wood Working America)에 출전해 내가 만든 하프를 전시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특허도 받았는데, 하프의 구조와 관련된 것이다.”

Q. 인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한국에는 왜 온 것인가.

A. “예전과 달리 목공학교들이 졸업 후에는 더 나오지 못하게 했다. 재정이 부족해지면서다. 하도 하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르니 선생님 중 한 명이 인터넷을 뒤져 과천과학관 무한상상실이란 곳을 찾아내 알려줬다. 살펴보니 3D프린터며 CNC(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목재를 절단하는 기계) 같은 목공학교에 있는 장비를 다 갖추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2015년 영구 귀국하게 됐다.”

Q. 집념이 대단하시다. 그래서 무한상상실에서 ‘줄리’를 만든 것인가.

A. “아니다. 기계나 장비는 잘 갖춰놨지만, 개인이 활용할 여건은 되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간다고 결심했을 때는 무한상상실, 창조경제 등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막상 와보니 제안서를 내고, 선정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처음에는 초기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국내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보니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그런 데서 만들지 않고, 돈 주고 맡겨서 만드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더라. 한국은 곳곳에 그런 장비를 갖춰놨는데 정작 쓰는 사람이 없다. 진열만 해놓고 쓰지도 못하게 하는 참 이상한 시스템이다.”

Q. 미국에서 이미 개발한 하프가 있는데 왜 또 만드느라 사서 고생을 하나.

A. “미국에서는 여러 명이 배우기 위해 하프를 작게 만들고 소리가 작게 나도록 만들었다. 책상에 올려놓고 배울 수 있는 입문용 하프다. 미국에서 다니던 한인교회가 있었는데, 직접 제작한 하프를 보급하고 2개 반을 만들어서 가르쳐봤다. 효과가 대단히 좋았다. 그래서 한국에 가져왔는데, 반응이 달랐다. 한국 사람들은 울림통이 없는 하프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울림통 있는 입문용 하프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게 ‘줄리’다.”

#. 88개 건반 피아노보다 47현 하프가 더 다양한 소리 내는 이유

써니 안이 귀국해 입문용 하프로 개발한 '줄리(Julie)'

Q.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을 뉴욕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다른 연주단체가 같은 곡을 하프 없이 연주하는 걸 다시 봤는데, 확연히 다르더라. 하프는 오케스트라 편성에서도 흔치 않은 것 같더라.

A. “1810년에 페달 하프가 처음 나왔다. 그 이후 라벨, 드뷔시 같은 프랑스 작곡가들로부터 하프가 편성된 오케스트라 곡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Q. 하프의 환상적인 소리는 악기의 구조와 상관있는 건가.

A. “페달 하프는 머리 부분에 디스크가 내장돼 있다. 디스크가 돌아가면서 한 줄에서 세 개의 음(b, ♮, #)을 만든다. 건반이 88개인 피아노보다 47현인 하프가 낼 수 있는 소리가 더 많은 것이 바로 7개의 페달 작용 때문이다. 피아노는 글리산도(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급속한 음계에 의해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방법) 할 때 중간에 음을 스킵(건너뛰기) 할 수 없는데 하프는 가능하다. 글리산도 할 때 환상적인 소리가 나는 게 하프의 특징이다.”

Q. 페달 없이 만든 더 작은 하프도 있던데…

A. “페달 대신 레버를 장착한 하프가 있다. 레버 하프라고 한다. 레버로 스트링의 길이를 조절해 반음을 만드는데 왼손으로 레버를 움직여야 한다. 연주 중 레버를 움직이게 되면 왼손은 연주할 수가 없다. 따라서 레버로 반음조절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격을 고려해 반음조절이 필요한 음표에만 장착하는 경우가 많다.”

Q. ‘줄리’는 줄이 몇 개인가. 레버가 없던데…

A. “15현이다. 입문용 미니 하프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리도 좋다. (잠시 하프 소리를 들려줬다.) ‘줄리’ 하프에도 레버를 달 수 있다. 레버가 특허품인 데다 비용을 고려해 달지 않았을 뿐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옵션처럼 생각하면 된다.”

#. 써니 안의 미니 하프 '줄리' 드라마에도 출연

써니 안이 제작한 입문용 미니 하프 '줄리'를 연주하는 JTBC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 제9회의 한 장면.

Q. 회사까지 만든 이유가 있나.

A. “원래는 레버 없이 반음조절이 가능한 하프를 만들려고 했다. 3D로 만들어놓고 더는 개발을 진척하지 못했다. 제대로 R&D(연구개발)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지원은 운영실적이 있는 회사에서 개발이 필요한 경우에만 지원해주는 시스템이다. 운영실적이 필요했고, 제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줄리’를 만들고 회사도 차리게 된 것이다.”

Q. ‘줄리’는 가격이 어떻게 되나.

A. “39만 원이다. 더는 싸게 만들 수 없다. 간신히 인건비 정도 나오는 수준이다. 악기상에서 찾아온 적이 있는데 너무 싸게 판다며 가격을 올리라고 하더라. 총판에 맡길 수 없는 구조다. 더 싼 하프를 만들려면 새롭게 제작해야 한다. 현재 준비 중이다. 방과 후 수업용으로 학생들이 15만 원대에서 구매 가능한 미니 하프를 연구하고 있다.”

Q. ‘줄리’가 드라마에 나왔더라.

A. “지난 22일 방영된 JTBC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 9회에서 양떼목장 주인이 ‘줄리’를 두 차례 연주하는 장면이 나왔다. 외국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사람이 귀국해서 차린 목장이다. 리포터가 양털이 반짝반짝한 이유를 묻자 양 떼 사이에서 하프를 연주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도 연주 장면이 나온다. 저녁 식사 중 리포터가 아내를 어떻게 만났느냐고 질문하자 자장가 부르는 모습에 반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자 부인이 자장가를 부르고 남편이 다시 하프를 연주했다. 리포터는 물론 스텝들까지 잠에 빠지는 코믹한 장면이다. 대역 연주는 제자인 류명환 씨가 했다.”

Q. 하프 지도사 양성 과정도 운영한다던데…

A. “올해 초부터 하프 지도사 2급 자격 과정을 시작했다. 12주 과정으로 운영하는데, 전주, 천안, 논산, 공주, 대전 이렇게 5명이 2급 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학생들이 모두 음악학원 원장이다. 우쿨렐레 가르치는 분들인데, 앞으로 하프도 우쿨렐레같이 활성화하려고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피아노학원 하시던 원장님도 있다. 피아노는 일대일로 가르치는데, 우쿨렐레는 한 번에 10명 이상을 지도할 수 있다. 동시에 50명씩 가르치기도 하고, 그동안 3000명 넘게 제자를 키운 분도 이번에 자격증을 받았다. 우쿨렐레 협회가 한 곳에서 지금은 50개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하프도 우쿨렐레처럼 사랑을 받을 것으로 본다.”

#. 하프 지도사 자격 과정 운영 시작… 하프 대중화 소망

1기 하프 지도사 2급 자격 이수자들의 수업 장면.

Q. 지도사 자격은 누가 부여하나.

A. “한국하프교육협회에서 수여한다. 김영애 씨가 회장이고, 내가 부회장으로 있다.”

Q. 시험도 치르나.

A. “당연하다. 이론시험, 실기시험 다 본다. 12주 과정 중간에는 보조교사로 참여해 지도 실습도 해야 한다. 결국, 이분들이 가르쳐야 하지 않나. 엄격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 하프교본, 하프곡집도 내가 만든 것으로 활용한다.”

Q. 공주에서만 운영하나.

A. “5월부터는 서울에서도 시작한다. 5월 20일부터 세종시에서도 운영하려고 한다. 많은 관심 바란다.”

Q. 지도사 1급 자격도 운영하나.

A. “올해 처음 2급 자격을 취득하신 분들이 1급 자격 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2급 자격은 ‘줄리’로 배우는데, 1급 과정에서는 레버 하프도 배운다. 1급 자격도 12주 과정으로 운영된다. 1급 자격 취득한 이들 5명이 앞으로 각 지역에서 2급 과정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Q. 방과 후 학교 수업으로 하프를 가르치면 좋을 것 같은데…

A. “2급 자격을 이수한 분들이 방과 후 학교에서 아이들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방과 후 학교에 사용할 더 저렴한 하프도 개발 중이다.”

Q.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A. “세종에서 많은 하프 지도사를 양성하고 싶다. 이분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름 캠프도 하고, 하프연주자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프 지도사 자격 과정이나 하프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참조하거나 전화(☎010 3288 4277)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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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표히 2019-05-09 10:44:06
저는 써니안님과 같은 또래의 사람입니다.
꿈을 안고 열심히 살아오신 써니안님의 이야기를들으며 뭉클한 감동과 함께 뒤늦게 동지를 발견한 듯한 위안을 느끼게 되네요
써니안님처럼 격조 있는 일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 어떤식으로든,실은 이 나이만으로도 다 고군분투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그런 우리들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돼주신 것
참으로 감사합니다.

부디 써니안(SunnyAhn)님이
소망하시는 일이 하나하나 서서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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