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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양피'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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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양피'의 저주
  • 박한표
  • 승인 2019.04.0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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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7-1>‘아르고호’ 대장, 이아손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아르고(Argo)라는 이름의 아주 빠른 배를 타고 북쪽 나라 콜키스(지금의 조지아로 추정)로 가 옛날 그리스인들이 잃어버린 황금 양피를 찾아오는 영웅이 이아손(영어로는 Jason)이다. 이아손이 ‘외짝 신 사나이’가 된 연유를 알아보기 전에 우선 황금 양피에 얽힌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황금 양피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행복을 약속하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부당한 방법으로 황금 양피를 소유한 사람은 불행의 늪에 빠진다.

그런 면에서, 이아손의 아르고호 모험에서 황금 양피는 권력을 상징한다. 펠리아스가 이아손에게 황금 양피를 가져오면 권력을 넘겨주겠다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아손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일을 해냈지만, 왕의 자리를 얻지는 못한다. 결국, 그는 코린토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자식도 모두 잃고 아내 메데이아의 버림을 받아 술독에 빠져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해변에 정박해 있던 아르고호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부러진 돛대에 깔려 죽는다. 이아손은 황금 양피를 얻고도 왜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 부당한 방법으로 황금 양피를 탈취했기 때문이다.

황금 양피를 탈취해 오라고 시킨 펠리아스도 황금 양피의 저주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는 이아손의 아내 메데이아의 꼬임에 빠진 딸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탄탈로스 가문의 이야기에 나오는 황금 양피

‘탄탈로스’ 지오아치노 아세레토, 캔버스에 유채, 117×101㎝, 1630~1640년경, 오클랜드미술관(뉴질랜드).

황금 양피와 권력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그리스 신화 속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 가문에 내린 저주 이야기다.

신의 귀여움을 받던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는 자주 신들의 초대를 받아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먹고, 넥타르를 마시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그것들을 훔쳐오는 만행을 저지르고, 신들의 식탁에서 보고 들은 것을 누설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탄탈로스는 신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신들을 시험해보려고 자기 아들 펠롭스를 토막 내 삶은 뒤 신들에게 주었다. 그 사실을 모를 일 없는 신들은 화를 내며 탄탈로스를 저주하고는 지하 감옥 타르타로스에 가두고 형벌을 내렸다.

탄탈로스에게 내려진 형벌은 영원한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물이 허리까지 차 있고 머리 위에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뭇가지가 드리워져 있지만,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면 수면이 내려가고 과일을 따려고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가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는 형벌이었다.

‘감질나다’라는 영어 단어 ‘탠털라이즈(tantalize)’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까닭이다.

#.탄탈로스의 아들 펠롭스로 이어진 저주

‘펠롭스와 히포다메이아의 경주’ 로마 시대 부조, 기원전 27년~기원후 68년경,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미국 뉴욕).

신들의 은총으로 다시 살아난 탄탈로스의 아들 펠롭스도 신들의 저주를 받는다. 아내 히포다메이아를 얻기 위해 결혼을 반대하던 장인 오이노마오스를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히포다메이아는 매우 아름다워 구혼자가 많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을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 막무가내로 딸의 결혼을 반대했다. 결혼조건은 딸을 데려가도 좋지만, 나중에 출발하여 추격하는 자신에게 잡히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오이노마오스가 아무리 간격이 벌어져 있어도 그 누구든 따라잡을 수 있는 아레스의 말이 끄는 마차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방에는 히포다메이아를 아내를 얻으려다 실패한 자들의 해골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펠롭스는 헤르메스의 오이노마오스의 마부 노릇을 하던 미르틸로스를 매수한다. 매수 조건은 나라의 절반과 첫날밤 아내도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방법은 오이노마오스가 탈 마차의 쇠 살 하나를 밀랍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었다.

드디어 히포다메이아를 데리고 펠롭스가 앞서 출발하고, 한 참 뒤에 오이노마오스가 그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이노마오스는 밀랍이 녹아 마차가 부서지는 바람에 말에 치여 죽었다.

펠롭스가 한 약속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약속을 어기고, 오히려 마차에서 미르틸로스를 발로 밀어 떨어져 죽게 했다. 미르틸로스는 마차에서 떨어지면서 펠롭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아버지 헤르메스에게 기도했다.

이는 펠롭스의 두 아들,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에게 가장 혹독한 신들의 저주가 내려진 이유였다. 두 아들은 개와 원숭이 사이처럼 대단히 사이가 나빴다. 둘의 불화는 아버지 펠롭스가 죽고 난 후 벌어진 왕위 쟁탈전에서 극에 달했다.

#.탄탈로스 가문의 골육상잔

‘티에스테스에게 자기 아들들을 먹게 하는 아트레우스’ 지오반니 보카치오의 ‘귀족 남녀 문제에 대한 책’ 중 삽화. 양피지에 채색, 1410년경, 제네바도서관(스위스).

사람들은 결국 예언가를 불러 누가 왕의 자리에 오를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예언가는 왕이 될 자에게는 어떤 상징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후 형 아트레우스에게 황금 털가죽의 양 한 마리가 나타난다. 형은 그것이 자신이 왕이 될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양을 잡아 박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누가 왕이 될지 청하자고 제안했다.

문제는 이 황금 양피의 양이 아트레우스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동생 티에스테스와 몰래 정을 통하던 형수 아에로페가 훔쳐다가 이미 동생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이 범죄로 인해 제우스의 벌을 받는다. 부당한 방법으로 황금 양피를 탈취해서다.

어떻게 벌을 받는지 보자. 그 사실을 안 형은 제우스 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우스는 태양의 움직임을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왕으로 정하자고 동생에게 제안하라고 화답했다.

동생은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흔쾌히 제안에 동의했다. 형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동생 앞에서 제우스에게 기도했다. 그러자 정말 태양이 이동을 멈추고 진로를 동쪽으로 바꾸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동생은 형이 무서워서 서둘러 망명길에 오른다.

왕의 자리를 차지한 형은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가 보다. 형은 동생 식구들을 초대해 동생의 두 아들을 짐승처럼 잡아 상에 내놓았다. 동생이 그것들을 먹고 나자, 형은 잔인하게 아들들 고기 맛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동생은 간신히 형 집에서 도망 나와 복수의 칼을 간다. 동생은 자기와 함께 살아남은 딸 펠로페이아와 관계하여 낳은 아들이 자신의 원수를 갚아줄 것이라는 신탁을 듣는다. 딸의 침실로 몰래 들어가 동침한 그는 결국 아들 아이기스토스를 낳는다. 이 아이기스토스가 어떻게 복수하는지 이야기는 계속된다. 다소 길지만 그리스 신화의 큰 골격을 이루는 이야기다.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에게 이어진 저주

‘이피게네이아의 희생’ 프랑수아 페리에, 캔버스에 유채, 213×154㎝, 1632~1633년경, 디종 보자르미술관(프랑스).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에게 탄탈로스 가문의 저주는 계속된다.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다. 아가멤논의 아내가 클리타임네스트라이고,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그 유명한 헬레네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총사령관이 되어 아울리스 항에서 출항을 준비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트로이 전쟁은 아가멤논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자신의 동생이자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꾀어 간 일에 복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스 함대는 출항 준비가 다 끝나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아가멤논이 아울리스 항 근처에서 사냥하다가 사슴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후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언가 칼카스를 통해 신탁을 물어보니 아르테미스 여신이 아끼는 사슴을 죽인 아가멤논에게 화가 나 바람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여기에 돌림병까지 연합군을 괴롭혔다.

신탁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여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서는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쳐야 했다. 아르테미스가 처녀 신이기 때문에 처녀를 산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아가멤논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이피게네이아를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키려 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큰딸을 아울리스 항으로 보내라고 전령을 보냈다. 이 말을 믿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어린 아기였던 아들 오레스테스를 안고, 사랑하는 딸 이피게네이아를 남편에게 직접 데려온다.

그러나 이피게네이아는 아울리스 항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제물로 바쳐진다. 아르테미스는 처녀 이피게네이아가 가여웠던지, 암사슴 한 마리를 대신 제물로 바치게 해놓고는 그녀를 타우리스로 데려가 자기 신전의 여사제로 만들었다. 그제 서야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그리스 함대는 트로이를 향해 출항할 수 있었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아내를 숨기고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산채로 신의 제물로 바친 매정한 아버지가 된다. 그 후 트로이 전쟁은 10년 동안이나 계속되다 그리스의 승리로 끝나고,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영웅들이 그리스로 귀환한다. 아가멤논도 집으로 돌아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두 딸 중의 살아남은 딸 엘렉트라의 환영을 받는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그때 그 자리에 없었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누나 엘렉트라가 동생 오레스테스를 포키스 땅으로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미케네로 귀국할 당시 아가멤논은 아름다운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곁에 두고 있었다. 카산드라는 예언의 신 아폴론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아폴론은 예언하는 능력을 가르쳐주는 대신 카산드라에게 사랑을 요구했다.

하지만 카산드라는 예언 능력을 배운 뒤에도 아폴론에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폴론은 단 한 번의 입맞춤으로 카산드라의 예언 능력 중 설득력을 빼앗아버렸다. 설득력을 상실한 예언력을 소유한 카산드라는 조국 트로이의 멸망과 자기의 죽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예언하지만 끝내 설득하지 못한다.

그녀는 트로이 목마가 조국의 멸망을 초래하리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트로이는 목마 속에 숨어들어온 그리스군에 의해 유린당했다. 조국이 멸망한 후 그녀는 적장 아가멤논의 전리품으로 미케네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카산드라는 자신과 아가멤논 앞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사람들에게 예언하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부 아이기스토스(작은 아버지의 아들)의 손에 처참하게 살해된다. 아폴론이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심통이 나서 한 여인을 비극으로 몰아간 일화다.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그녀는 ‘쓸데없이’ 재앙을 미리 알게 되어 고통이 더 심했을 것이다. 설득력이 결여된 예언의 능력은 카산드라를 더 불행하게 했을 것이다.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는 통찰력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은 것 같다.

결국, 아가멤논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날 밤 욕실에서 아내와 정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도끼로 참혹하게 살해된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 아가멤논이 없는 동안 남편의 작은 아버지 티에스테스의 아들 아이기스토스와 짜고 그를 살해할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두고 있었다. 아이기토스의 복수가 실현된 것이다.

#.아르고호의 모험에 나오는 황금 양피의 유래

‘프릭소스와 헬레’ 폼페이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벽화,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이탈리아).

보이오티아 왕 아마타스는 아내 네펠레 사이에서 프릭소스라는 아들과 헬레라는 딸 남매를 두었다.

아마타스는 조강지처인 네펠레를 멀리하고, 새 아내 이노를 맞이한다. 이노는 전처의 자식들을 구박했다. 심지어 나라에 흉년이 들자 신탁을 조작하여 왕을 속이고 그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 했다.

그러자 네펠레는 계모 밑에서 핍박을 당하고 있는 자식들을 구해달라고 헤르메스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자 인간처럼 말할 수 있고, 날 줄 아는 황금 양피의 양 한 마리를 얻게 된다.

그녀는 자식들을 양의 등에 태워 먼 콜키스로 보낸다.

그런데 딸 헬레는 양의 등을 타고 가다가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우리가 그 바다를 ‘헬레스폰토스’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프릭소스만 콜키스에 도착했는데, 그 나라의 왕 아이에테스는 그를 받아주고 자신의 딸 칼키오페까지 아내로 준다. 칼키오페의 여동생이 메데이아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프릭소스는 양을 잡아 황금 양피를 왕에게 선물한다. 왕은 그 모피를 아레스 신의 숲에 있는 참나무 가지에 걸어두고, 잠들지 않는 용에게 지키도록 했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이아손이 황금 양피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 뒤 그와 결혼한다. 하지만 사랑의 배신에 울며 자신의 두 아들을 죽여 남편에게 복수한다. 앞으로 시작할 이아손의 모험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바로 그리스 신화 최고의 악녀로 손꼽히는 메데이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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