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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페터 춤토르가 말하는 ‘영혼이 깃든 건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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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페터 춤토르가 말하는 ‘영혼이 깃든 건축’이란?
  • 이충건 기자
  • 승인 2019.03.0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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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대전시립미술관서 올해 첫 ‘DMA 다이얼로그’ 출연… 한 시간 동안 청중과 '좋은 건축' 공감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왼쪽)가 대전시립미술관 선승혜 관장과 공개 대담을 하고 있다.

거장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영혼이 깃든 건축’을 이야기했다.

춤토르는 9일 오후 3시 대전시립미술관 대강당에서 열린 올해 첫 ‘DMA 다이얼로그’에 출연, 선승혜 관장과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분위기(Atmospheres)’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춤토르는 1942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운영하던 목공소에서 가구공 훈련을 받은 뒤 바젤 공예학교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각각 디자이너 과정과 건축 과정을 마쳤다. 1979년 스위스 할덴슈타인에 건축사무소를 개설해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9년 건축 분야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스위스 쿠어 로마유적발굴 보호관(1986), 스위스 숨비츠 성베네딕트 교회(1988), 스위스 쿠어 마산스 노인요양시설(1993), 스위스 발스 온천(1996),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1997), 독일 하노버 엑스포 스위스관(2000), 독일 쾰른 콜롬바 뮤지엄(2007) 등이 있다.

다음은 대전시립미술관 선승혜 관장의 대담 중 주요 내용.

― 당신의 책 제목이기도 한 ‘분위기’는 어떤 개념인가?

“분위기는 영혼이다. 건물도 영혼을 가질 수 있다. 좋은 건물은 그 속에 깃든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건물의 모양, 건물의 사용,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 그리고 소리까지 모두 건물의 분위기가 된다, 디테일하게는 재료 간 조화, 재질, 햇빛 그리고 빛을 반사하고 조절하는 어둠까지 전부 분위기다. 나는 철도역을 아주 좋아하는데,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이어서다. 그렇게 사람들의 모습까지 담는 분위기가 있어야 좋은 건축이다.”

― 장소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장소(place)와 지역(local)을 좋아한다. 장소를 잘 보면 각각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 역사에서 내 작업의 영감을 받고 싶어 한다. 장소는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감성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도시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일상에, 그 건물에 현재의 사람들이 남아 있다. 대학에서 배우는 역사는 종이로 된 자료일 뿐이지만, 나에게 있어 역사는 물질적인 것에 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를 느끼고 이해하는 방식을 건축에 담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건물을 보는 사람이 다시 그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역사의 느낌(A Feeling of History)>이란 책에서 감동(emotion)이란 어떤 작용을 말하는 것인가?

“건축과 지역의 상호작용이다. 나는 단순히 장소를 지리적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다. 장소란 사람들의 공통 경험, 감정, 기억을 축적하고 나누는 곳이다. 내가 소년이었던 기억, 한 지방의 민요를 들었던 기억, 아름다웠던 토요일 아침의 기억, 이런 특별한 기억을 가진 건물을 나는 좋아한다. 건물은 이렇듯 지역과 상호작용, 그 지역만의 기억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런 건물에 들어갔을 때 감동할 것이다.”

― 감정의 기억, 좋은 감정을 어떻게 건축으로 현실화하나?

“단순하다. 그것은 자료나 학술조사를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항상 상상한다.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 경험을 상상한다. 어제 수원의 거리를 산책했다. 커피를 마시고 거닐면서 상상했다. 이 도시 어딘가에 어떤 건물을 지을 것인가를 상상했다. 감정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내버려 두면 이미지가 떠오른다. 머릿속 작은 영화관에 떠오르는 색깔과 소리가 있는 생생한 이미지가 건축이 되는 것이다.”

― 이미지에 소리와 색이 있다고 했는데, 이미지와 건축 재료는 어떻게 조화시키나?

“이미지의 근원은 자연이다. 그곳에 공간이 있는 것이다. 소리와 색도 자연스럽게 그곳에 있다. 파라다이스, 즉 공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이미 존재하는 건물, 이미 설치된 구조물을 보호하면서 그것들과 연결하는 건축물을 구상한다. 움직이는 도시에 큰 홀을 만든다고 보면 된다. 만약 불협화음이 있다면 그 구멍에 물을 붓는다.”

― 국내 천주교 성지인 경기도 화성 남양성모성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어떤 작업인지 소개해 달라.

“신부님이 예배당을 지어달라고 해서 남양에 왔다. 며칠 동안 그곳에서 잠을 자고 지내면서 전체 마을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작은 공간에 어떤 예배당을 지을지, 그 예배당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를 상상해봤다. 그러다 전통차를 마시며 지내는 성당을 생각하게 됐다. 신부님이 ‘차 성당(tea chapel)’이라 불러도 되겠느냐고 하셔서 흔쾌히 동의했다.”

― 라크마(LACMA, The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소개해달라.

 “바르셀로나와 로스앤젤레스 두 곳의 미술관 작업을 하고 있다. 라크마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마치 하나의 백과사전과 같은 작업이다. 의류와 기록물 등 2만 점 이상의 독특한 기증품, 특히 3000~4000년이 넘은 컬렉션을 어떻게 건축과 접목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예술사적이고 과학적인 건축물을 구상했다. 소장품들이 머무는 집과 같은 건물을 짓고 싶었다. 빛, 바닥 등 모든 것이 소장품의 아름다움을 보관하고 보호할 수 있는 집처럼 만들고 싶었다.”

― 좋은 건축이란?

“한 장소에 가면 한 시간 넘게 그림자와 빛 등을 보며 고민한다. 자연광은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빛이다. 빛의 움직임에 따라 어둠과 밝음이 존재한다. 좋은 건축은 유행이나 시류를 반영할 필요가 없다. 화려할 필요가 없다. 단순해 보여도 좋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 그것이 좋은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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