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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비, 흥선의 아들에게 대통을 잇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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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비, 흥선의 아들에게 대통을 잇게 하다
  • 글 유태희 | 그림 조석희
  • 승인 2019.02.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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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 이하응 : 리멤버 1863] <9>흥선이 연출한 어전회의

승정원(承政院) 정3품 당상관 도승지(都承旨)가 ‘상대점(上大漸)’ 세 글자를 받들고 나와 대조전 앞뜰에 호읍(號泣)하며 기다리는 문무백관들에게 두루 보였다. 때는 1863년 12월 8일 묘시였다. 철종의 사망이 공표되자 모두 망연자실한 가운데서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영의정 김좌근이 탑전(榻前)에 나아가 유교(遺敎)를 내려주길 청하자 좌승지가 “대보(大寶)를 대왕 대비전으로 들이라”고 써서 전교하였다. 잠시 후 내시는 편전 지붕 위로 올라가 왕이 입던 두루마기를 들고 북쪽을 향해 복(復)이라고 세 번 외치며 초혼(招魂)을 마쳤다.

초혼을 마치자 김좌근이 구여문 안으로 나아가 대보를 대왕 대비전에 바쳤다. 조대비는 곧 구전으로 좌승지를 통해 “금위대장은 궁성을 호위하라”고 하교했다. 좌승지가 대왕대비에게 여쭙기를 “거애(擧哀)하는 처소는 어디로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조대비가 승전색(承傳色)을 통해 하교하기를 “원상은 정원용으로 하고 거애하는 처소는 명정전으로 하라” 했다. 좌승지가 다시 여쭙기를 “궁성을 호위할 때 혹 사대문을 다 닫기도 하고 혹 그대로 두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조대비가 승전내시를 통해 하교하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좌승지가 또 여쭙기를 “그다음은 어찌하오리까 대왕대비 마마” 하니 조대비는 “어전회의를 곧 열 것이니 우승지 윤자승, 가주서 김성근, 사변가주서 김진모, 기사관 이면광・남일우, 영중추부사 정원용, 판중추부사 김흥근이 통관이 되어 모두 참석하게 하시오” 하였다.

곧이어 창덕궁 희정당에 영의정 김좌근, 좌의정 조두순, 우의정 이경재, 행지중추부사 홍재철, 행상호군 김보근·김학성, 판돈녕부사, 행상호군 홍종응, 행공조판서 김대근, 행의정부 우참찬 조득림, 행이조판서 홍열모, 행상호군 김병교, 행지돈녕부사 윤치정, 행병조판서 서대순, 행대호군 조휘림·이우·조석우·신석우·이근우·임백경·유장환·김병운, 형조판서 심의면, 예조판서 김병덕, 행대호군 신석희·송근수·김응균·임백수·이의익, 지중추부사 홍종서, 행호군 허계·임태영·이삼현, 호조참판 김보현, 대사헌 홍원섭, 행대사간 한긍인, 지평 안치묵, 정언 김시원, 부교리 이후선이 차례로 나아가 엎드렸다.

희정당에는 발이 내려져 있고 그 뒤로 조대비가 여관(女官) 여섯 명을 거느리고 앉아있다. 헌종의 외사촌 동생이요, 종실의 큰 어른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는 비록 미관말직인 승후관이지만 일찌감치 희정당에 들어와 있었다. 비록 김 씨 일문의 세력에 눌려있었지만, 오늘만큼은 풍양 조씨를 대표하는 척신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더구나 철종 승하에 대비해 조대비로부터 막중한 역할을 부여받지 않았던가.

삽화=태도(太道) 조석희

제일 먼저 원상(院相)을 맡은 정원용이 꿇어 엎드려 아뢴다.

“대왕대비 마마, 종묘사직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이옵니다. 어서 하교해 주시기 바라옵나이다.”

조대비가 즉답을 피하고 대신들의 의견을 구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노파이니 먼저 원로대신들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이번엔 좌의정 조두순이 아뢰었다.

“대왕대비 마마, 신들의 의향만으로는 결정하지 못할 일이옵니다. 마마의 심중에 계신 대로 하교해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잠시 말이 끊어져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발이 쳐 있기 망정이지 조대비는 얼굴에 홍조가 감도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대신들의 의향을 떠본 마당에 이제 자신이 누구를 점지하느냐만 남았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약간은 떨리는 음성으로 조대비가 말문을 열었다.

“대신들의 의향이 그러하니, 그럼 내 뜻을 말하겠소… 잠시라도 나라의 주인 자리를 비워둬서는 안 될 일…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을 익성군으로 봉해 끊어진 익종 대왕의 대통을 부활케 할 것이오.”

신료들이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감정의 동요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역시 이런 상황에서 신료들을 대표해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은 김좌근뿐이다.

“대왕대비 마마, 흥선군은 대행왕 전하의 육촌 백씨로서 그다지 먼 종친은 아니옵니다. 하오나… 그 집안이 워낙 영락하여 임금의 친가로는 부적당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조대비가 뜨끔했는지 들릴 듯 말 듯 탄식을 쏟아냈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막상 김좌근의 입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니 온몸에서 맥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대비가 입을 열기 전에 조카 조성하가 거들고 나섰다.

“영상합하! 가진 것이 없으니 집안이 영락하는 것은 정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집안이 영락하였다고 사람의 본질까지 더러운 바는 아닐 것입니다… 대행왕 전하께서도 본시 강화에서 나무꾼으로 미천하게 생활하셨다는 것을 대감께서도 모르시는 바 아닐 것입니다… 흥선군의 둘째 도령이 왕자의 그릇이 못 된다 하면 모르겠거니와 집안이 영락하여 안 된다 하시면… 더구나 영상합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줄 아옵니다.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검붉어진 얼굴로 조성하를 향해 눈을 부릅뜬 것은 김좌근의 아들 병기였다.

“여보시오! 이 자리가 어디라고 외람되게 입을 놀리는 게요? 대체 당신이 뭐란 말이오?”

“나도 대감네들과 마찬가지로 외척의 한 사람이오.”

“외척? 외척이라… 내 그대를 처음 보건만.”

“뭐라?”

“안 그렇소이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자가 나타나 대비마마와 재상들이 중차대한 의논을 하는 자리에 나타나서… 여긴 잡인이 섞일 자리가 아니니 냉큼 나가시오.”

그러나 조성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선이 말 한 대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더 굵직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나는 오늘, 아니 방금 대비마마의 분부를 받은 사람이오. 오늘 이 자리에서 한마디 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란 말이오.”

분위기가 금세 얼음장처럼 냉랭해졌다. 격론이 벌어질 찰나가 되자 대나무 발안에 몸을 감추고 있던 조대비가 나섰다.

“그만… 그만 하세요… 좌의정의 의향은 어떠시오?”

흥선의 계획대로 마지막 승부수가 던져졌다. 조두순도 짐짓 이 순간을 기다렸다. 비록 조정에서 함께 국사를 논하였지만 온당치 않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청나라처럼 양이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국가의 기운을 새롭게 해야 했다. 권력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자가 없다면 대왕대비의 분부대로 하심이 옳은 줄 아뢰옵니다.”

조두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대비가 선포했다.

“신료들은 잘 들으시오. 다시 말하거니와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을 익성군으로 봉해 절사(絕嗣)한 익종 대왕의 대통을 부활하게 할 것이오… 영의정 김좌근, 도승지 민치상, 기사관 박해철과 김병익은 교지를 받들어 거행토록 하시오.”

이런 사태는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워낙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안동김씨의 영수 김좌근도 꼼짝없이 당한 꼴이 됐다. 흥선의 절치부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조두순이 제일 먼저 대왕대비에게 예를 올리자 문무백관이 모두 엎드려 동의를 표시했다. 흥선이 마음으로 준비해 온 개혁을 펼칠 절호의 기회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궁에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그 시간, 흥선은 동리정사에 있었다. 신재효의 방을 빌려 진채선과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작은 체구지만 당차기는 누구 못지않은 진채선이 흥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대감 어른, 오늘은 아무 일도 없으신 게지요?”

“별걱정이구나, 일하지 않을 때는 사랑을 해야 남자 아니더냐”

“그럼 소녀와 사랑하고 계신 겝니까.”

흥선은 얼굴을 붉힌 채 살며시 눈을 흘기는 채선이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사랑이 별거라더냐. 한가한 때 책을 가까이하거나 여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대장부라 할 수 없는 법이다. 아니 그러하냐?”

“소인이 어찌 알겠습니까?”

“어허, 나이가 벌써 열아홉인데 어찌 세상의 조화를 모른단 말이냐.”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흥선은 헛기침하며 밖을 살폈다.

“밖에 누구냐?”

“예, 저올시다.”

박상의였다.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흥선은 부르지도 않은 박상의에게 밀회를 들킨 것만 같아 속이 불편하다.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다름 아니옵고 오경석 나리가 잠저(潛邸)에 대감 어른을 찾아오셨기에…”

흥선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니 이 사람아, 그러면 그렇다고 진즉 이야기할 일이지…”

문이 열리고 오경석이 들어오자 흥선이 덥석 손을 잡으며 너스레를 떤다.

“어서 오시오. 그렇지 않아도 저녁에 만날 생각이었소만…”

“어이구, 이놈의 성질이 못되어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요.”

오경석은 누구보다 흥선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다. 불과 몇 달 전에도 흥선과 마주 앉아 종묘사직을 걱정했다. 겉으로 표현은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큰 뜻은 서로 짐작하던 바가 있었다. 북경에 머물면서도 국내정치 상황을 주시했고 박규수, 유대치 등과 조선의 앞날을 염려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허무하게 무너져 가는 청나라를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급히 귀국해 야밤에 몰래 흥선을 찾아갔던 까닭이다. 담판 지을 요량이었다. 그때 흥선은 파락호의 가면을 벗고 의기 넘치는 인물임을 확인시켜줬다. 오경석의 진정성을 봤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업적도 처음엔 꿈에서 시작했다’는 흥선의 말을 오경석은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흥선의 둘째 아들이 왕좌에 오르는 대로 새 정치를 펼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런데도 아무 언질이 없자 심중을 알아보려 흥선을 급히 찾아온 것이다. 성질 급한 오경석이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대감 어른, 아직 기초를 다잡지 않으셨습니까?”

“기초가 다 뭡니까. 안채와 사랑채도 그렇거니와 별당도 어디에 앉힐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시간이 촉박한데 기운을 내시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도 머리가 지끈거려 오늘 창이나 들으면서 쉬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이고, 이런 제가 눈치가 없습니다… 대감 어른 송구하옵니다.”

“됐습니다… 한데 공사가 제일 어려운 곳이 어딘 줄 아시오?”

“짐작은 갑니다만… 혹 대비전이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아닙니까?”

“그렇소. 거기부터 묘수를 둬야 나머지가 풀릴 텐데… 구중궁궐에 갇혀 지내셨으니 물리가 터질 리 있겠습니까… 잘못해서 악수라도 두게 되면 쪽박이 깨질까, 그게 걱정이지요.”

“그렇다면 내각이 안정될 때까지 먼저 김좌근을 빼시고 나머지 일당들만 외직으로 내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흥선은 오경석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손바닥으로 술상을 내리치면서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그렇소. 그렇소이다. 그게 묘수였구려… 어찌 한 번에 만사가 풀리겠소.”

두 사람은 두 손을 마주 잡고 한참을 웃어댔고 옆에 있던 신재효와 박상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오경석은 내심 새로운 내각에 개화파의 등용을 바라고 있었다. 1850년경부터 오경석은 개화파와 교유하며 조선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선 후기 실학을 계승하고 중국에서 사 온 신서 등을 읽으며 개화사상을 형성해 나갔는데, 오경석이 그 선구자 중 하나였다. 신학문에 눈을 뜬 그는 북경에서 돌아올 때마다 해국도지나 박물신편 등 신서 수백 권과 서양문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오경석은 북학파 중 가장 진보적인 박제가를 특히 흠모했다. 박제가는 청나라를 내왕하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현실을 누구보다 앞서 깨달았다. 박제가의 영향도 있었지만, 오경석은 청나라가 쉽게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대국도 순식간에 몰락하는 판에 하물며 물산이 적은 조선의 운명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국내정치는 부패했고 사회와 경제는 낙후성을 면할 길이 없었다. 바람 앞에 등불 신세인 조국의 앞날이 안타깝기만 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대 혁신이 필요했다. 그가 파락호로 손가락질을 받는 종친부 당상 흥선을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처음엔 오경석도 그를 비웃었고 타락한 선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흥선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그의 맑은 눈빛과 취중 진담에서 남다른 기개와 힘을 읽었다. 그에게 흥선은 진흙 속에 감춰진 진주 같았다. 아니 술지게미 속 보석이었다.
 
이제 목숨을 걸고 조선을 개혁하기로 한 이상 새 내각 개편 방안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오경석은 인재 등용만이 개혁의 지름길이라고 봤다. 신분제도를 혁파해 유능한 인재를 관직에 고루 등용하고 혁신적 정치세력을 키워야 한다고 믿었다. 새 정치는 일본처럼 서양의 선진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산업을 발전시켜 조선을 근대국가로 일신하는 것이었다. 부국강병만이 살길이란 믿음은 당시 개화파의 신앙이었다.

운현궁 안채 노락당,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둘째 아들 명복이 임금의 신분으로 궁궐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식사다. 민씨 부인과 장남 재면은 연신 싱글벙글거리며 어린 명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흥선과 명복은 안색이 불편해 보인다. 흥선은 이제 수렴청정하며 명실공히 조선 최고 실세가 된 조대비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하느라 심란하기만 하다. 명복 또한 가족과 헤어져 임금으로 살아갈 날이 두렵기만 했다. 흥선이 오랜만의 가족 식사에 소홀한 것이 미안했던지 얼른 표정을 바꾸며 말한다.

“부인, 달래를 넣은 된장국이 참 맛납니다.”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많이 드세요. 재면이도 많이 먹거라.”

민씨 부인은 성격 좋고 활달하며 대장부다운 면모가 있는 큰아들 재면이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예에, 어머님. 저도 맛있습니다.”

흥선도 얼른 둘째 아들 명복을 챙긴다.

“명복아, 많이 먹거라. 이제 우리가 이렇게 한 상에서 밥 먹기도 어려울 테니…”

고개를 반쯤 숙이고 조용조용 밥을 먹던 명복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한다.

“예, 아버님.”

“이제 너는 한 나라의 군왕이다. 몸과 마음을 바로 하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성군이 되어야 하느니. 알겠느냐?”

명복이 심각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는데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아버님, 저는 두렵습니다… 아니 무섭습니다.”

민씨 부인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명복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고, 우리 아들 명복이가 두렵다니… 이게 무슨 모자란 소리란 말입니까… 여기 아버님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뒤를 돌봐줄 것인데 무에 걱정이란 말이오. 형도 잠저에 있을 테니 무료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을게요… 걱정이랑 내려놓으시오, 우리 예쁜 상감.”

“어머님, 벌써 상감이라니요. 어찌 그런 망발을… 아직 대관도 치르지 않았사옵니다.”

“뭣이 망발이란 말이냐? 하기야… 언제나 품 안의 아들 아닙니까. 아이고, 내 새끼.”

모자의 정이 애틋했던지 흥선이 명복을 위로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느니… 명복이 뒤엔 형도 있고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가족보다 든든한 게 또 어디에 있겠느냐.”

“예, 아버님. 궁에 가서도 부모님, 형님… 그리고 이 집을 잊지 못할 겁니다.”

동생을 귀히 여기고 아껴온 재면도 동생에게 위로를 건넨다.

“명복아, 이제 동생이라 부를 수도 없겠구나. 떠나기 전에 동생 이름이나 실컷 불러보고 싶구나. 우리 명복이…”

형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오히려 명복이 활기차게 말한다.

“형님이 보고 싶으면 담이라도 넘어 달려올게요.”

“아무렴, 그래야지. 이 형이 담 아래서 받아줄 테니…”

재면의 이야기에 온 가족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 그럴 바엔 차라리 이 어미가 치마폭으로 받아주마.”

“하하, 어머님. 꼭 잘 받아주셔야 합니다.”

어린 명복의 농에 흥선과 민씨 부인, 재면이 다시 한번 자지러지게 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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