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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의 삶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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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의 삶과 사랑
  • 이충건 기자
  • 승인 2019.01.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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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펴냄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펴냄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의 생애와 업적, 사랑과 비애를 그린 소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곽미경 지음)이 나왔다.

<임원경제지> 등 풍석 서유구 선생이 남긴 저술의 번역과 출판, 기념관 건립 등 선양 사업을 하고 있는 풍석문화재단 부설 출판사 자연경실이 펴냈다. 빙허각 이씨는 서유구 선생의 형수다.

빙허각은 1759년 평양감사를 지낸 전주 이씨 집안 이창수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기가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정도였고, 젖니를 갈 무렵에는 자신의 이가 다른 아이보다 늦게 갈린다고 스스로 이빨을 뽑을 정도로 고집이 세고 당찼다. 아버지 이창수는 당대의 뛰어난 학자로, 슬기로운 딸에게 어려서부터 다양한 학문을 가르쳤다.

빙허각(憑虛閣)은 열한 살 때 스스로 정한 호다. 댈 빙(憑), 허공 허(憑), 집 각(憑)으로 직역하면 ‘허공에 기대선 여자’라는 뜻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개척하겠다는 의미다.

빙허각은 열다섯 되던 해 당대 최고의 학자 집안이었던 달성 서씨 집안의 서유본과 혼인한다. 서유본의 할아버지이자 규장각의 창시자이고 세손 정조의 스승이었던 조선의 대학자 서명응은 손녀 며느리의 학문적 성취에 크게 탄복했다. 서유본, 서유규, 서유긍 등 손자들과 함께 손자며느리를 함께 아들 서형수와 학문적 제자인 유금의 지도를 받게 한 까닭이다.

빙허각은 훗날 <임원경제지>를 남긴 대학자 서유구를 포함해 자신의 남편인 서유본, 서유긍 등 또래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빙허각은 한글로 된 최초의 여성백과사전 '규합총서'를 남겼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빙허각이 살던 시대는 세계적으로 백과사전 편찬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통치자를 위한 학문에서 일상생활을 위한 보편의 학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보인 서씨 집안과 여성으로서 학문적 절정에 도달했던 빙허각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백성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백성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의 지식, 즉 백과사전의 편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 결과 빙허각은 한글로 된 최초의 여성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집필한다. <규합총서>는 식생활, 의생활, 농사, 태교와 아기 기르는 법, 거처를 정갈하게 하는 법 등과 같은 그 당시 여성의 책임으로 된 생활 전반을 다루고 있다. <규합총서>는 무엇보다도 한글로 쓰여 한문을 잘 모르던 여성을 주 독자층으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규합총서> 외에도 빙허각은 <청규박물지>와 <빙허각시선> 등 문학적 성취도 남겼다.

빙허각의 업적도 놀랍지만, 빙허각의 생애는 더 놀랍고 뜨겁다. 빙허각과 지우(知友)인 남편 서유본의 사랑은 그 어떤 러브스토리에도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절하고 뜨겁다. 빙허각은 직접 길쌈을 해 남편의 옷을 만들고 백화주를 담가 남편과 시를 나눴다. 남편 서유본은 평생에 걸쳐 벼슬을 포기하고 빙허각의 학문적 성취를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빙허각의 학문적 성취는 불행하게도 자식들의 연이은 죽음 속에서 이뤄진다.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견디지 못한 빙허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때마다 그녀를 살려낸 것은 남편 서유본의 사랑이다.

빙허각의 마지막은 그 어떤 러브스토리보다 비극적이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빙허각은 한날한시에 묻히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곡기를 끊는다. 남편을 기리는 시를 남기고 그녀는 절명했다. 빙허각의 죽음은 지우에 대한 절대적 의리의 표현이었다.

빙허각 이씨에 대한 기록은 시동생이었던 서유본이 빙허각의 죽음 이후 남긴 묘지명 ‘수씨단인이씨묘지명(嫂氏端人李氏墓誌銘)’에 남아 있다.

소설에는 서얼 출신 실학자 유금(1741~1788), 비운의 길을 걸은 천재 과학자 김영(1749~1817), 빙허각의 조카이자 골동품에 미쳤던 이조묵(1792~1840)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다양한 씨줄과 날줄로 빙허각의 운명과 교차하여 등장한다.

작가 곽미경은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소장이다. <조선셰프 서유구>를 통해 역사소설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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