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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권자’ 김좌근을 향한 들끓는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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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권자’ 김좌근을 향한 들끓는 민심
  • 글 유태희·그림 조석희
  • 승인 2019.01.0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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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 이하응 : 리멤버 1863] <6>동맹의 조짐
삽화=太道 조석희

1861년 4월 29일. 경상도우병사로 부임한 백낙신의 학정으로 백성들이 들고 일어섰다. 백성은 굶주리든 말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거액의 세전(稅錢)을 강제 징수하자 견디지 못한 백성이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심지어는 6만 냥의 돈을 가호에 배정해 죽은 이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는 백골징포의 만행을 저질렀다. 백낙신의 패악질이 불씨가 된 민초들의 무력항쟁은 몰락한 양반 유계춘이 주도했다.

이른 아침 궁궐 안 집무실에 모인 신료들이 웅성거린다. 김좌근의 지시로 대책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곧 김좌근이 들어와 입을 앙다문 채 눈을 지그시 감는다. 모두 그의 입을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다. 김좌근이 신료들에게 묻는다.

“지금 상황이 어떠합니까?”

이조판서가 말을 받았다.

“진주말입니까?”

김좌근이 불같이 화를 낸다.

“지금 그게 아니면 뭐란 말이오.”

동부승지가 상황을 알렸다.

“진주에서 올라온 장계에 의하면 불한당의 수가 수만에 이른다 합니다.”

김좌근이 소리를 질렀다.

“병조판서는 무엇을 하는 게요.”

“영상대감께 병조판서 아룁니다. 각 군영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의하면 역적들이 사발통문을 전국에 돌려 탐학한 관리라고 소문난 자들을 처단하거나 그들과 결탁한 부자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있다 합니다.”

영상에게 혼이 났던 이조판서가 만회를 위해 끼어들었다.

“전국적으로 피해를 본 관청이 오십 군데가 넘습니다. 부정했다는 향리들을 닥치는 대로 붙잡아 죽은 이가 4명이오, 다친 이가 수십 명이라 하더이다. 부호들을 습격해 23개 면에 걸쳐 126호를 파괴하며 재물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김좌근이 되물었다.

“그래서요?”

“지금 당장 병조에서 진압군을 편성해 싹 쓸어버려야지요.”

그러자 병조판서가 단호하게 막아선다.

“소요 지역이 너무 넓으니 먼저 일어났던 진주부터 진압해야 할 것입니다. 군사는 쪼개지면 힘을 잃는 법 아니겠습니까.”

김좌근은 답답했다. 누구 하나 자기 일같이 나서 일을 도맡으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자리만 하나씩 차고앉았지 자릿값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동부승지가 다급하게 아뢴다.

“영상대감,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빨리 진압하지 않으면 전국팔도로 들불처럼 퍼질 것입니다.”

김좌근이 일동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병조판서에게 물었다.

“병조판서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계시오?”

“제 생각으로는 이조에서 백낙신같이 탐학한 자를 우병사로 임명한 것이 문제의 발단 아니겠습니까.”

이조판서가 즉시 반박했다.

“병조판서는 지금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오. 거기서 왜 이조를 들먹인단 말이오.”

“아니,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 작자가 부정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동부승지가 말리고 나섰다.

“병조판서의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다.”

김좌근이 큰기침을 하며 일갈한다.

“지금 이 자리는 사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오. 가만히 지켜보니 밥값 하는 신료가 하나도 없소이다. 어찌 이러고도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라 하겠소. 그래 누가 적임을 맡아야겠소?”

신료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어버린다.

김좌근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을 잇는다.

“부호군 박규수를 진주안핵사(晋州按覈使)로 임명하니 사태를 수습하시오. 병조와 이조를 비롯해 육조는 적절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우세요. 주상전하께는 내가 차후에 윤허를 받겠소이다.”

일동은 기다렸다는 듯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예.”

박규수는 3개월에 걸쳐 진주민란을 수습했다. 사후 처리는 농민군 효수 10명, 귀양 20명, 곤장 42명, 미결 15명, 관리들은 귀양 8명, 곤장 5명, 파직 4명, 미결 5명이었다.

이어 김좌근은 철종에게 주청해 비변사에 삼정이정청을 설치하도록 했다. 삼정 개혁을 위한 기구였다. 하지만 이청청은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의 폐해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철종은 인정전에서 직접 삼정책문(三政策問)을 내렸다. 삼정을 유지한다는 대전제 아래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취지였다. 전국에서 올라온 상소문이 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보내졌다. 이를 모아 완성된 ‘삼정이정절목’이 임금에게 보고되자마자 이정청은 폐지됐다.

노정승 김좌근이 아들 병기의 흥선 암살 실패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 바로 이즈음이다. 무엇인가 꼬이는 듯한 육감이다. 측근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리고는 아들 병기를 불러들였다.

사랑방으로 들어온 김병기가 예를 올린다.

“아버님 부르셨습니까.”

김좌근은 아들을 볼 때마다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언사사가 못마땅하다.

“아버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김좌근이 불같이 화를 내며 묻는다.

“너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더냐?”

김병기는 아비가 초출해 죄지은 모양으로 고개는 숙이고 있지만, 대체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아니 임금도 쥐락펴락하는 실력자가 무엇이 모자라 부쩍 안달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 바보 같은 종친 흥선을 염려하다니.

아들에게는 유독 엄한 김좌근이 병기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네 놈은 지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고는 있는 게냐.”

“무슨 말씀이신지…”

“너만 보면 울렁증이 생기고 화병이 생길 지경이다.”

“아버님…”

고개를 숙이고 어쩔 줄 모르는 아들에게 혀를 차대며 힐난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졌다. 한참을 그러더니 꿰진 심사가 좀 누그러진 듯 입을 연다.

“세상이 온통 미쳐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를 마당에 네놈은 어찌 주색잡기에 혈안이 된 게냐. 시키지도 않은 일을, 아니 이왕지사 일을 저질렀으면 제대로 끝장을 봐야 할 것 아니냐. 곧 패가망신할 일만 남았구나, 이놈아.”

김병기가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변명을 해댄다.

“아버님,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 끝장을 볼 것입니다.”

“지금 주상께서는 옥체가 강녕하지 않거늘… 몇 남지 않은 종친들을 잘 단속하라고 이르지 않았더냐…”

“아버님 지금도 기찰을 풀어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아, 백 번을 쳐다보면 뭐하누.”

김병기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한들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게 빤했다. 그동안 큰 실수 한번 없이 시키는 일은 모두 잘 해왔는데 왜 우인(愚人) 취급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가 치밀었다.

“자네가 벌인 일이니 하루빨리 매듭짓게. 궁궐에는 금위대장과 포도대장에게 일러 각 전에 드나드는 자들을 엄중히 감시하도록 해야 하네. 대비전은 특별히 더 엄밀히 살피시게.”

“예. 잘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일국의 영의정이 꼴사납게 토영삼굴(兎營三窟)을 팔 수는 없지 않겠느냐.”

흥선이 종친부에서 일을 마치고 안국동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저 멀리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는지 사람들이 모여 웅성댄다. 가까이 가보니 웬 젊은 사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 여자 하나가 남자에게 물을 떠다 먹이고 팔다리를 주무른다. 남자의 정신이 돌아오지 않자 여자가 울부짖는다. 행인들이 하나둘 달려들어 돕기 시작한다.

“어디서 뭘 잘 못 먹은 게요. 잔칫집에 갔었나. 말 좀 해봐요…”

여자가 울며불며 다리를 주무른다.

“아이고 이를 어째… 아이고…”

한 남자 행인이 외친다.

“소금물을 좀 먹여봐요. 다 토해버리게.”

흥선이 끼어든다.

“저리들 좀 비켜보게.”

그리고는 저고리 주머니에서 작은 침통을 꺼내 든다. 궁사가 날래게 활을 쏘듯 남자의 사관(四關)에 침을 놓고 관자놀이에 다시 몇 번 찌르자 남자가 ‘피잇’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뜬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살아났다고 환호성을 지른다. 흥선이 몸을 추스르며 남자의 몸을 주무르던 여자에게 묻는다.

“자초지종이 어찌 된 것이냐.”

여자가 하는 말이 이랬다.

이들은 동소문밖에 사는 농민들인데 몇 년째 가뭄이 들어 끼니 거르기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런데 배불리 먹여준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 몇이 옥수동 굿터에 갔다. 옥수동 나루에 도달하니 몇 가마니나 되는 하얀 쌀밥을 강물에 뿌리면서 김좌근 대감의 무운 장수를 빌고 있었다. 이들은 허겁지겁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밥을 건져 먹었다. 일행 중 한 남자가 돌아오는 길에 토사곽란을 일으키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행인 하나가 말한다.

“그랬구먼. 영상대감 첩실이라는 나주 양 씨인가 하는 그 기생 말이오.”

“아니 우리뿐 아니고 수백 명이 같이 건져 먹었는데 어째 이 사람만…”

“다 제 운이지 뭘… 나리님들은 수천 냥씩 뇌물 잡숴도 끄떡없이 사는 거 보면 몰러.”

듣고 있던 흥선도 덩달아 거들었다.

“저런 쳐죽일 놈들…”

이심전심이랄까 구경꾼 모두가 김좌근과 나주 양 씨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사람도 못 먹는 흰쌀밥을 물고기를 먹이다니 천벌을 받아 싸다고 난리들이다.

흥선이 헛기침을 하며 거들었던 여자에게 처방을 일러주며 엽전 몇 닢을 건넨다.

“탱자 말린 것하고 민들레 뿌리를 달여서 먹이시게. 그리고 배를 따뜻하게 해야 하네.”

무리를 빠져나오는 흥선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마치 큰 난리를 겪은 사람 같았다.

철종은 갈수록 병약함이 더하여 쾌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흥선군 이하응은 암암리에 신정왕후 조 씨와 연통했다. 그동안 포섭한 궁중 환관과 궁녀들로부터 얻어낸 정보를 활용해 조대비에게 비밀 서찰을 보내곤 했다. 이미 아들을 양자로 보낼 것까지 약속한 관계였다. 사돈인 이호준이 흥선군과 조대비의 밀통을 도왔고, 조대비의 조카인 조성하와 조영하도 가세했다.

흥선이 사랑채에서 아침을 맞는다. 요즈음 흥선은 부인 민 씨와 시큰둥하다. 기생 진채선 때문이다. 흥선은 민 씨가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자신을 쳐다보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 기색이다. 마당 섬 뜰에 나와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청지기 이연식이 나타나 아뢰는 소리에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으로 돌아본다.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흥선이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이연식이 슬그머니 다가와 귓속말로 뭐라 속삭이자 흥선이 반색을 하며 말한다.

“어서 뫼시거라.”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와 역관 오경석이다. 흥선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손님들을 반긴다.

“어서들 오시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젊고 전도양양한 조성하가 보기 좋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린다.

“종친 어른 안녕하셨습니까? 젊은 것이 일찍 찾아봬야 했는데 대비마마 챙겨드리는 일이 여간… 어찌 됐든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흥선이 미소 띤 얼굴로 말한다.

“암요, 암요, 외로우신 조대비 마마를 잘 챙기셔야죠. 나야 뭐 무탈하게 잘 있었습니다. 자자, 안으로 들어 가십시다.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아이고, 이거 역매 선생도 같이 오셨구려. 안녕하셨지요. 어서 드십시다.”

오경석도 안부를 여쭌다.

“흥선군 나리, 별고 없으셨는지요? 대교께서 아침 일찍 오셔서 이렇게 동행하게 됐습니다.”

“아하, 그러셨군요.”

집주인인 흥선이 앞장서자 조성하와 오경석이 뒤를 따른다.

세 사람은 노안당에 들어와서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비마마께서는 잘 계신지요?”

조성하도 계면쩍게 답한다.

“예, 요즘 통 입맛이 없으셔서… 챙겨드리긴 합니다만 영 잡숫지를 못하십니다.”

“참 고맙소이다. 이렇게 어른들을 잘 뫼시니 대비마마의 홍복이십니다, 그려.”

“부끄럽습니다.”

“한데, 오늘은 어쩐 일이십니까?”

조성하가 몸을 낮추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예, 다름 아니라 대비마마님께서 좀 뵈었으면 하십니다.”

“아하, 그러셨습니까. 이리 황공할 데가 있나… 세월이 그러하고, 사안이 그러하니 서찰만 가지고 믿기는 어려우시겠지요.”

조성하는 아무 대꾸 없이 흥선의 얼굴만 바라본다.

잠시 침묵하던 흥선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궁궐 각 전에 출입하는 게 어려워졌다지요… 가끔 종친부에서 전하께 결재 들어가는 것도 일일이 따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러니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야겠지요.”

“거참…”

흥선은 적당한 구실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조성하가 조대비의 입궐 요청을 가져오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흥선답지 못한 처세였다. 그러자 오경석이 흥선에게 한마디 거든다.

“변장해서라도 입궐하셔야 합니다.”

“흠, 변장이라…”

“묘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음, 묘수라…”

다음 날 아침 창덕궁 단봉문 앞에 기이한 차림의 사내가 나타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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