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걸으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걷는다
상태바
걸으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걷는다
  • 이규식
  • 승인 2018.11.26 08:5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14>‘사색산책’ 어떻게 할까

#.선 채로 글을 쓴 빅토르 위고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매일 오전 글을 썼다는 프랑스 시인,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일화는 유명하다.

184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공화국을 전복, 제2제정을 선포하고 나폴레옹 3세로 황제에 오르자 빅토르 위고는 곧바로 망명을 떠났다. 벨기에를 거쳐 영국령 저지, 건지 섬에서 무려 18년을 보내는 동안 작가, 사상가로서 위고의 명성은 굳건해진다.

특히 건지 섬에 자리 잡고 집을 장만한 뒤 유리창 밖으로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조국 프랑스를 그리며 책상 앞에 서서 집필한 ‘레 미제라블’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이 위고문학 연보를 대문자로 장식한다.

망명생활의 불편함, 배신자 나폴레옹 3세를 향한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기약 없는 귀국에 대한 참담한 심정 속에서 꼿꼿이, 더러는 비스듬히 책상에 몸을 기대고 써내려간 행간에서 우리는 집념에 찬 한 인간의 의식과 감성이 뿜어내는 광활한 서사시, 심오한 서정의 교향곡을 듣는다.

망명생활 중의 빅토르 위고. 건지 섬에서 멀리 프랑스를 바라보며 '레 미제라블' 등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였다.

#.직립(直立)의 인간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운 채로 공부나 생각, 집필을 할 경우와 서 있는 상태로 행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고 잘 받아들여져 기억에 남을까.

얼핏 누워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반대라고 한다. 공부나 연구, 글쓰기는 선 채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는데 학교나 기업에서 책상과 의자를 쓰지 않고 수업하거나 회의를 하는 경우를 본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가져오는 효과는 의외로 큰가 보다. 걸어가면서 암기한 내용이 누운 상태에서 외운 것보다 더욱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최근 ‘걸어야 뇌가 산다’라는 슬로건으로 걷기만 잘해도 20년은 더 산다고 강조하는 신성대 선생(도서출판 동문선 대표)이 펴낸 ‘산책의 힘’이라는 흥미로운 책에서 새삼 ‘산책의 힘’을 눈여겨 보았다.

오래전부터 건강을 위한 걷기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제대로 걷는 법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 이런 유형의 걷기는 ‘건강산책’으로 신성대 선생이 힘주어 이야기하는 ‘사색산책’과는 구별된다. 재미있게 읽고나서 곧바로 실천에 옮기려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색산책’의 몇 가지 유의점을 정리해 본다.
 
 

'산책의 힘' 신성대 지음 | 동문선 펴냄

#.사색산책은 유용하다

중차대한 결심이 필요할 때 산책을 하거나 정처 없이 걷다보면 잡생각이 걷혀지고 핵심적인 골자만 남아 최종결단에 도움을 얻고 그 결심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아이디어도 떠오르므로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보약이라고 권면한다.

우선 사색산책은 혼자 걸어야 한다. 관심의 분산을 방지하고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을뿐더러 방해받지 않으려면 결국 독보행(獨步行)이 최선일 것이다.

사색을 위한 산책이므로 인적이 드물고 평평한 바닥, 위험하지 않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코스, 볼거리가 별로 없는 길, 적당히 구부러지고 시야가 트이지 않고 나무들로 가려진 오솔길 같은 코스가 생각을 집중시키는데 좋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평소에 다니던 길을 고집하여 가급 매일 같은 코스를 걸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자주 부딪치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조용한 길이 나을 것이다. 일정한 보폭과 속도로 걸으면 내면의 균형이 잘 잡히는데 보다 구체적으로는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면서 자기 발 앞 3-4m 정도에 시선을 두고 걸음을 옮기기를 권장한다.

물론 도심에서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출퇴근 때 가능하면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 도보가 좋을 것이고 넉넉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의 주제를 잡아 일정한 걸음으로 또박또박 걷다보면 이윽고 생각이 정리되고 발상과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지품 없이 맨손으로 걷는 것이 필요하다. 휴대전화도 들지 말고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두도록 당부한다. 건강산책이 아니므로 만보계 앱이 필요하지 않은 까닭이다. 복장은 편하면서 크게 변화를 주지 말고 익숙한 차림이 좋다. 요컨대 모든 것을 무심(無心)코드에 맞추어 걸어야 사색산책의 목적에 접근하게 된다. 다만 간편한 메모도구는 준비해야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기록한다.

건강산책이라면 조금 빠르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유산소 운동을 권하지만 사색산책은 가급적 느리게, 걸음 자체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속도로 걷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멈추어 그 생각을 좇아가거나 기록해 둔다.

저자는 이 사색산책의 시간을 대략 30분 정도로 걷는다고 본인의 경험을 피력하는데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자신의 일정에 따른 시간에 걸어야겠지만 가능하면 하루 가운데 가장 한가한 시간 가급적 오전, 햇살이 따가워 지기 전이 좋다고 한다. 오전업무에 쫓겨 겨를이 없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오전에는 심신의 상태가 오후에 비하여 쾌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퇴근 후 캄캄한 한밤중의 산책은 어둠에 대해 온 신경,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야 하고 도심이라면 자동차나 가로등 불빛이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여 자칫 깊은 사색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까닭이다. 사색산책의 여러 요건 중 현실적으로 시간선택, 이 대목을 따르기 가장 어려울 듯 하다. 오전시간 온갖 바쁜 업무 스케줄과 스트레스가 몰아치는 가운데 사색산책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인데 결국 자신의 여건에 환경에 맞게 적절한 적응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색산책에 길들여지면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동네 골목길이나 집 주변, 실내에서도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책상에서 사무를 보거나 글을 쓸 경우 실내에서 뒷짐을 진 채 산책하듯이 왔다 갔다 하면서 또박또박 걷기를 권유한다. 실내 업무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간헐적인 산책이 잘 단련될 경우 야외걷기에서 보다 더 효과적이어서 신선한 아이디어, 또는 유용한 의문이 이어져 나오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장-자크 루소. 기나긴 도피생활 에서 습득한 식물관련 지식과 안목으로 걸출한 식물학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길 위의 철학자 루소, 걸으며 사색하다

이미 이런 모양새의 산책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앞의 장황한 설명이 무덤덤한 사족이 될 수 있겠으나 이미 18세기 프랑스 사상가이자 작가 장-자크 루소의 경우를 떠올리며 ‘산책의 힘’에 대한 예증으로 삼을 만하다.

물론 루소의 경우 생애 많은 기간을 도피생활로 인하여 사색산책처럼 느긋한 속도로 걸을 수는 없었겠지만 18세기 당시 상황과 신산한 삶의 족적을 감안해볼 때 어느 측면 사색산책의 속성과 효과를 대입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그의 방대하고 다양한 저술과 사상의 단초는 결국 걸으면서 떠올린 생각과 의식의 흐름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애 어느 기간 귀족의 보호 속에 안정된 가운데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지만 루소의 삶에서 의식과 주장이 싹트고 숙성되는 현장은 많은 부분 방랑의 길, 발걸음에서였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주장이 프랑스 혁명 이전 아직 완고한 왕정체제 치하에서는 대단히 위험하고 혹세무민하는 사상을 전파한다는 의심이 들게 하였고 그로 인한 고달픈 방랑의 길에서 루소는 본의 아니게 철학자, 사상가, 저술가 이외에 ‘식물학자’의 칭호도 얻을 수 있었다.

사색산책에서 원론적으로 제시하는 걷기방법과는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 기나긴 생애를 시종하여 추방과 도피, 수배와 운둔의 운명 속에 지속된 걸음걸음, 눈에 비친 나무와 풀, 꽃과 온갖 자연물들이 루소의 호기심, 탐구의식과 결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류가 이룩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집대성하여 ‘백과전서’를 간행했던 18세기 후반기 프랑스 계몽주의 백과전서파의 일원으로서 그의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동시대는 물론 시, 공을 초월하여 다른 작가, 예술가에 비하여 유난히 많이 걸을 수 밖에 없었던 루소의 삶, 거기서 형성된 사상과 담론은 세계문학사, 사상사에 그가 남긴 발걸음만큼이나 독특하고 선구적인 자취로 기록되고 있다.

----------------------------------------------------------------------

필자 이규식은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남대 명예교수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엄형택 2018-11-26 13:21:05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

혼자서.. 걷는다는 생각도 잊고.. 자연스럽게 걸음을 떼다보면 여러가지 상념에 사로잡히게 되며..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는 경우 목에 걸려있는 녹음기로 즉석 녹음을 하는 것이 나와 다르네...

요즈음은 틈날 때마다 제주 올레 코스를 차례로 완주하고 있네...

항상 좋은 글을 올려주어 고맙고 감사하네...

조만간 보세...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