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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시인들' 사계절 문학관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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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시인들' 사계절 문학관 기행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8.10.17 10:0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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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성장 시인(서예가)
김성장 시인.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시인이 시인이 되기 전, 그들이 머무른 삶의 풍경으로 떠난 사람이 있다. 시인이자 서예가인 김성장(59) 작가다.

김 시인은 최근 책 <시로 만든 집 14채>를 펴냈다. 서울 종로 윤동주 문학관부터 통영 청마 유치환 문학관, 금강을 끼고 있는 신동엽 문학관, 실개천이 흐르는 정지용 시인의 집까지. 시인 열네 명의 발자취를 따라간 그의 2년 여정이 담겼다.

단순 문학관 기행을 넘어 시인의 삶을 통해 사유하고, 시인이 살아간 시대 정신에 대한 고찰도 풀어냈다. 장소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공간감까지 시인과 연결지었다.  

먹 향기 은은한 세종글쓰기연구소에서 만난 김성장 시인. 책 출판을 기념해 그가 읽고 쓰는 일을 넘어 문학관으로 떠나게 된 이유를 들어봤다.

옥천 출신 정지용 시인으로부터

최근 김성장 시인이 출간한 문학관 기행에세이 <시로 만든 집 14채> 표지.

시인들의 문학관이나 생가는 각각의 운명만큼이나 다양하게 흩어져 있다. 출생지에 문학관을 건립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학창시절 또는 오랜 습작기를 지낸 곳이 상징성을 갖기도 한다.

그의 문학관 기행은 시인 정지용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랜 시간 옥천에서 교사로 근무해 온 그는 정지용 문학관 해설사로 불린다. 정지용 시인을 주제로 한 시 해설서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이라는 책도 냈다. 정 시인의 모교 죽향초등학교 시비(詩碑)도 그의 붓글씨다.

“정지용 시인은 이 책의 출발점이 된 시인입니다. 옥천에 살면서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을 안내하곤 했거든요. 정 시인은 당시 문학계에 대부 같은 분이었어요. 윤동주와 서정주, 이상, 청록파 시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을 발굴하기도 했지요. 당시 모든 시인들이 정지용 시인을 마음에 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최근 그는 뜻깊은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정지용 시인을 금관문화훈장 후보자로 추천한 것. 당연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던 일이다.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바로 정지용 시인을 금관문화훈장에 추천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금 이후 정지용 시인은 대한민국 대표 시인으로 우뚝 세워졌지만, 유족들은 월북자 가족이라는 잘못된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지요.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입니까? 큰 혜택은 아니지만, 늦었지만 국민과 국가가 나서 가족들에게 해줘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시인이 시인이 되기 전 바라본 풍경

김성장 시인은 30여 년 간 글씨를 써온 서예가이기도 하다. 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체를 완벽에 가깝게 구사한다.

좋은 시는 6살 이전에 배운 언어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책을 펼쳐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언어를 알기 전 보고 느낀 세상이 곧 평생의 작품세계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들이 살던 곳은 대부분 시골이었지요. 주변 모습은 달라졌어도 그 공간에서 바라본 풍경만큼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아주 어릴 적, 시인들이 언어를 배우기 이전에 본 산과 들, 거리. 시인들은 사실 이 세계를 노래한 거예요. 문학관 기행은 시인이 되기 전 그들의 마음속 심상이 된 풍경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책은 총 11곳의 문학관, 4곳의 생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건축물 형태부터 전시장 내부, 시비와 주변 풍경까지. 시인들이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졌듯 문학관도 서로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도시에 있는 문학관으로는 서울 종로 윤동주 문학관이 있어요. 건물 자체가 특이하죠. 일제 때부터 사용됐던 수도 가압장과 두 개의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곳입니다. 일반적인 집 구조가 아닌 박스형 건물이에요.

특히 물탱크를 개조한 전시실에 들어오면 묘한 느낌이 들어요. 폐쇄공간인 것 같지만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요.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돌이켜보면, 시대가 주는 억압과 희망이라는 몽타주로 이해될 수 있지요.”

여행지 같은 멋진 풍광, 소박한 시골 풍경을 자랑하는 문학관도 있다.

“강원도 인제 박인환문학관은 계곡 사이에 있어 풍경이 멋집니다. 박 시인은 산간 지방에서 태어나 10년을 살고, 도시를 떠돌았어요. 그의 삶처럼 문학관 내부는 1950년대 명동의 술집 거리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통영 바닷가에 위치한 청마 유치환 문학관은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섬 풍경이 좋아요. 책에 실리진 않았지만, 조지훈 문학관은 한옥마을이면서 옛날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문학관 추천을 부탁하면 가족과 가는지, 친구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곳을 알려드릴 수 있어요.”

시인들의 생가는 제대로 보존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는 신동엽 시인의 살림집 정도다.

“우리 역사 자체가 과거 흔적을 보존하기 어려운 수난의 연속이었잖아요. 20세기 초 가난한 농어촌에서 태어난 작가들의 유품과 유적이 수명이 길 수 없는 서글픈 사정도 있고요. 문화 아카이브가 취약할 수 밖에 없는 민족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숙명인거죠.”

책 발간 전, 그의 문학관 기행 에세이는 <옥천신문>을 통해 연재됐다. 두 번째 기행기도 현재 준비 중이다. 이미 발걸음했지만 아직 풀어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행동하는 서예가

김 시인이 천 현수막에 쓴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한 구절. 

에세이 책에는 그가 직접 쓴 붓글씨 작품이 실렸다. 김 시인은 국어교사 생활을 하면서 약 30여 년간 글씨를 써온 서예가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 서예 시집 <내 밥그릇>을 펴내기도 했다. 신영복체를 완벽에 가깝게 구사하는 서예가로 유명하다.

그의 붓글씨는 가만히 앉아 정자세로 쓰는 일반적인 서예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6·10 민주항쟁 기념행사에서, 숱한 거리에서 천으로 된 현수막에 글씨를 썼다. 그가 행동하는 서예가로 불리는 이유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운동 시기 4개월을 꼬박 길바닥에서 글씨를 쓰며 보냈어요. 이후로 몸이 상해 고생을 좀 했지요. 곧 환갑인 걸 잊어버린거죠. 사회적 이슈나 요구가 모아지면 누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거리로 나갔습니다. 지금도 사실 민족사적으로 볼 때 거대 전환기라는 생각을 해요. 큰 변곡점이 될 수 있겠다, 그렇게 만들어야겠다 하는 생각이요.”

최근 세종시교육청 1층 로비에서 선보인 ‘평화, 먼동이 튼다’ 전시도 비슷한 맥락이다. 교육문예창작회 회원들은 그의 작업실 세종글쓰기연구소에서 서예 작품을 썼다. 증오와 불신, 분노를 거둬내고 평화로 가자는 메시지가 주제다.

현재 그는 대전, 서울에 이어 세종시 어진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수강생에게 신영복체를 가르치고 있다. 대학원 논문도 신영복체를 주제로 써냈을 만큼 조예가 깊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는 정말 어떤 체보다도 쓰기 어렵습니다. 글씨에 담긴 철학, 시대정신, 민중적 요구 등을 파악하면 선생님이 왜 수평과 수직을 피해 글씨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지요. 글씨를 쓰는 지식인들은 많지만, 대중에게 사랑받는 경우는 드물어요. 수강생들도 다들 신영복체를 배우러 옵니다.”

최근 그는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평소 신영복 선생을 존경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어록을 신영복체로 쓰게 된 것. 가로 5m, 세로 3m의 이 대형 작품은 최근 건립된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 걸렸다.

“올해는 시집에 이어 신영복체 쓰기 안내서를 출간합니다. 기존에 썼던 논문을 쉽게 풀어 대중들에게 다가갈 생각이에요. 교직에서 퇴직한 지 4년째인데, 세종시 작업실은 조용하고 또 제가 사랑하는 호수가 가까워서 좋아요. 여전히 글 쓰고, 글씨 쓰는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시인이자 서예가, 전직 국어 교사, 행동하는 예술인. 수많은 타이틀이 그의 이름 앞에 붙는다. 올해는 하나 더 늘었다. 세상을 떠난 시인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잇는 ‘문학관 안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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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2019-06-10 14:51:01
자신의 인생길을 올곧게 꿋꿋이 무소의 뿔처럼 걸어가는 한 시인, 서예가의 모습에 감명을 받는군요.
김성장 선생의 신영복 필체 글씨를 언제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전완하 2018-10-19 15:38:36
한지혜 기자님
독자의 가슴에 와닿는 기사를 쓰셨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살면 세상살이 재미 있습니다.
항상 진실되고 끈기있게 사시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김성장 2018-10-18 22:57:58
고맙습니다. 꼼꼼하고 섬세하게 인터뷰하고 책을 읽고 간결한 문장으로 참 잘 쓰셨네요.탁월한 저널리스트입니다.

예인 2018-10-17 17:04:59
멋진 활동과 작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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