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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다리 백수들이여, 자신 있게 배낭을 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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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다리 백수들이여, 자신 있게 배낭을 메자
  • 조석희
  • 승인 2018.09.22 10:4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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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조석희의 코카서스3국 화첩여행 <1>우왕좌왕 조지아 여행

코카서스 3국이 신흥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코카서스 3국은 서아시아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한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3개 국가를 일컫는 말이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전까지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었다. 지리상으로는 아시아이지만, 역사·종교·문화적으로는 동유럽에 가깝다. 종교적으로 조지아는 동방정교,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정교,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교다.
 
세종시사생회 회장인 태도(太道) 조석희 화백이 화첩을 들고 코카서스 3국을 다녀았다. 그의 화첩에 담긴 코카서스 3국에 대한 여행기를 추석특집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조석희 화백 | 세종시 사생회 회장

7월 25일, 여행 4일 차다. 덜컹거리는 바퀴 진동음과 서늘한 기운 때문에 잠에서 깼다. 시계는 아직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2인 객실 맞은편에는 은발의 조지아 노신사가 일어나 앉아 웃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불편한 야간열차에서 깊이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어제저녁 무사히 열차에 올라탈 수 있었음이리라.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려했던 일 중 하나가 어제저녁에 일어났다. 트빌리시 메트로 역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출발 시각에 맞춰 대합실로 내려갔다. 가방 속을 뒤져 승차예매권을 찾았는데 분명히 있어야 할 승차예매권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왠지 불길한 마음이 들면서 이곳저곳을 황급히 뒤져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제 숙소에서 출발할 때 무심코 버린 접힌 종이 한 조각이 생각났다. 그것은 열차예매권, 아르메니아 비자, 항공권, 일정표 등이다. 접힌 두께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한 메모지쯤으로 짐작하고 가볍게 휴지통에 버린 것이다.

배낭을 꾸리며 이 서류들만큼은 깊숙이 잘 두어야지 하고 몇 번을 신경을 썼건만, 이렇게 쉽게 잃어버릴 줄이야. 탁자에 놓인 종이를 펴보기만 했어도…. 아! 늦은 나이에 배낭여행에 동참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폐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나름 서둘러 출발한 것이 낭패였다.

어쨌든 빨리 인터넷에 접속해 예매 확인표를 다시 내려받아야 했다. 웬걸, 인터넷 접속이 안 되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딜 가도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는데 한 나라의 수도 중앙역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니…. 방금 식사를 마친 4층 식당으로 뛰어 올라갔지만, 식당은 청소 중이었다. 이제 겨우 9시인데 벌써 문을 닫은 것이다.

조지아의 노신사

아래층 각종 상점을 돌아봤지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은 없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역 밖 멀리 떨어진 곳에 상가들이 있지만, 거기라고 가능하리란 보장이 없다. 이제 출발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은 조급한데 달리 방법이 없다.

‘5층 호텔에서는 와이파이가 되겠지.’ 찰나의 생각에 이르렀지만,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마침 올라가는 승강기가 보여 올라타고 문이 열렸는데 그곳이 호텔 로비였다. 이상하게 바라보는 직원에게 몸짓으로 대충 얘기하고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해 승차권을 찾아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휴대전화에 내려받아 둘 것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기차표를 스크린샷으로 기록했다.

시간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 열차를 놓칠 수도 있다. 황급히 돌아 나가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직원의 못마땅한 시선이 뒤통수에 꽂힌다. 황급히 열차로 달려가니 일행들이 보이질 않는다. 내가 타야 할 객차도 모른 채 무작정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끄트머리 칸까지 가니 동행들이 보였다.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타즈베기 산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검표 과정에서 자신 있게 휴대전화를 열었지만 저장한 메일이 보이질 않았다. 화면 캡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낭패다. 어쩔 수 없이 승무원에게 여권을 보여줬더니 2인 침대칸으로 친절히 안내하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간단한 일을…. 우왕좌왕하다 열차를 놓쳤을 뻔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지난 1월 윤 선생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인터넷으로 모집한 10여 명의 동행자와 자유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윤 선생은 7살 아래 후배 교사로 30대부터 수십 개국을 여행한 베테랑이다. 퇴직 전 윤 선생이 여행을 다녀와 이야기할 때면 부러워하며 함께 떠나자고 약속하곤 했었는데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었다.

메스티아

퇴직하면 나도 배낭여행을 떠나겠노라 다짐했었지만, 쌍둥이 손자를 돌본다는 핑계로 6년 세월을 흘려보냈던 터다. 이제 3년이면 내 나이 일흔.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패기와 자신감,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현실에 안주하다 보니 점점 사라져갔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배낭여행의 꿈은 영영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학생 시절 대청호가 생기기 전 - 지금은 호수 바닥이겠지만 - 금강 상류 동기생 집 옆에서 드럼통 3개를 묶어 4박 5일간 금강을 표류했던 리프팅의 원조가 바로 나다. ‘그래, 다시 용기를 내보자!’ 이제 쌍둥이도 6살이니 아내 혼자서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결심이 서자 인터넷쇼핑으로 터키 이스탄불 왕복항공권을 81만 500원에 구매했다. 지난 4월이었다. 이때가 운임이 가장 저렴하다고 한다. 우리는 7월 22일 출발해 8월 20일 돌아올 계획이었다.

시그나기 성채 마을

과연 내가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건강이 걱정이다. 의료시설이 열악할 수 있는 곳에서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더구나 척추 디스크 수술을 받은 게 2년 전이었다. 40년 동안이나 달고 함께 살아왔지만 결국 아픔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일 체력단련을 한다고 헬스장에 갔지만, 예전 같지 않다.

두 번째 걱정은 소통이다. 처음 만나게 될, 나와 10살 이상 차이 나는 동행들과의 소통은 물론 현지인들과의 대화도 걱정부터 앞섰다.

식사도 문제다. 나는 장이 예민해 평생 만성 복통에 시달렸다. 특히 밀가루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빵이 주식인 나라들에서 내가 잘 견딜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그동안 불었던 뱃살을 해결할 좋은 기회로 삼기로 했다. 이제 결심은 섰다. 욕심을 버리고 한 달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는 것을 이번 여행의 목적으로 잡았다.

완주하면서 베테랑 배낭족들이 어떻게 다음 행선지와 숙소를 정하고 교통로를 결정하는지, 어떻게 가격을 흥정하는지 등을 배울 것이다. 덕분에 한 달 여행 경비가 항공료 80만 원 제외하고 150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 예정에 없었던 현지 항공을 타지 않았으면 더 저렴했을 것이다.

주타계곡
카페4계(주타계곡)

보통 배낭족들 1일 경비는 교통비포함 평균 5만 원이라고 한다. 생각한 대로 내 뱃살은 2.5kg이나 줄었다. 물론 분식이 맘에 들지는 않아 거의 먹지 않고 고기, 계란, 야채 등을 주로 먹었지만,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별도로 챙겨간 한국 음식은 고추장 볶음 한 통뿐이다. 감자와 양파를 사 고추장 볶음을 넣어 끓인 감잣국과 쌀 1봉지 사서 딱 한 번 밥 지어 먹은 것이 고향식의 전부다.

건강에 대한 걱정도 기우였다. 인체는 스스로 주변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던가. 처음 1주 차에 배탈이 나서 며칠 고생을 했지만 가져간 상비약 몇 알로 쉽게 호전됐다. 조지아의 험준한 지형을 마슈르트카(소형승합차)로 내달렸지만 걱정했던 허리도 무탈하다.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하며 숲이 무성하고 경치가 아름답다. 코카서스산맥 해발 5000m 넘는 산들에서 만년설이 끊임없이 녹아 흘러내린다. 한마디로 조지아는 물의 나라다. 우리는 수도 트빌리시 – 카즈베키 – 주타계곡 – 메스티아 – 우쉬굴리 - 다시 트빌리시 - 쿠타이시 – 시그나기 등을 거쳐 아제르바이젠으로 넘어 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어린이
실리코(게스트하우스 주인)

조지아 사람들은 모두가 진중하고 순박해 보였으며 매우 친절했다. 새벽에 우리가 묵은 숙소에서 바라보이는 해발 5040m 카즈베기산은 만년설이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코카서스 지역에는 5000m급 산이 5개나 있다.

조지아는 포도주의 나라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포도주 항아리가 발견되면서 포도주의 시원이라고 주장한다. 조지아 포도주는 맛있으면서 값도 쌌다. 쿠타이시에서 만난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슐리코는 자신의 지하 포도주 저장고를 보여줬다. 식사하는 내내 자신이 담근 포도주를 마음껏 마시도록 권했고, 일행 모두 기분 좋게 취했다. 그 친절이 너무 고마워 잠깐 그린 초상화를 건네주니 “I Love Korea”를 외치며 기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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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규매 2018-09-22 16:06:07
선생님의 용기와 실천에 박수를 보냄니다~~^^

유지은 2018-09-22 16:49:28
멋집니다. 아름다운 시간을 스케치로 남기시니 그 여행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윤선생 2018-09-23 12:38:16
육로 국경통과시 아제르바이잔 비자가 필요하지요. 아르메니아는 비자면제국가라서 입경시 사전비자가필요없습니다.

KBS 거북이늬우스임재한기자 2018-09-26 10:34:03
짝짝짝
멋쟁이 조형님
잼나는 여행기 지달리고 있슈
담에는 나도 델꾸가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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