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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도 가끔 부질없는 상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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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도 가끔 부질없는 상념에 빠진다
  • 김형규
  • 승인 2018.08.20 11:2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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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37>한국의 자전거 시장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해발 1335m의 포이오 언덕 표지판에서 포즈를 취한 아들.

산 로케 언덕의 순례자 동상이 비바람 속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내딛는 다리에 힘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나머지 여정엔 평탄한 길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리라. 사지는 파김치지만 그의 눈은 저 멀리 언덕 아래 목표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순례자들은 동상에서 힘을 얻는다. 먹을 것, 입을 것 하나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 누더기 망토와 가죽 샌들 한 켤레, 나무지팡이에 의지해 고난의 행군을 했던 옛 순례자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호사스러운 여행인가.

산 로케 동상을 지나 2㎞쯤 더 가면 오스피탈 다 콘데사(Hospital da Condesa)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 백작의 부인이 다치거나 강도를 당한 순례자를 위해 병원과 피난처를 운영했던 곳이란다.

해발 1300m를 넘나드는 고지대는 3㎞쯤 더 펼쳐지다가 막판에 살짝 다리에 힘이 들어갈 정도의 업힐 구간으로 변한다.

여성 라이더가 무거운 짐을 싣고 포이오 언덕을 오르고 있다. 대단한 뚝심이다.

앞서가던 여성 라이더가 오르막 앞에서 한쪽 다리를 가드레일에 얹어놓고 잠시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핸들바백에 패니어까지 앞뒤로 짐을 가득 싣고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대단한 실력자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한참 앞을 내다봐도 동행이 보이질 않았다. 홀로 순례라이딩에 나선 것이다. 아들과 내가 “부엔 카미노!”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추월하니 상냥하게 응대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이날 라이딩의 가장 높은 지대인 포이오 언덕(Alto do Poio‧해발 1335m) 표지판이 보였다. 우리는 뒤처진 멋진남이 올 때까지 언덕에서 기다렸다. 잠시 뒤 그 여성 라이더가 뒤쫓아왔다. 카메라 앵글을 맞추자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반갑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트리아카스테야 마을의 정원 같은 식당에서 순례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입구에 세워둔 순례라이더들의 자전거.

높이 1300m대의 포이오 언덕부터는 내리막이다. 하산이 시작되자마자 불과 2-3㎞ 사이에 고도가 700m까지 내려갈 정도로 살벌한 급내리막 구간이다. 만일 거꾸로 거슬러왔다면 자전거를 끌고 올라와야 했을지도 모른다. 힘든 오르막이 끝났다고 좋아했던 도보순례자는 이 구간에서 배신감에 좌절하고 만다.

불행 중 다행인지 1시간 정도 무릎 통증으로 더 이상 발걸음을 내딛기가 끔찍해질 때쯤이면 오아시스와 같은 트리아카스테야(Tríacastela) 마을이 나타난다.

순식간에 다운힐을 끝낸 우리는 이 마을 뒷골목을 배회하며 허기를 채워줄 식당을 물색했다. 트리아카스테야는 옛날 세 개의 성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지에 자리 잡아 순례자들이 붐비는 번성한 마을인지라 과거에는 바가지 상술에 눈이 먼 장사치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곳저곳 둘러보다 골목길에 자전거 여러 대가 세워져 있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숙박시설 옆 마당에 햇빛가리개를 올리고 순례자들을 상대로 음식을 파는 정원 같은 식당이었다.

남은 여정이 주로 내리막길이어서 여유 있게 스테이크와 과일 디저트 등 고칼로리 음식으로 공복을 달랬다.

언제부터인가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외지에서 라이더 동지들을 만나면 그들의 몸매를 통해 내공을 가늠하거나 자전거의 부품을 뜯어보면서 등급을 매기는 못된(?) 습성이 생겼다.

산티아고 라이딩 중에 옷깃을 스친 순례라이더나 동호인들의 실력은 높은 수준인 반면 자전거는 지극히 평범했다. 앞의 여성 라이더는 물론 식당 옆에 세워둔 자전거는 우리나라 동호인의 평균치보다 아래였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산악‧로드 자전거대회에 나가보면 전 세계 최상급 자전거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안타깝게도 유명 자전거에 장착된 수많은 부품 중에 ‘메이드 인 코리아’는 하나도 없다. 고가의 자전거는 물론 중저가도 마찬가지다.

애교 넘치는 식당 남녀 화장실 표시.

2009년 5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의 어느 자전거 행사의 축사를 통해 “자동차는 20년 걸려 세계 5위 국가가 됐지만, 자전거는 5년 안에 3위 국가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그는 “우리가 자전거를 약 200만 대 매년 수입하고 있고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아주 소수”라면서 “가장 성능이 좋은, 경쟁력이 있는 대한민국 자전거가 세계 방방곡곡에 수출될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덕특구에 자전거산업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도 했다. 자전거를 탄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그때나 이 전 대통령이 호언장담했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전거 시장은 거의 변한 게 없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여전히 시마노나 스램이 거의 모든 브랜드 자전거부품시장을 독식한 가운데 각 지자체의 공용자전거와 중저가 자전거의 부품이 대만산이나 중국산으로 조금씩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전기자전거(e바이크)마저 밀리는 모양새다.
‘에고, 산티아고 순례까지 와서 이런 부질없는 걱정에 매달려야 하다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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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2018-08-20 22:40:52
그러게요. 왜 아직 자전거는 못 만드는건지. 아니면 않 만드는건지.

진교영 2018-08-20 16:28:04
대한민국
국민들 전부터
자동차도 호갱 자전거도 호갱 ㅠㅠ
비싸게주고 비싼걸타야 폼나죠 잘타지는건 모르겠네요.. 옷 도 신발도 부품도 용품까지도 전부 우리는 호갱 ~ ㅋ
죄송합니다 구조적으로 흥분했네요
잘 읽고갑니다 ^^
막바지 더위 조심하시고 자전거로 항상 건강하세요..

kusenb 2018-08-20 15:36:45
종목 불문 유독 우리나라 동호인들은 일단 장비는 최상급으로 맞춰놓고 시작하려는 부분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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