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만년 공학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시(詩)
상태바
만년 공학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시(詩)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8.08.20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세종재능시낭송협회 이재일 회장
이재일 세종시낭송협회장.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3년 전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시문학의 세계에 눈 뜬 이가 있다. 세종재능시낭송협회 이재일(51) 회장이다.

이 회장은 현재 충북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연구실에서 수석연구원(이학박사)으로 재직 중이다. 평생을 공학에 빠져 살아온 그가 느닷없이 시에 빠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지난 2015년 건강 악화로 9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고,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시를 접하게 됐다.

그는 “고운동에 거주하면서 매일 고운뜰공원 트래킹을 하다보니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의 의미를 알게 됐다”며 “시가 영혼을 맑게 해주는 기폭제가 됐다. 주변인들은 평생 공학도로 나를 기억하지만, 현재의 내 모습을 보면 크게 놀란다”고 했다.

시에 대한 사랑은 그를 창작으로 이끌기도 했다. 이미 그가 써 놓은 시 작품만 해도 40여 편이 넘는다. 환경에너지공학 연구자인 그의 PC에는 시 창작 폴더가 따로 자리한다.

창작과 함께 시 낭송을 시작한 그는 재단법인 재능문화 재능시낭송협회에 참여하고 있다. 재능시낭송협회는 전국 800여 명에 이르는 전국 규모의 단체로 시낭송 공연, 세미나, 시낭송 교실 등을 개최하고 있는 단체다. 1993년 첫 설립됐다.

전국 협회는 매년 전국을 돌며 시낭송대회를 여는 등 시낭송가 등용문 역할도 하고 있다. 시낭송 운동을 교육적 가치로 접근, 올해로 대회 28년째를 맞는다.

이 회장은 인근 대전지역 협회에서 활동하다 최근 세종재능시낭송협회를 구성했다. 현재 회원은 28명으로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고운동 북측커뮤니티센터에 모여 시 스터디를 하고 있다. 올해 12월 공식 창립 협회로 발돋움한다.

그는 “협회에는 40대부터 70대까지 시를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모였다”며 “올해는 여름 시낭송 학교를 다녀왔고, 내달 8일에는 시가 흐르는 전라도길 탐방을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낭송의 힘

이재일 협회장이 시 낭송이 가진 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암송하는 시는 약 20여 편 정도다. 최근 마음에 꽂힌 시는 마종기 시인의 ‘꿈꾸는 당신’.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도 그의 애송시 리스트에 올랐다.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도 아끼는 시다.

세종시 고운뜰공원을 매일 아침 트래킹하며 시를 암송하고, 아침 출근 후 매일 시 한 편을 낭송하는 게 그의 일상이 됐다.

이 회장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노래 대신 시를 낭송하고, 학술 발표회에서도 시 한 편을 낭송하고 시작하면 결과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진다”며 “얼어붙은 한국과 중국 양국의 분위기를 녹이고자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를 낭송했던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모습이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것이 바로 낭송의 힘”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추석 이해인 수녀의 시 ‘달빛 기도’를 직접 낭송하며 국민들에게 추석 인사를 전했다. 글이 아닌, 글을 담은 목소리를 통해서다.

노래에는 작사가와 작곡가, 가수가 있다. 시는 작가는 있지만, 낭송가는 정해지지 않는다. 시인이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낭송가는 전달하는 이에 가깝다. 시 낭송은 시를 그림처럼 눈앞에 펼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나태주 시인은 ‘시는 사람을 살린다’고 했다”며 “시는 자연에 대한 영감과 느낌을 녹아내는 것이고, 낭송은 이를 직접 느끼도록 하는 일이다. 이보다 나은 힐링법은 없다”고 했다.

세종시, 시가 흐르는 도시로

지난해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재능 시낭송대회에 참여한 세종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

세종시를 시가 흐르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기여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존호를 딴 도시인만큼 세종시는 우리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문학, 시의 도시가 돼야 한다는 것.

세종재능시낭송회 회원들은 지난해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시낭송경연대회에 참가했다. 그 역시 대한민국 불멸의 시인, 윤동주 시인을 세종의 시인으로 받들자는 본보의 제안에 큰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윤동주 시인은 세종시와 너무나 잘 맞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글을 가장 시적으로 표현한 시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에서 현재 중국 시인이라고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도에 200% 공감한다”고 했다.

나아가 시민 공감대가 확산된다면, 윤동주 시인의 시를 느끼고 기억할 수 있는, 문학관 같은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도 했다. 매년 윤동주 시낭송대회를 여는 등 시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는 시가 가진 힘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란 확신을 갖고 있다.

이 회장은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의 나라에서는 시를 배우라고 하지 않고, 읽으라고 한다”며 “수사법을 떠나 시를 읽고 함께 토론하는 수업을 통해 소통력, 표현력,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 현재 세종시에는 낭송대회가 없는데, 아이들이 많은 도시인만큼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낭송대회를 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향후 세종시교육청 등과 연계해 찾아가는 시낭송교실, 방과후 시낭송 등의 재능 수업도 하고 싶다”며 “앞으로 세종시 위상에 걸맞는 시 문화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세종포스트빌딩 5층에서 열린 윤동주 시민아카데미에 참석한 세종재능시낭송협회 회원들의 단체사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