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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작은 동상, 장소팔 선생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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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작은 동상, 장소팔 선생을 추억한다
  • 이규식
  • 승인 2018.08.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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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5>웃음, 어디로 갔나
이규식 문학평론가 | 칼럼니스트

웃음이 사라진 듯하다. 희극 영화를 찾기 힘들고 TV에서 인기를 끌던 개그 프로그램도 예전 같지 않고 사회 전반에 경직되고 메마른 감성이 스며들어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일상의 건조함이 가중되는가 보다.

매일 접하는 사건과 사고, 이런저런 사회 현상들이 더 극적이고 본질적으로 희극적 요소를 갖추어서 웬만한 코미디나 개그를 능가하기 때문일까. 자극과 충격에 단련되어 어지간한 현실과 상황에는 그리 놀라거나 웃고 슬퍼하지 않는 면역체계가 갖추어진 탓인가. 사소한 일상에서 울고 웃던 예전의 심성, 순박하고 부드러운 감수성이 아쉬운 이즈음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희극과 비극이 온전히 공존해 온 것이 인류 역사이고 비로 지금 우리의 삶이라면 그 희극적 요소, 즐겁고 경쾌한 일상의 리듬을 더 많이 체험하고 향유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기능을 희극, 코미디, 개그 같은 장르의 연희(演戲) 활동이 맡아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기능이 침체된 듯하다. 지금보다 훨씬 못살던 시절에 희극 영화, 코미디 연기 그리고 만담 같은 분야가 활발했던 것을 보면 삶의 수준과 여유, 웃음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장소팔 동상(부분)

만담은 어디에
 
TV에서 인기를 끌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각기 걸출한 재능을 지닌 코미디언들이 입담으로 표정으로 동작으로 더러 치고받으며 넘어지고 자빠지는 과장 연기 속에서 그들은 삶의 애환과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TV가 보급되기 전, 개그와 코미디 이전에는 ‘만담(漫談)’이 라디오 방송을 타고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언변으로 더러는 의미 없는 허망한 이야기나 단순반복의 허언도 적지 않았지만, 언중유골, 정문일침, 촌철살인의 예지가 번득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만담은 이제 청년세대에게는 생소한 분야가 되었지만, 중장년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추억의 모티브로 자리 잡았다. 그러므로 만담은 1950~1970년대 우리 사회의 기쁨과 슬픔, 밝음과 어두움을 표상하는 대중 연예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장소팔 : 우리 아버지가 외양간에 매어 놓았던 소를 끌고 장으로 팔러 나가셨대요.
고춘자 : 그래서요.
장소팔 : 그때를 못 참고 내가 '응애'하고 이 세상 밖에 나왔대.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장으로 소 팔러 간 사이에 날 낳았다고 장소팔이야.

지금 들으면 별로 웃음이 나올 법하지 않은 이런 아재 개그 스타일의 만담이 1960년대를 중심으로 국민적인 열풍을 일으킨 연희장르로 군림한 적이 있었다. 본명이 장세건인 장소팔 선생을 떠올리면 으레 파트너인 고춘자(본명 고임득) 만담가가 생각난다.

요즘의 장수 라디오프로그램인 ‘싱글벙글 쇼’의 강석, 김혜영 진행자의 호흡에 못지않은 입담의 달인 두 분이 펼치는 한바탕 장광설 만담은 그 시절 우리 사회의 진솔한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가난한 사람들, 집이 없는 가족, 신혼부부와 연인들, 시골에서 상경하여 각박한 도시 정서에 부대끼는 순박한 청년 등 여러 계층의 기쁨과 분노, 그 가운데 솟아나는 삶에의 희망을 걸쭉한 입담으로 펼쳐놓았다. 저녁 시간 조그만 라디오를 앞에 놓고 둘러앉은 가족들은 두 사람의 청산유수 언변에 일희일비하면서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장소팔 동상

지금 만담이 필요한 이유

2010년대에 반세기 전 만담을 추억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잃어버린 여유와 웃음, 상대를 배려하는 작은 마음 씀씀이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소박한 배려가 새삼 아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소팔-고춘자 콤비 이후 김영운-고춘자 콤비가 이어받은 만담의 전통은 1970년대 이후 급속한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멸실되어 버렸고 TV 영향력이 커지면서 다양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면서 입담으로 꾸려가던 만담의 전통은 차츰 잊혀갔다.

그러나 만담의 대명사, 불세출의 아이콘 장소팔 선생(1921-2002)을 서울시 중구 성동공고 옆 길모퉁이에서 만날 수 있다.

당당한 위엄으로 높다랗게 서서 행인들을 내려다보는 동상이라는 인식은 2009년 12월 조성된 장소팔 선생 동상을 보면 크게 바뀐다. 번잡한 거리 한 모퉁이, 돌 받침 위에 건립되어 누구나 옆에 앉아 쉬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1.5m 나직한 형상의 장소팔 선생 동상은 그래서 삭막한 도시에서 휴식과 위안을 준다.

광화문 교보문고 옆 길가 벤치 위에 1996년 세워진 소설가 고 횡보 염상섭 선생 동상도 그렇듯이 이즈음 동상에게는 숭배와 존경의 표상이기보다는 소통하며 교류하고 나름 위로받는 더 큰 기능이 부여된 듯하다.

염상섭 동상

만담이 무엇인지, 장소팔이 누구인지, 만담 한 토막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도 장소팔 선생의 푸근한 표정과 자세, 분위기 그 자체로 위안과 휴식을 준다.

아울러 시대와 감성의 변화를 감안한 새로운 만담의 출현을 기다린다. 개그라는 장르가 TV를 통하여 꽤 오래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처럼 만담이 남녀노소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국민 연희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본다. 우리말의 고유한 구조와 매력, 음운상의 특징을 살려내면서 풍자와 해학이라는 민족 정서를 담아 삶의 건조함을 촉촉이 적셔줄 21세기형 코미디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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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규식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남대 교수(프랑스어문학전공)로 재직 중입니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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