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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한 춤, 그리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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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원한 춤, 그리고 그림
  • 유태희
  • 승인 2018.08.15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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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문화인물] 프랑스 진출 준비 중인 서양화가 송규매
서양화가 송규매

우리 나이로 쉰다섯. 쉰을 넘겨서 비로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주목할만한 대기만성형 화가가 있다. 서양화가 송규매.

대학에선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대학원 조형미술학과에 진학해 자신의 작업을 심화시킨 까닭이다. 졸업할 때는 총장상을 받았을 정도로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가정일에 매달리면서 그림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 자신감도 없었고 자존감도 낮았다. 어느 날 삶을 되돌아봤더니 언니의 그림자가 보였다. 프랑스에서 화가로, 사업가로 활동 중인 언니는 그림이든 공부든 줄곧 일등이었다. 나름 전공자이지만, 작품 몇 개 그려서 단체전이나 그룹전에 참가하는 게 전부였다. 작품도 대개 꽃이나 풍경 등을 그렸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미술가협회전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비로소 자신을 표출하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올랐다. 자각이었다. 잠재된 끼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그렸다. 무조건 그렸다. 그렇게 2년 넘게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작품세계에 눈을 뜰 무렵, 사건이 터졌다.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진 것.

1년 넘게 어머니 병구완에 매달렸다. 혼자서 어머니를 돌보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떠나자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왜 힘들어했을까. 저리 가실 것을.’ 우울증에 시달렸다. 살고 싶지 않았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 온통 텅 빈 회색의 세계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열정(DancerⅠ)’ 송규매, 캔버스에 유채, 130.3×162.2㎝
‘Bounce’ 송규매, 캔버스에 유채, 37.9×45.5㎝

그런 그를 구원한 것은 춤이었다. 잠시 귀국했던 언니가 춤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기가 막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마당에 무슨 춤!’ 언니는 학원까지 등록해 놓고 다시 출국했다. 파리에서도 언니는 우울증을 이기려면 춤을 배워보라고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해댔다. 큰 기대 없이 댄스학원에 갔다. 춤은 잠자고 있던 몸의 근육을 깨웠다. 강권에 못 이겨 시작한 춤이 그를 깨끗하게 치유해줬다.

치유를 통해 그는 새로운 작품세계에 눈을 떴다. 파리 언니 집에 머물며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섭렵했다.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빠져들면서 우울증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화단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 사람들이 알고 있던 송규매가 아니었기 때문.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가가 등장한 것이다.

‘자유’ 송규매, 캔버스에 유채, 45.5×53㎝
‘여인’ 송규매, 혼합재료, 60.6×50㎝

송규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드립페인팅(drip painting)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이 떠오른다. 캔버스주위를 돌다가 그 위에 물감을 뿌리고 붓질을 해 작품을 완성한 추상표현주의 화가다. 

송규매는 살바도르 달리가 ‘편집증적 비평’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작가 자신의 욕망을, 감각의 움직임대로 표현한다. 화폭에는 확신에 찬 작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춤으로 단련된 근육의 감각과 몸의 느낌이 새롭게 그리는 생각의 도구를 깨운 것처럼 보인다. 마치 피아니스트가 음표와 감정을 손가락 근육에 기억시킨 것처럼.

송규매는 프랑스 진출을 준비 중이다. 그곳에서 한국의 예술세계, 아니 작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공유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동적인 움직임과 자연에 내재한 본질에 대해 한국인인 나는 이렇게 보고 있다고 그림으로 말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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