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쓰면서도 달콤한 스페인의 역사 도시
상태바
쓰면서도 달콤한 스페인의 역사 도시
  • 김형규
  • 승인 2018.06.11 09:54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27>아스토르가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성벽 안쪽 마을로 연결되는 독특한 형태의 돌계단.

아스토르가는 스페인 역사의 축소판이다. 시내를 둘러싼 석성(石城)은 고대 로마제국시대 때 축조된 것이다.

평균 고도 868m의 고지대에 자리 잡은 이 작은 도시는 고대 켈트인들이 세운 정착촌이 시초다. 기원전 14년에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따라 아스투리카(Asturica)라고 불렀다.

로마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았던 스페인은 다시 오랜 기간 이슬람의 통치를 받았다. 스페인 국민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는 독립운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레콩키스타는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780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도교도가 벌인 국토회복운동이다.

북아프리카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하자 스페인 지배층은 북쪽의 칸타브리아산맥과 동쪽의 피레네산맥으로 도피해 그 지역을 중심으로 레콩키스타 운동을 벌였다.

성벽에는 나폴레옹과 아스토르가에 얽힌 전쟁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돌로 쌓은 입구를 따라 도시 안으로 들어가니 독특한 형태의 돌계단이 나타났다. 성벽에 붙인 연혁판을 살펴보니 프랑스의 정복자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다.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스페인은 또다시 유럽 전 지역에 휘몰아친 전쟁의 광풍에 휩싸였다. 이른바 반도전쟁이라 부르는 싸움은 당시 나폴레옹의 운명을 바꾸는 단초가 됐다.

1807년 후반 나폴레옹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하자 포르투갈은 영국에 도움을 청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북부지역을 점령한 프랑스는 1808년 5월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폭동을 계기로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왕으로 임명해 큰 반발을 샀다.

8월부터 영국군이 상륙해 스페인 게릴라와 함께 프랑스군을 압박하면서 전세는 역전되고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가 무릎을 꿇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침공과 스페인 전쟁을 병행하느라 전력에 누수가 생겨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외부에서는 반도전쟁이라 부르지만, 스페인은 성공적인 게릴라 전투에 자긍심을 갖고 ‘스페인 독립전쟁’으로 부른다.

아스토르가 시내에 있는 산 바르톨로메(San Bartolomé) 교회.

성벽에 붙은 연혁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로 각각 새겨져 있다. 대략 내용을 살펴보면 나폴레옹이 영국의 존 무어 군대와 스페인군대를 격파하기 위해 1809년 1월초 아스토르가에 직접 와 주교궁에 묵었다는 내용이다.

중세시대에 건축한 아스트로가의 주교궁(El Palacio Episcopal)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아스토르가에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박물관이 또 다른 볼거리다.

유명 건축문화재가 즐비하지만 아스토르가의 매력은 초콜릿에 있다. 1528년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스페인은 멕시코에서 카카오 콩을 처음 가져왔다. 이후 아스토르가는 유럽의 대표적인 초콜릿 생산지로 자리매김했다.

초콜릿 박물관에는 16세기에 이도시에서 만들어진 뜨거운 초콜릿 머그잔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이 도시는 또 ‘파운드 케이크’와 유사한 머핀 크기의 ‘만테카다(Mantecada)’ 파이로도 유명하다.

가로수가 울창한 LE-142번 도로. 우리나라 지방도로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스페인 현지 자전거동호인이 멋진남님의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어주고 있다.

아쉽게도 명소와 맛집을 들르는 건 건너뛰어야 했다. 오전에 비 때문에 일정이 지체된 데다 아직 가야 할 길이 50~60㎞나 남았다. 아스토르가에 대한 사전정보가 충분했다면 30분 정도는 시간을 내 시내 구경과 함께 맛집 탐방도 가능했으리라. 나의 불찰과 투어 업체의 무심함을 탓할 수밖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스토르가를 벗어난 우리는 LE-142번 소도로를 따라 난 산티아고순례길을 달렸다. 고지대에 건설된 왕복 2차선 소도로지만 가로수가 울창해 나무 그늘 덕을 볼 수 있었다.

보행자용 순례길은 LE-142번 도로 주변을 수시로 가로지르는 흙길이다. 고도는 어느덧 해발 1000m를 넘어섰다. 앞으로 30㎞를 달리는 동안 600여m를 더 기어 올라가야 한다. 멋진남님이 제대로 쫓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스페인 자전거동호인들이 산티아고 순례라이딩에 나선 우리에게 밝은 미소로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고산지대에 건설된 LE-142번 도로. 이미 해발 1000m를 넘었다.

도로변 풍경을 찍느라 잠시 멈춘 사이 아들과 멋진남님이 멀찌감치 앞서나갔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걸 알고 뒤쫓아 가는데 왼쪽으로 90도 가까이 꺾어지는 도로변에 조성된 주차장에 대여섯 명의 라이더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거기에 멋진남님과 아들이 섞여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교환했다. 인근에서 라이딩을 나온 50~60대 스페인 사이클 동호인들이었다. 멋진남님의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이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휴대용 펌프로 직접 공기를 넣어주더라는 것이다. 외국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멋진남님이 이렇게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궁하면 통한다. <계속>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진교영 2018-06-14 18:58:36
무려 780년이나 국토회복운동 (독립투쟁이겠죠)을 하였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

기회가 된다면 만테카다 꼭 먹고싶어요

다음편 기다립니다 ~~

JC 2018-06-11 19:59:45
자동차 여행으로는 전혀 접할 수 없는 여행기이네요, 언젠가는 아들, 딸과 해외 라이딩을 꿈꾸며 ~~

kusenb 2018-06-11 12:28:48
정말 좋은 여행이었다면
그 장소에 몇가지 정도 하지 못해 아쉬운 일을 남겨두고 오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ㅎ

조용만 2018-06-11 11:52:40
멋진남 님의 활동도
계속 기대가 됩니다

계속...고고..^^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