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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선 정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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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선 정의의 화신
  • 박한표
  • 승인 2017.07.3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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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0>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오이디푸스는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2남 2녀를 낳는다.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그리고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오이디푸스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후, 자신의 비극적 운명에 절망해 두 눈을 도려낸다. 그리고 속죄하기 위해 테베를 떠나 정처 없이 방랑길에 나선다. 바로 이때 자식들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저주하며 손가락질 하던 아버지를 끝까지 따라 다니며 돌 본 자식이 안티고네다. 오이디푸스가 아테네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자, 그녀는 고향 테베로 돌아온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떠나자, 테베에서는 아버지의 권력을 놓고 두 아들 사이에 치열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협정을 맺어 동생 에테오클레스가 우선 1년 동안 테베를 통치하고, 다음 1년은 형인 폴리네이케스가 통치하기로 약속했다.

‘테베를 떠나는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앙리 레비, 캔버스에 유채, 95×67㎝, 19세기경, 랭스미술관(프랑스)

그러나 거칠고 힘이 센 폴리네이케스가 왕이 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삼촌 크레온의 사주로 에테오클레스는 1년이 지나도록 형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결국 폴리네이케스는 이웃나라 아르고스로 망명했다. 그리고는 복수할 날을 기다리며 군사들을 모았다.

테베는 당시 7개의 성문을 지닌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따라서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에서 자신과 함께 테베의 7개 성문을 무너뜨릴 나머지 6명의 장수들을 모집했다. 그들은 아르고스의 왕 아드라스토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는 암피아라오스, 아르고스에 온 또 다른 망명객 티데우스, 달리기의 명수인 아틀란타의 아들 파르테노파이오스, 떠벌이 카파네우스, 그리고 아드라스토스의 친 조카 히포메돈이다.

이들은 군사를 이끌고 각각 하나씩 성문을 맡아 테베를 공격했다. 그러나 테베는 끝내 무너지지 않고, 7명의 장수 중 아르고스의 왕 아드라스토스만 살아남았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을 포함해 모두 전사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테베의 전쟁’이다.

이때 안티고네가 테베로 돌아온다. 어떻게 해서든 오빠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막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미 전쟁이 일어나 안티고네의 오빠들은 모두 죽는다.

그 후 테베의 왕이 된 삼촌 크레온은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여주었던 에테오클레스의 시체는 거두어 잘 장사를 지내주었지만, 6명의 용사들을 모아 테베를 공격한 형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저잣거리에 그대로 방치해 개들이나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방을 붙여 만약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죽은 폴리네이케스 앞의 안티고네’ 니키포로스 리트라스, 캔버스에 유채, 100×157㎝, 1865년, 그리스국립미술관

경고를 무시하고, 안티고네는 서둘러 폴리네이케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흙을 뿌려 덮어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가족의 시체에 흙을 덮어주지 않으면 신에게 큰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안티고네가 오빠의 시체를 거두어 산이나 다른 곳에 직접 묻어준 것은 아니어도, 그 위에 흙을 뿌려 덮어준 것은 매장과 다름없는 행동이자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행동이었다.

안티고네는 하늘의 영원한 불문율을 근거로 크레온이 내린 포고령의 부당성을 비판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정의의 화신처럼 보인다. 안티고네는 외친다. “저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그러면서 친오빠의 시체에 흙을 뿌려주는 것이 어떻게 범법이냐고 따진다.

이는 부당한 국가의 법과 정의로운 하늘의 불문율 사이의 대결이다. 그 이면에는 크레온이 대변하는 폭력적인 가부장제와 그것에 희생당하는 한 정의로운 여성의 대결이 있다. 왜냐하면 크레온은 안티고네가 자기의 조카이면서, 자신의 아들 하이몬의 약혼녀인데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 자신의 아들이 찾아와 안티고네를 살려달라고 간청하지만, 크레온은 결국 그녀를 동굴에 가두고 최소한의 음식만을 넣어주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그러나 올림포스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가 안티고네를 동굴에서 풀어주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혈육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제야 크레온은 마지못해 안티고네를 풀어줄 결심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들의 약혼녀가 죽은 것을 안타까워한 그의 아내가 자살한 것이다. 안티고네도 동굴 속에서 목을 매어 죽고, 그녀를 보러 그곳에 와 있던 아들 하이몬 역시 약혼녀의 죽음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결국 안티고네는 부당한 국가 권력으로 대변되는 남성 사회의 폭력에 억울하게 희생된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인용한다. “모든 여인들 중에서 가장 죄 없는 그녀가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 때문에 가장 비참하게 죽어야 하다니! 자신의 친오빠가 피투성이의 전투에서 쓰러졌을 때, 날고기를 먹는 개떼나 어떤 새가 먹어치우도록 묻히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지 않았던 그녀야말로 황금 같은 명예를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안티고네’ 프레데릭 레이턴, 캔버스에 유채, 58.5×50㎝, 1882년,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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