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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중의 악녀 ‘팜므파탈’ 메데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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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중의 악녀 ‘팜므파탈’ 메데이아
  • 박한표
  • 승인 2017.06.1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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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18-1>이아손의 모험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팜므 파탈(Femme fatale).’ 치명적인 성적 매력을 미끼로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여인을 말한다. 프랑스어로 ‘파멸로 이끄는’ ‘숙명적’ ‘치명적인’을 의미하는 형용사 ‘파탈’과 ‘여성’을 뜻하는 ‘팜므’의 합성어다.

19세기 유럽 문학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주로 남성을 파멸적인 상황으로 이끄는 매력적인 여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전형적인 팜므 파탈의 예는 뱀의 꼬임에 빠져 금지된 열매를 먹고 천국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하와, 헤로데 왕을 춤으로 유혹해 그로 하여금 세례자 요한을 죽이게 한 살로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악녀로 손꼽히는 메데이아,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의 아내였던 메살리나,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 등이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는 메데이아가 대표적인 팜므 파탈이다. 최대의 악녀 메데이아에 관한 스토리는 황금 모피를 찾아 떠나는 ‘이아손의 모험’ 이야기에 나온다. 우선 황금양피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메데이아' 프레데릭 샌디스, 캔버스에 유채, 46.3㎝×62.2㎝, 1868년. 버밍엄미술관(영국)

보이오티아의 왕 아마타스는 아내 네펠레와의 사이에 프릭소스라는 아들과 헬레라는 딸 남매를 두었다. 왕은 조강지처인 네펠레를 멀리하고, 새 아내 이노를 맞이한다. 네펠레는 계모 밑에서 핍박당하는 자식들을 구해달라며 헤르메스 신에게 기도했다. 그리고는 날 줄 아는 황금양피를 지닌 양 한 마리를 얻게 된다.

그녀는 자식들을 양의 등에 태워 먼 콜키스(흑해의 동쪽 해안에 있는 고대국가)라는 나라로 보낸다. 불행하게도 딸 헬레는 양의 등을 타고 가다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바다를 ‘헬레스폰토스(헬레의 바다)’라고 부른다.

프릭소스가 콜키스에 도착하자 그 나라의 왕 아이에테스는 그를 받아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딸 칼키오페까지 아내로 줬다. 이에 감사의 표시로 프릭소스는 양을 잡아 황금양피를 왕에게 선물했다. 왕은 그 모피를 아레스 신의 숲에 보관하고 잠들지 않는 용에게 지키도록 했다.

황금양피는 조상이 빼앗긴 그리스의 자존심일 수 있고,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인 자신의 일부일 수 있다. 어쨌든 이 황금양피를 찾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으려는 힘든 모험이다. 그 모험은 우리들의 힘겨운 삶일 수 있다. 두려워하고 주저하면 ‘황금 모피’는 없다. 우리는 각자의 ‘황금 모피’를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야 한다.

'이아손과 메데이아' 귀스타브 모로, 캔버스에 유채, 204㎝×115.5㎝, 1865년, 오르세미술관(프랑스 파리)

 “시작이 중요하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다섯 번째 권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 서문을 인용한다. “먼 바다를 항해하자면 풍랑도 만나고 암초도 만난다. 이 장애물들이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심플레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황금 모피는 없다.” 마음속에 황금양피가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아손(영어식으로는 제이슨)은 누구인가? 그는 ‘모노 산달로스(외짝 신발의 사나이)’다. 어쩌다 운명적으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이아손의 아버지는 아이손이다. 아이손에게는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서로 다른 형제 펠리아스가 있었다. 이 펠리아스가 적자인 아이손을 제치고 이올코스의 왕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는 이아손에게 황금양피를 찾아오는 모험을 떠나게 한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첫 번째 버전은 다음과 같다.

펠리아스는 왕이 되기 전, 헤라 신전에서 살인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여신을 모독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죽자 자신이 왕이 되지만, 신탁이 있었다. “권력은 자신의 것이지만 모노 산달로스(외짝 신발 사나이)를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왕이 된 펠리아스는 자신의 아버지 포세이돈을 위해 축제를 벌이고, 이아손을 초대한다. 이아손은 강을 건너다 그만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외짝 신발을 신고 나타난다. 펠리아스는 신탁이 무서워서, 그를 황금양피를 찾으러 콜키스로 모험을 떠나도록 한다.

'이아손' 레오나르 리모쟁, 채색법랑과 구리, 31㎝×24.5㎝, 16세기경, 블루아성미술관(프랑스 루아르에셰르)

두 번째 버전에서는 펠리아스가 아니라 아이손이 아버지의 정식 후계자로 왕국을 다스리게 된다.

늙은 아이손은 아들 이아손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자 이아손의 숙부인 펠리아스에게 아들이 클 때까지 임시로 권력을 맡긴다.

아이손은 아들을 켄타우로스(반인반마)의 현자 케이론에게 보내 교육을 시켰다. 헤라클레스, 의신 아스클레피오스, 아킬레우스가 케이론의 제자들이다. 이아손은 케이론에게서 칼 쓰는 법, 활 쏘는 법, 악기 다루는 법, 배 짓는 법, 뱃길 짐작하는 법 따위를 배웠다. 자신의 그릇을 키운 것이다.

케이론이 있는 펠리온 산에서 이올코스로 들어가려면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야 했다. 그 강을 건너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이아손은 외짝 신발의 사나이가 된다. 이렇게 찾아 온 이아손이 숙부 펠리아스에게 왕의 자리를 요구하자, 그는 이아손이 모험을 통해 좀 더 힘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 이아손이 콜키스로 황금모피를 가지러 모험을 떠나게 된 이유다.

황금빛 양의 털가죽, 황금양피를 되찾아 오라는 것은 불가능한 시험에 들게 하여 이아손을 죽게 하려는 숙부의 계략이었다. 이아손의 선택은 그 계략을 넘어서는 것뿐이다. 이아손은 ‘아르고 원정대’를 꾸미고 모험을 떠나 황금양피를 찾아온다. 외짝 신 사나이, 이아손이 찾아 떠난 것은 황금양피가 아니라, 마침내 되찾은 한 짝의 신발인지 모른다. 인생의 여정이 신발을 끌고 온 기록이듯 이아손의 모험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 여행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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