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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인간다움 잃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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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인간다움 잃지 않을까?
  • 이환태
  • 승인 2017.04.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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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태의 인문학여행] <11>‘데카메론’ 서문과 ‘페스트’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한다. 이 전염병의 첫 증상은 사타구니와 겨드랑이가 부어오르는 것이었는데, 그 크기가 보통 계란만하거나 큰 것은 사과만 했다. 그 다음 단계는 팔 다리에 검은 납빛의 반점이 생겨 짧은 시간에 온 몸으로 번진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환자는 대부분 수일 내로 죽었다. 치료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전염병은 환자와의 접촉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만진 물건을 만져도 전염됐으며, 동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시는 곧 시체로 가득 찼다. 가난한 집은 거의 아무런 의식도 치르지 않은 채 시신을 문 앞에 내놓곤 했는데, 그것은 다른 집의 시신과 함께 쓰레기처럼 실려 갔다. 어떤 때는 사람들이 혼자 죽었고,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이웃사람들에게 발견되곤 했다.


공동묘지는 금세 포화상태가 됐고, 나중에는 큰 구덩이를 파고 수많은 시신을 함께 매장해야 했다. 1348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이 역병으로 피렌체에서만 대략 십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그 도시 인구의 절반이 죽은 셈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절제와 금욕의 생활을 했다. 다른 이들은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 소일했다. 법과 계율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중도를 취해 절제하지도 않고 과하게 먹고 마시지도 않았지만, 향기 나는 꽃을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그 냄새를 맡으며 거리를 활보했다. 또 다른 이들은 아예 도시를 떠나는 것만이 역병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집과 재산을 버린 채 한적한 시골로 도망쳤다.


당시 이 전염병을 직접 목격한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이야기 책 <데카메론>의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흑사병으로 알려진 이 전염병은 거의 유럽 전역을 휩쓸었고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19세기까지 유럽에서 이 전염병으로 최대 1억 명까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무서운 전염병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서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에서 에볼라라는 무서운 역병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런 경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우리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소설로 카뮈(Albert Camus)의 <페스트>(La Peste)가 있다.

 

 

현대 알제리의 도시 오랑(Oran)에 전염병이 발생한다. 처음엔 이유 없이 쥐들이 입에 피를 흘린 채 거리에서 죽는다. 점점 그 수가 늘어나자 급기야 시 당국은 이를 수거해 태운다. 쥐들이 사라진 후 한 동안 잠잠하던 도시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알 수 없는 열병으로 죽어간다. 주인공인 의사 리외(Rieux)가 그것을 전염병으로 결론짓고 격리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지만, 시 당국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는 사이 환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시 당국이 격리조치를 취하면서 도시는 완전히 봉쇄된다. 전염병 환자로 판명된 사람은 물론,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나 외부로 나간 사람들도 서로 오갈 수 없게 되면서 도시는 완전히 고립된다. 취재 차 이 도시를 방문 중이었던 신문기자 랑베르(Rambert) 같은 사람은, 나중에 마음을 돌리기는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도시를 빠져나가려 한다.


한편, 이런 상황을 이용해 돈을 벌거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평소 어떤 범죄를 저질러 언제 경찰에 붙잡힐지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자살까지 기도했던 코타르(Cottard)는 이 상황을 이용해 밀거래로 돈을 번다. 파넬루(Paneloux) 신부는 이 역병이 신의 심판이란 내용으로 설교하지만 결국 그 자신도 전염되어 죽는다.


전염병이 크게 확산되자 처음엔 이 일을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하던 오랑의 시민들이 드디어 그것을 집단의 문제로 생각한다. 어차피 모두가 희생자가 될 바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죽거나 정부의 명령에 떠밀려 억지로 행동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사 리외를 도와 이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전쟁도 마찬가지지만, 전염병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죽어야 하는 부조리한 세계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감염을 방지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지만, 오랑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이 역병과 맞서는 것을 선택한다. 그래야만 인간이 도덕적 진공상태에 있는 존재가 아닌, 선행을 향한 잠재력을 지닌 존재임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바 카뮈의 ‘희망 없는 낙관주의’ 철학이다. 아프리카의 에볼라가 속히 진정되어 인간의 존엄성이 더 이상 시험대에 오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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